13장. 지나가버린 이야기
2.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찌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와 병원까지 몇 분 남짓 걸었을 뿐인데 옷이 땀에 젖고 있었다. 정문을 지나 화살표를 따라 돌고 돌아 병원 구석에 있는 영안실 입구에 도착하자 건물들 사이로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이 눈을 찔렀다. 얼른 영안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건물 안은 지나치게 추웠다. 계단을 내려가 복도를 지나는데 태양만큼이나 눈부시게 빛을 뿜는 형광등이 창백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빈소 앞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빈소에 들어서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정수가 나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비척비척 일어서는 그 모습이 쓰러질 것만 같아 덥석 안고 말았다. 붉게 물든 눈매가 이미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었음이 분명했지만 등 뒤에서 또다시 흐느끼고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 같은 어깨였다.
안타까운 걸 넘어서 이 아이의 슬픔에 내가 일조하기라도 한 것 같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절까지 끝내고 나자 위로가 될 수 있을 만한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머뭇거리는 사이 정수가 내 손을 잡고 “고마워요, 누나” 쉰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나를 잡아끌고 빈소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 속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혁 오빠도 미정이도 익숙한 다른 얼굴들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의 얼굴만 들어왔다. 그는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 그 순간에도 도드라지게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다들 오랜만이죠, 연희 누나.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가운 거 있죠. 누나, 우린 가끔 봐야 하나 봐.”
정수는 방금 전에 눈물을 흘리고도 농담을 던지고 돌아섰다. 사람들이 호응하듯 웃으며 나를 맞았다.
“진짜 오랜만이다. 거의 반년 만인가?”
“여행은 잘 다녀왔어?”
“다음 학기에는 복학하는 거야?”
“일단 좀 앉읍시다. 아 이놈의 인기는!”
너스레를 떨며 사람들 속에 끼어 앉았다. 허기진 사람처럼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꾸역꾸역 입 속에 욱여넣으며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 보였다. 날아드는 질문들에 하나부터 열까지 열심히 답해주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도 빠지지 않고 한 마디씩 보태고 있었다. 그에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최소한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와 상관없이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가 슬며시 일어나 복도로 나가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장지는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가족공원이라고 했다. 발인이 끝나고 운구도 마치고 나자 남아 있던 사람들 모두 버스에 올랐다. 그는 내가 타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 올라와서 내 자리를 지나쳐 뒷자리로 향했다. 확인해보지 않아도 내가 앉은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버스가 출발했다. 달리는 내내 버스 안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따금 서로 눈이 마주쳐도 그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설 때까지 창밖만 보고 있다가 기사 아저씨가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버스를 세우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바깥도 숨이 막히긴 마찬가지였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다. 주차장에 늘어선 차들이 번쩍거리며 햇살을 반사했다. 그 사이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찜질방을 방불케 했다. 그늘로 몸을 피해 봐도 후덥지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분도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하고 도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버스들을 기웃대다가 버스들을 한 바퀴 돈 끝에 오른쪽에서 세 번째 버스 꽁무니에 근조라고 적힌 종이가 붙은 것을 확인하고 세 번째와 네 번째 버스 사이로 들어갔다.
사잇길 중간에 그가 서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고. 좁디좁은 길에 우리 둘 뿐이었다. 돌아서지 않는 한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이내 그의 시선이 비껴갔다. 쿵쾅거리는 가슴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와의 거리가 두어 걸음 남았을 때 인사를 던졌다.
“오랜만이네.”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부자연스러웠다. 지나치게 들떠 있었다. 이게 아니었다. 그와 마주쳐도 설사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네는 내 모습을 그려보곤 했었다. 그 순간을 위해서 그와 맞닥뜨리기를 내심 기다리기까지 했었다.
고개를 끄덕인 건지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지 그가 머리를 숙였다. 옆으로 몸을 돌리더니 버스에 바싹 붙어 지나갈 공간을 만들었다. 내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끝끝내 입 한 번 열지 않는 그를 지나쳤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버스는 휴게소를 빠져나와 달리다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 산 중턱에 멈춰 섰다. 버스에서 내리자 산의 한쪽 사면을 빽빽하게 덮은 무덤들이 보였다. 산 중턱에서 정상까지 수많은 무덤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관만 실은 버스가 무덤들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경사를 올라가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버스에서 관을 내리고도 사람들이 모두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야 장례식이 시작됐다.
정수는 제법 차분하게 상주 노릇을 하다가 인부들이 하관을 시작하는 순간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울음은 금세 오열이 되었다. 불덩이 같이 타오르는 태양 아래 파헤쳐진 흙더미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산 정상에 정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다시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조차 정수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서 신경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정상에서 내려와 공원묘지 입구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가 느슨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서넛씩 무리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식사를 끝내고 일어서기 전에 일찌감치 버스에 올라 맨 뒷자리 구석에 몸을 숨겼다. 사람들 앞에서 그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누가 버스에 올라탈 때마다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자리가 거의 다 차고 뒤늦게 그가 차에 올랐다.
두리번거리며 남은 자리를 찾는 걸 보고 눈이 마주칠까 눈을 감았다 떴는데 내 앞에 그의 뒤통수가 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그가 앉아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가 지나자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사람들도 앞에 앉은 사람들도 고개가 꺾이고 서로에게 기대는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버스 안에 있는 모두가 잠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나는 잠들지 못했다. 깍지 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자세 한 번 고치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버스가 어서 빨리 서울에 도착했으면 했다. 한편으론 영영 도착하지 않았으면 했다. 어느새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숨을 토하는 순간 그가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뒤로 뻗은 그의 손이 무릎 위에 놓인 내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자기 손이 내 손에 닿았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서 내렸다. 마지막 한 명까지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스는 처음 출발했던 병원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지하철역으로 가는 무리와 길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무리로 나뉘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사람들 속에 끼어 있는 그를 확인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사람들 곁에 섰다. 나도 그도 반대편에서 손을 흔드는 무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건 서로에게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