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지나가버린 이야기
3. 첫 수업은 9시였다. 7시에 알람을 맞춰놓고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조금 더 누워 있어도 괜찮을 만큼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지만 늑장을 부리게 될까 봐 곧바로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거울 속에 퉁퉁 부은 얼굴을 쳐다보며 수도꼭지를 틀고 학교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일 년만의 등교였다.
동이 트기 시작한 푸르스름한 거리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자 나만큼이나 잠이 모자라 보이는 얼굴들이 승강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광판이 깜박이며 열차가 들어오고 있음을 알렸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용케 빈 공간을 찾아 파고들어가는 사람들 뒤를 따라 올라탔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지하철이 멈출 때마다 안쪽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깥쪽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떠밀렸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학교를 오갔는지 기억나질 않았다.
지하철역을 하나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드디어 지하철에서 내려서 지하철역을 나서는데 계단 중간부터 줄이 보였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이어지고 이어져 지하철역 계단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지하철역 앞은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뒤엉키고 있었다.
멍청히 서 있을 겨를이 없었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으려면 재빨리 줄 끝에 서서 사람들을 따라 버스에 올라타고 또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바로 다른 발을 내딛는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잰걸음으로 발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인문대까지 올라와서야 건물로 들어가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건물 옆에 멈춰 섰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한숨 돌릴 겸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아찔했다. 계단을 오르는 행렬이 저 멀리 정문까지 까마득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사람들이 끝내 나를 휩쓸어버리기 전에 얼른 다시 돌아섰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앉아 있던 사람들 두어 명이 힐끗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잡담을 이어갔다. 아는 얼굴이 없었다. 혼자 수강신청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두엇씩 무리 지어 앉은 사람들 속에 홀로 앉아 강의를 듣고 필기를 했다. 사람들은 강의가 끝나고도 두엇씩 무리 지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혼자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누군가와 함께였다. 혼자인 사람들은 할 일이 있어서 혼자일 뿐이라고 변명하듯 무언가를 펼쳐놓고 거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는 사람들 눈에 띠지 않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리 지어 떠드는 사람들 뒤에 서서 묵묵히 차례를 기다려 반찬을 집고 계산했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 누구도 앉지 않는 남은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사람들이 알아서 먼저 시선을 피했다. 식사를 마치고도 혼자 식당 앞 벤치에 앉았다. 누구도 머물지 않고 지나치는 그곳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다음 강의를 기다렸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다들 앞다퉈 강의실을 나서려고 할 때에도 뒤쳐져 사람들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강의실에서 나오는데 다른 강의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복도에는 되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를 앞지르려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고 무리 지어 있는 사람들을 돌고 돌아 건물을 빠져나와서도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한쪽으로 비켜서야 했다. 사람들 모두 계단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제는 정문으로 향하는 저 끝없는 행렬 속으로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파가 사라지고 나서야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는 벌써 지고 난 뒤였다.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아무도 없는 강의실이 보였다. 빈 책걸상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수위 아저씨만 혼자 앉아 졸고 있는 중앙도서관 통로를 지나 그야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광장을 가로질렀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사람들이 떠나고 난 자리를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텅 빈 광장을 비추고 있었다. 가로등을 따라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이 유난히 멀었다. 온종일 떠돌다가 지친 다리를 끌고 숙소로 돌아가던 바로 그 기분이었다.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다 내던지고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었다. 도망쳐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발길을 멈추지도 돌리지도 않고 그대로 정류장까지 갔다. 버스가 도착하고 먼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려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손잡이를 꼭 쥐고 사람들 사이에 버티고 있는 두 발에도 지그시 힘을 주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시간표에 맞춰 강의실을 찾아다니고 강의를 듣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갈 것이었다. 하루가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학기가 되어 흘러갈 것이었다. 결국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될 것이었다.
그랬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를 마주하는 순간만 일상이 되지 못했을 뿐.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마주쳤다. 강의에 늦지 않으려고 헐레벌떡 뛰어올라간 계단 위에, 점심을 대충 때우려고 들어간 매점에, 강의교재를 찾으러 들린 복사실에, 예상치 못한 곳곳에 그가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었고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같은 과에 같은 학번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공통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똑같았다.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먼발치에서 나를 확인하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라도 나를 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대면해야 할 때면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어버리고 기어이 견딜 수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나를 외면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마주치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날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조차 일시 정지된 화면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멈춰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와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혹스러워하다가 외면하는 그에게 화가 나고 돌아서는 그가 미워졌다. 면역이 생기기는커녕 평정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기라도 하듯 그와 헤어지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 자신에게 진저리 치고 있었다. 아직도 벌서듯 그가 사라진 자리에 서 있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내 안에서 끝도 없이 솟아나는 익숙한 감정들이 징그러웠다.
겉으로나마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를 지나치기 위해 악을 썼다. 그를 발견하면 그가 날 알아차리기 전에 그를 피해 길을 돌아가고 그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순간에는 그가 나를 외면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외면하려 고개를 돌렸다. 마주치는 일은 점점 뜸해졌다.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야생동물처럼 서로를 피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