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지나가버린 이야기
6. 미정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먹자골목 입구에 서서 횡단보도 건너편 학교 정문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나 말고도 서너 명 정도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 떠나고 나 하나만 남아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미안. 세미나가 늦게 끝나서. 미친 듯이 뛰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주라.” 미정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시계가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을 이십 분 넘기고 있었다.
한숨을 쉬자 입김이 하얗게 어리다 사라졌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그대로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잠깐 꺼내고 있었을 뿐인데 손가락 끝이 얼얼했다. 두 다리는 얼어붙어 무감각해진 지 오래였다. 지퍼를 턱밑까지 채우고 목을 움츠리고 있는데도 바람이 불 때마다 또다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생식당에서 보자고 할 걸 후회하고 있었다. 한사코 밖에서 만나자고 우기던 미정이가 원망스러웠다. 매일 보는 얼굴 딱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고받다가 헤어질 게 뻔하니 어서 빨리 어디론가 들어가 따끈한 국물로 허기나 달래고 집에 가고 싶었다.
다시 한번 핸드폰을 꺼내 막 삼십 분이 지났음을 확인하는데 미정이가 내 앞으로 뛰어들었다. 무릎을 짚고 헐떡거리다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먹자골목으로 돌아섰다. 분식집과 고깃집 그리고 백반집 몇 개를 지나쳐 곧바로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을 마시자는 이야기였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지만 들어가는 걸 붙잡고 술은 마시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어디로 갈지 다시 정하는 것도 귀찮아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미정이가 메뉴판을 받아 들고 소주 한 병과 알탕을 주문할 때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충 의사표시를 하고는 한두 잔만 마시고 얼른 일어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미안해. 추운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대학원 세미나가 처음이라 이렇게 늦게 끝날 줄 몰랐어. 그래도 오래간만에 둘이 보니까 좋은데, 오붓하고, 그치?”
“대학원 세미나에도 들어가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나도 입학하기도 전에 세미나부터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합격 발표 나자마자 교수님이 불러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별 수 있냐.”
“졸업 논문도 아직 남았잖아?”
“그러니까. 진짜 미치겠다니까. 기말에 졸업논문에 논문 발표도 준비해야 하는데 대학원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미나 들어와라 학회 들어와라 아주 난리야, 난리.”
“그렇게 바쁜데 지금 나 만나도 되는 거냐. 빨리 먹고 일어나자.”
“무슨 소리야. 오랜만에 벼르고 별러서 한 잔 하는 건데.”
“듣고 보니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다. 앞으론 더 바쁠 것 같으니까 오늘 얼굴 잘 봐 둬야겠는 걸. 조금 있으면 얼굴 보기도 어려워지는 거 아냐, 이거.”
“보기 어려운 건 너지.”
“내가 뭘, 왜 이러시나, 매일같이 보면서.”
“지나가면서 얼굴 잠깐 보는 거 말고. 진득하게 앉아서 이야기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둘이 보자고 할 때마다 일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던 게 누구더라?”
“그거야, 매번 일이 있었으니까,”
“매번 피한 건 아니고? 언제부터인지 네가 너무 멀게 느껴져. 웃으면서 어울리고는 있는데 가까운 것 같지가 않아. 어쩐지 벽이 있는 것 같아.”
“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나만 우리 사이가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정이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네가 갑자기 휴학하고 연락 끊었을 때 얼마나 섭섭했는지 아니. 그래도 그렇게 가버린 이유가 있겠지 혼자 있고 싶은가 보다 했어. 복학하면 예전처럼 돌아오겠지 기다렸다. 근데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에도 말도 없이 나타나서는 그냥 그렇게 지나버리더라. 아무리 웃고 떠들어도 네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하고 다가갈 틈도 안 주고.”
미정이는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러는 건가 고민도 했어. 이제는 솔직히 화가 나. 난 그래도 네가 제일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어. 너한텐 우리 사이가 아무것도 아닌 거야?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아니면, 아직도, 인우 때문인 거야? 넌 네가 인우랑 헤어진 다음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기는 하니? 인우랑 헤어졌다고 다른 사람들하고도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미정이의 말을 끊어버렸다. 나도 미정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넌 알아? 난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나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왜 이 모양인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아직도 인우 때문이야. 아직도 인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아. 그래, 또 네 말이 맞아. 아직도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불편해. 네가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힘들었어, 아니, 네가 가까운 친구라서 더 힘들었어. 네가 인우랑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는 걸 지켜볼 수가 없었어. 나보다 가까워지는 건 더더욱. 두 관계가 별개라는 걸 알면서도 미칠 것 같았어. 나도 그런 내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왜 말 안 했니, 힘들다고 말하지! 나한테 화를 내지! 네가 얘기했는데도 내가 그랬겠니? 널 그렇게 힘들게 했겠냐고!”
“말했으면, 말했으면 달라졌을까? 말했으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니, 말했으면 너까지 불편해졌겠지. 나도 알고 있었어. 네 잘못 아니라는 거, 다른 사람들 잘못도 아니라는 거. 사람들이 인우랑 잘 지내는 걸 견디지 못하는 거, 바로 내가 문제라는 거, 알고 있었어. 결국은 내가 견뎌야 한다는 것도 그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너라면 말할 수 있니? 내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그 애가 밉다고, 그 애 하고 어울리는 사람들까지 원망스럽다고? 너도 원망스럽다고? 나는 말할 수 없었어!”
“네가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난 그냥,”
“조금 전에 그랬지, 내가 인우를 피한다고. 아니, 네가 틀렸어, 내가 피하는 게 아니라 인우가 나를 피하는 거야.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나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우연히 마주쳐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고갤 돌려. 못 볼꼴이라도 본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는 내가 아예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날 무시해. 그 얼굴을 볼 때마다 기분이 어떤 줄 아니? 나도 피해 주는 수밖엔 없어. 그 잘난 얼굴로 나를 무시하기 전에.”
나 혼자 지껄이고 있었다.
“나랑 헤어지고 나니까 다른 사람이 되더라. 예전에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피곤해서 싫다더니 항상 사람들 속에 있어. 나하고 더 가까웠던 사람들하고도 보란 듯이 어울리고. 나만 아니면 그 누구 하고도 잘 지낼 수 있다고 광고라도 하는 것처럼. 내가 사라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목이 메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정신 나간 생각도 했다. 내가 없어도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용서할 수가 없었어. 혼자이고 싶다고 나를 떠나고서는 사람들까지 차지해서 사람들한테 기댈 수도 없게 만들었어. 내가 누구하고 가까운지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에 대한 눈곱만큼의 배려도 없었던 거야.”
미정이에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어. 인우는, 나 따윈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니 처음부터 내가 없었던 것처럼, 전혀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더라. 나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는데. 나도 몰랐어. 내가 인우를 그렇게까지 여기고 있었다는 걸.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인우가 나를 떠난다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날 떠났을 땐 모든 게 멈춘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뭘 해야 하는 건지도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알 수 없어서. 잠들 때마다 다음날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게 너무 끔찍해서. 뒤늦게 알았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걸.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발버둥 치고 발버둥 치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입을 다물고 나서야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길고 긴 고백이었다.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사실은 지금껏 그에게 얼마나 매달리고 있었는지 털어놓고 있었다. 미정이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난 그냥, 네가, 다시 웃었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하고 싶은 걸 찾았으면 좋겠어. 그게 뭐든 그것 때문에 즐거웠으면 좋겠어. 거기에 미쳐서 다른 건 다 잊어버릴 정도로.”
안타깝게 나를 보는 미정이의 얼굴이 새삼스러웠다. 테이블을 비추는 흐릿한 조명도 술집을 울리는 음악소리도. 그를 이야기하는 내 모습까지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도 못했던 그의 이름은 몇 번이고 입에 올려봤자 별 볼 일 없는 누군가의 이름일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그와의 순간들은 이제는 희미해져 기억도 나지 않는 다른 사소한 순간들처럼 지나가버린 이야기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