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의 긴 벽면을
진열과 수납의 공간으로

의식"주"일상실험

by 문성 moon song

거실에 가장 먼저 들인 가구는 장식선반이었다. 거실은 공간의 구조상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긴 벽을 마주하게 되고 또 부엌과 기억자로 연결되어 있다. 붙박이장이라고는 싱크대의 상부장과 하부장뿐. 수납이 가능한 공간은 없고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방으로 연결되는 동선을 고려해야하는 위치. 무얼 두기도 애매하고 두지 않으려고 해도 물건이 너무 많았다. 무질서 속에서 고민하다가 우선 내 마음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자리부터 만들어주기로 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나의 그림,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 과욕인가 싶어 결국은 전시에서 보았던 작품들의 엽서로 만족하곤 했던 순간들이 문득 떠올랐다. 공간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긴 복도처럼 활용해보기로 마음먹고 아예 화이트큐브의 한 면처럼 만들기로 했다. 마침 이케아에서 파는 선반을 함께 구입해서 벽에 고정시켰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그렸던 그림, 아르바트거리에서 산 이름모를 거리화가의 모스크바 풍경화, 사진을 전공한 친구의 서울풍경사진,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패턴디자이너의 아름다운 패턴북까지 올려두고 집중형 조명의 각도를 조절해주었다. 찬찬히 볼수록 흐뭇한 아름다움.

두번째로 거실에 둘 수납장을 골라 주문했다. 붓과 물감, 크레용과 파스텔, 수채화지와 드로잉북등 그림용품들. 테이프와 씨디, 엘피판과 카세트플레이어, 포터블엘피플레이어, 플로피디스크, 씨디, 하드디스크 등 사진과 글들을 모아둔 저장장치들, 여행을 다니며 모았던 지도들과 엽서들, 그리고 몇년째 밀린 시사인. 이 모든 걸 넣을 수 있는 그러나 동선에 걸리거나 불편함을 주지 않는 수납함. 또 인터넷의 무한대에 가까운 선택지 속에서 씨름을 벌이다가 단순하면서도 편리하게 물건을 넣고 뺄 수 있고, 깔끔하게 보관할 수 있는 크림화이트 여닫이수납함 중에서도 폭이 가장 좁은 것을 가까스로 찾아냈다. 대개가 40cm를 넘는 깊이라 너무 튀어나와 시각적으로도 동선상으로도 불편함을 줄 게 뻔했고 책장이나 장식장은 25cm이하라 물건을 제대로 수납하기 어려울 것이 뻔했기에 30cm를 찾아냈을 때에는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주문.

거실에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모른척 하다가 추석연휴로 지연된 배송끝에 도착한 수납장과 함께 정리했다.

정리와 함께 또 한번 쓰지 않는 것들을 나눔하고 기증하고 폐품으로 내놓았다. 오랫동안 모았던 우리나라 각 지역의 핸디맵과 여행했던 곳들의 지도들, 박물관과 미술관, 예술프로그램으로 이래저래 얻었던 아기자기한 아트웤물품들까지 정리했다. 당분간은 큰 그림을 그릴 여유도 그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끼고 있었던 스케치북들도 모두 조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6절사이즈 드로잉북과 엽서크기 수채화용지들과 작년에 참 힘들게 만들었던 예술프로그램 엽서와 스티커들은 고이 모셔두었다. 그리고 음반들과 컴퓨터용품들도 다시 정리해서 수납함 안의 공간을 여유롭게 채웠다.

쓰고 버릴 이면지들을 수납함곁에 쌓아두고 편하게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세탁바구니 대신 쓰는 스트로백을 얹어두었다. 남아있는 과정들때문에 완전히 정리가 되진 않았지만 중요한 것들에 자리를 만들어주고 나니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이제 무얼해야할까. 다음을 생각할 기운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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