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 엄마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엄마는 여전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아?" 되묻자 "걱정하지 말아.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야." 여전히 벽을 쳐다보며 내뱉듯이 말을 했지만. 나는 그 말들이 엄마가 알츠하이머 이전에도 종종 하던 말들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이 주 전 일에 치여 피곤에 찌들어 엄마를 보러 갔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엄마를 껴안고 엄마나 힘들어 뇌까렸던 날이 있었다. 요양사님이 며칠이 지나고 엄마가 자꾸만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가 보다 했었다.
엄마의 병세는 완연히 나빠졌기에 엄마는 눈앞에 누가 있어도 더 이상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손이 닿는 것도 싫어했다.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구분하지도 못했고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도 이제는 막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보다도 못한 수준이 되어 있었다. 빵 주세요와 아파요, 그만하세요 같은 몇 문장만으로 배고픔이나 필요한 것이 있음을 무언가 불편함을 혹은 자고 싶음을 표현하는 정도로 퇴화된 언어에 나는 엄마와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언어가 중요한 나로서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일이었지만 엄마의 눈을 맞추고 손을 쓰다듬고 안아주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다만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주는 수밖에. 그런데 엄마는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의식과 무의식 어딘가에서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걱정하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야"라는 말을 듣자마자 엄마품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터져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엄마는 반복했다. "걱정하지 말아." "그래, 걱정 안 해. 괜찮아. 고마워 엄마. 사랑해" 엄마가 역시 독백과도 같이 답했다. "나도 사랑해." 눈물이 계속 흘러서 멈출 수 없었다. "고마워. 고마워. 엄마. 내 걱정했구나. 엄마 나 늘 기도해줬잖아. 기도해주던 거 기억나? 기도해주라." 엄마는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의 퇴화된 상태가 엄마의 무의식을, 엄마의 바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엄마, 엄마가 늘 해줬잖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딸들, " "선생님, 우리 딸 건강하게 해 주세요." 엄마 입에서 황급히 튀어나온 단어들은 기도문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게 엄마의 기도임을 알았다. "아멘" 옆에서 요양사님이 말을 덧붙인다. "계속 문성 씨를 찾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나 보다."
2.
엄마가 하루하루를 보내듯 나도 역시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마가 죽음에 다가간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에 다가간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새삼 다시금 나의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올리버와 빌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2011.12.17
O: "나는 늙는 것이 끔찍하거나 하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쪽도 아니더라고."
나: "그걸 끔찍하지도 하찮지도 않게 만들어주는 건 무언가요?"
O: "빌리 말고는, 사고하기와 글쓰기."
2012. 1.22
... 궤적을 남기며..." 그는 단안경을 내려놓는다. "궤적. 멋진 낱말이야." O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지금 자신이 궤적에 올라 있다고 느껴져요?"
"이젠 그래요." 내가 대답한다. "오랫동안 떨어져 나왔다고 느꼈거든요."
O가 고개를 끄덕인다.
"궤적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거지." 그가 말한다.
O와 내가 창밖을 바라보는 사이에 일 분 일 분 시간이 흐른다.
고요가 느껴진다. 묻지 않아도 안다. O도 같이 느낀다는 것을. 그의 평온이 말해주니까.
"노인은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O가 갑자기 말한다.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
"오든이요?"
"엘리엇."
<인섬니악 시티> 빌 헤이스
3.
올리버가 이야기한 늙는 것을 받아들이게 해주는 무엇. 사랑하는 이들과 사고와 글쓰기. 지금까지 밟아온 궤도를 딛고 나아가 새로운 궤도를 만드는 것, 주어진 것들에 더해 새로운 것들을 기꺼이 누리는 것. 엄마의 여생을 지켜보는 것과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 두 가지는 서로를 배척하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나날. 올리버와 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주어 고맙고 그걸 읽고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