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경계가 무너지는

<온 더 무브>, <인섬니악 시티> 책으로 읽는 사랑

by 문성 Moon song Kim

1.

오랜만에 본 엄마는 야위어있었다. 그래도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아기가 되어버린 엄마. 엄마의 상태는, 이 병이 원래 그러하듯, 새로운 단계로 악화되어 있었다. 더는 걸을 수 없었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앉는 것조차 힘겨웠다. 처음에는 걸을 의지가 없어진 걸까 싶었는데 엄마의 앙상한 다리와 미끌어져내리듯 힘을 주지 못하는 하체 보면서는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했다. 엄마의 뇌와 엄마의 몸이 아예 걷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아기로 돌아간 듯 보였다.

걷지 못한다는 것은 수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엄마는 계속 눕거나 앉아있어 지루해하고 답답해했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변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다. 변비약을 다른 약과 함께 처방했고 그것으로 인해 엄마는 아파, 아파, 고통을 호소하는 한편 자꾸만 묽게 흘러내리는 변때문에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퇴원이후 밟아야하는 초반 1주일 후 통원진료, 1달 후 통원진료는 둘째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어떻게 옮길 것인가 문제가 많았다. 간신히 형부들의 도움으로 업혀온 엄마가 2차백신을 맞으러가는 길은, 사람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아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은 돈을 지불하고 사설구급차를 써야했다. 와병중에 욕창이 심각해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는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전하는 어떤 이의 친절인지 경고인지 혹은 협박인지 모를 이야기에 두려워지기도 했다.

늪속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으로 몇날며칠을 보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알츠하이머학회홈페이지의 알츠하이머 진행과정설명에 결국은 인식과 신체 모두가 퇴행한다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새삼 떠올랐다. 그 건조한 문장이 이렇게 큰 고통을 주는 현실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다시 알츠하이머환자가 갖는 고통을 그들의 가족이 갖는 고통을 담담하지만 따뜻하게 묘사하고 위로해주었던 올리버 색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생애를 함께한 빌 헤이스를. 그들 각자의 목소리로 전한 이야기를 교차해 더듬으며 느꼈던 그 위로와 감동을 끝까지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의 태도와 목소리를 간직하고 때때로 돌이켜보며 힘을 얻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2.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관심사를 좇아 희노애락을 담담히 걸었고 그것은 그가 기꺼이 선택한 일이었지만 늘 혼자였다. 오랜 세월동안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치료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자신의 정체성과 외로움 그리고 사람들과의 거리를 견뎌야했다. 그런 그는 빌을 만나고서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무언인가를 새롭게 경험하고 그것이 주는 충만함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빌은 올리버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또 기록한다. 나의 기쁨이 그의 기쁨이 되고 그의 기쁨이 내가 되는, 주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내가 엄마의 지루함과 고통에 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며 감응하듯.

올리버는 진료실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생각과 글쓰기, 사고의 교류, 예술을 통해서 이미 주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해왔음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이 주는 기쁨을 알았고 그 기쁨이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 함께하는 경험, 관계 속에서 더욱 지극히 경험할 수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시너지를 더욱 크게 경험할 수 있었노라고 짐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같이 음악을 듣는다거나 같이 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2010.12.27

샌프란시스코, 팰리스 호텔. 크리스마스를 여기서 쇤다. 불 끄고 침대에 들었다.

O: "오, 오, 오...!"

나: "무슨 일이에요?"

O: "당신의 5번 갈비뼈를 찾았어!"

한밤중에 "우리가 같이 꿈을 꿀 수 있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지 않아?" O가 속삭인다.


2011.6. 19

추가한 기록

O : "우리는 타인의 내면으로 어느 정도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궁금하네. 눈빛을 꿰뚫어 보고, 그들의 느낌을 통과해서 느끼는 것이? 그런데, 그걸 정말로 원하기는 할까..?"


2011. 9. 15

저녁 7시15분, O가 전화해서 인사도 없이 말한다. "빌리! 옥상에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해가 지고 있어!"

나: "응, 그래야 하고 말고요."

O: "거기서 만나!"

나: "내가 한 병 가져갈게요."


2014.6.3

일요일. O가 바짝 깎은 내 옆머리에다 코를 위로 알래로, 앞으로 뒤로 강아지처럼 비벼댔다(“목초지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수리로 똑같이 했다.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O가 말했다. 그 안의 과학자가 갑자기 고개를 내민 것이다.

“기분 좋은 느낌이니까요.” 내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너무나 뻔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점이지.” O가 다시 생각을 이어나갔다.

2015.6.15

O: “나는 주체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좋아해. 빌리의 손이 내 손위에 포개져 어디까지가 내 몸이고 어디부터가 빌리의 몸인지 불확실한 순간…”


<인섬니악 시티>, 빌 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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