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인섬니악 시티> 책으로 읽는 사랑
1.
이제 내 일상에 엄마는 없다. 엄마가 떠나고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엄마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엄마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옷가지, 스카프, 사진과 영상들 같은 흔적들을 소중히 모아 두고 함께한다. 생각이 날 때마다 영상을 열어 엄마를 본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 순간에도 엄마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던 좋아하던 가곡을 부르는 엄마. 아직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어느 날 나를 보며 웃는 엄마. 나와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던 어느 날 나를 위해 기도해주던 엄마. 단기 기억력으로만 버티던 어느 날,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던 엄마. 나와 함께 나들이를 다녀와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행복해하며 나에게 쓴 편지 속의 엄마.
눈물이 쏟아질 걸 알면서도 나는 엄마를 보고 또 본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 같은 건가. 자문하다가도 고개를 젓는다. 아니, 나는 단지 나와 일상을 함께하던 엄마가 보고플 뿐이다. 영상 속에 노래를 부르는 엄마,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엄마를 내 일상에 존재하게 하고 싶을 뿐이다.
2.
어쩌면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주 사소한 일상을 함께함으로써 채우는 소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상대를 불안해하고 함께할 날들을 걱정하기보다는 그날그날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위로하고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혹은 자기 자신과 그렇게 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사랑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올리버 색스는 인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쓰기 시작한 자서전에 일상의 행복을 고백하듯 털어놓는다. 뛰어난 업적,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헌신, 그 속에서 겪었던 일들을 자세히 적고 나서 뒤늦게 얻은 일상의 행복을 짤막하게 덧붙이듯 몇 문장으로 정리해버린다. 짤막한 몇 줄 속에서 나는 느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일상의 행복을 차마 크게 소리칠 수 없는 그의 수줍은 마음을, 그럼에도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가 얼마나 근사한 선물로 여기는지를.
... 우리는 같이 외출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회에 갈 때도 있고 (빌리가 좋아하는) 미술관에 갈 때도 있고, 뉴욕식물원에도 자주 갔다. 40년 넘도록 홀로 정처 없이 터벅터벅 걸어 다니던 그곳을... 집에 있을 때나 여행 갔을 때나 우리는 수영을 자주 다닌다. 가끔 작업 중인 원고를 서로에게 읽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다른 연인들이 그러듯이 지금 읽는 책에 대해 논하거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옛날 영화를 보거나 함께 노을을 바라보거나 점심 샌드위치를 나눠 먹는, 그런 나날이다. 빌리와 나는 많은 차원에서 일상을 함께하며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일평생 거리를 두고 살아온 이 일상의 행복은 노년의 내게 뜻밖에 찾아온 근사한 선물이다.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3.
빌 헤이스 역시 그와의 일상 속에서 올리버 색스가 존재함에 행복해했구나,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의 잠자리를 준비하던 그 마음을, 양말을 벗겨주고 수면제를 가져다주고 읽을거리를 두고 인사를 나누었을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존재해달라는 올리버 색스의 말을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두는 그의 모습을, 그의 마음을.
2013.2.9. 밤 11시 15분
“잠 푹 자고 나면 생각이 왕성해지면 좋겠어. 오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O가 말했다. “그런 날에는 얼마나 기쁜지, 마치 그동안 자기를 의식해주기를 기다려왔다는 듯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수면으로 치고 올라오는데…”
나는 O의 잠자리를 준비해준다. 양말을 벗겨주고, 자리를 마련하고, 수면제를 갖다 주고, 뭔가 읽을거리를 갖춰둔다.
나: “더 해줄 게 있을까?”
O: “존재해줘.”
<인섬니악 시티>, 빌 헤이스
4.
엄마의 편지와 사진들, 나를 바라보는 엄마를 찍은 동영상들을 내가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로 여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