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인섬니악 시티> 책으로 읽는 사랑
1.
설을 맞아 엄마에게 다녀왔다. 이제 곧 엄마의 생일이기도 했다. 양평에 있는 수목장 공원에 엄마를 묻고 비석과 화병이 놓인 뒤 처음이었다. 이른 아침 꽃다발을 들고 찾아간 공원에는 이미 여러 가족들이 찾아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양지바른 곳이었지만 만든 지 이제 갓 한 달을 넘긴 엄마의 비석 주변은 아직 풀이 자라지 못한 채였다. 언니가 두었던 시든 꽃을 거두어 가지런히 두고 다시 꽃다발을 꽂고는 검은 돌로 만든 비석과 화병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낯선 수목장 공원, 묘소, 비석과 화병.
엄마의 이름과 생몰년 그리고 주님 품에서 평안하세요라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꽉 찬 작은 돌판을 가만히 지켜보는 우리 자매를 내려다보듯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연휴와 함께 시작된 강추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 속에 누그러지고 있었다. 햇살이 품은 온기가 온몸을 감싸는 걸 느끼며 한참을 엄마 비석 앞에 서 있었다.
2.
특별한 날이 되면 엄마를 보러 오게 되리라는 걸, 엄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으리라는 걸 새삼 확인하고 있었다. 일부러 의식해도 아니고 일부러 노력을 해서도 아니라 그냥 너무나 당연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당신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진 사람이 당신이기에.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 갖고 있는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넘어서는 시간과 경험으로 누적된 압도적인 무엇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에게 남은 특별한 순간들에 당신이 떠오를 때 어떻게 그 순간을 보낼 것인가는 나의 몫임을. 그리고 아마도 이곳에 자주 오게 되리라는 것을.
3.
올리버 색스와 빌 헤이스는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서로를 만났고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미 깨닫고 있는 와중에 서로에게 남은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자 했다. 일상뿐만 아니라 특별한 날들도 역시. 이를테면, 생일과 같은 날에도.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감사한지 기쁘게 표현했고 또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물하며 서로의 안녕을 바랐다.
2014.1.6
내 생일이다. 쉰셋. 선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올리버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 기쁨이 넘쳤고(놀랍게도 음이 맞았고), 올리버 특유의, 그러니까 머리를 내 어깨에 비비면서 내 품 안에 파고드는 기분 좋은 포옹을 선사했다. 나는 그의 등을 긁어주었고. 올리버는 또 손으로 쓴 카드와, 그의 전통에 따라, 작은 병에 든 새 원소, 원자번호 53인 아이오딘을 준비했다. 그는 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한번 훅 마시면 빌리의 모든 감각이 맑아질 거야.”
“정말 말한 대로 되기를.” 내가 말했다.
아버지 날
최근 시애틀로 아버지를 뵈러 갔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버지와 같은 사단 소속 동료 병사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아버지의 집이 된 치매 요양원을 베닝 요새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오히려 기뻤다.
“헤이스 중위, 인사 올립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내가 말했다.
“만나서 반갑소.”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익숙했다. 90세가 된 아빠, 구부정한 자세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 지금은 호전되었지만 나의 다섯 누이 말로는 아버지가 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하루 종일 소리 없는 깊은 잠에 빠져있고, 일체의 약물 치료를 중단한 상태라고. 이것을 안락 치료라고 부르는데, 호스피스 전 단계이다.
... 나는 아버지의 어깨에 팔을 얹고 몸을 기울여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가 나를 올려다보는데, 이런 표정이었다. ‘당신 대체 뭐 하는 거야? 나한테 입을 맞춰?’ 아버지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악수했다. 군인 대 군인의 악수였다. 나는 작별인사를 했다.
“또 보세.” 아버지가 말했다.
인섬니악 시티, 빌 헤이스
4.
나는 다시금 빌 헤이스와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엄마를 떠올렸다. 빌은 올리버의 생일을 축하하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만났을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전의 기억만이 남아서 그 기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버지를 기쁘게 지켜보았다는 그 말은 진심이었으리라고 확신했다. 엄마가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한 이름이 내 이름이었음에도 그 이름을 부르는 외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낯선 모든 것을 두려워하던 그 얼굴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던 그 순간들. 기억을 잃어도 상관없으니 편안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던 그 비통한 순간들. 빌 헤이스가 부러웠다가 이내 떠올랐다. 엄마는 이제 더는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났음을. 엄마가 더는 고통스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엄마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음을. 엄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이제 내게 남은 몫은 엄마가 없는 내 삶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내가 그들처럼 다시금 남은 시간을 소중히 특별한 날을 기쁘게 보낼 수 있을까. 엄마의 생일까지 남은 날짜를 세어보다가 가슴이 저릿해진다. 그렇다. 나는 아직 엄마의 생일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