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달이 지났고 브런치가 친절인지 재촉인지 모를 알림을 주었다. 당신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에 그렇지 상투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도 해내기는 어려운 일이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쓴 글의 날짜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박물관과 다른 프로젝트들을 핑계로 글을 쓰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나도 해내기 어려운 일임을 보여주는 한 명임을 새삼 깨닫는다. 글을 쓰는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의식주만이라도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조금 더 탄력이 붙는다면 미술사와 시각문화에 대한 글들도 이어 가보리라, 이후에도 여러 가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내 구상이 떠올라 의기소침해졌다.
피로 누적과 컨디션 난조가 더더욱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고 노트북 앞에 앉는 걸 저어하게 만든다. 박물관 일과 문화재단과의 프로젝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응급실에 몇 번 실려가기도 하고 지난 5월 경에는 경추와 견갑골 근육과 신경이 말썽을 부린 이후로 조금만 무리를 하면 다시 통증이 밀려오기를 반복했다. 노트북 앞에 앉는 게 겁이 났고 조금만 쉬어도 다시 밀려드는 일들을 해치우고 내 작업을 더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편으론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불편함도 마음 한편에서 점점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연차휴가를 내고 한의원에서 침에 뜸에 물리치료까지 받고 천천히 오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글을 쓴다. 사실은 나 자신도 이렇게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의아하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끌고 가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적어 내려 간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의 속도와 호흡에 맞게, 내가 고른 단어들로 정렬하여 나지막이 전한다.
2.
어느 시인이 일상은 번거로운 여행가방과도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니 이름을 말하자. 최영미 시인. 그녀가 유럽의 미술 여행기를 쓰며 여행 중에도 일상은 지난하게 꾸려나가야 하는 것임을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여행가방에 비유하며 적었던 것이 나에겐 참 인상 깊었다. 누구나 여행기에선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여행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결국은 지루하고도 멸렬한 반복적인 일과들 사이사이에 벌어지는 드문 순간이고 그렇기에 값지고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이따금 일상이 미치게 지리멸렬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녀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녀의 말을 떠올린다. 일상에서 챙겨야 하는 것 중에 가장 번거롭고 귀찮은 건 어쩌면 세 끼 식사 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지 않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고 매 끼니를 사 먹거나 누군가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매번 챙겨야 하며 간사한 입에 맞춰 매번 똑같은 걸 먹기도 어렵거니와 차리고 먹고 치워야 하는 앞뒤의 과정까지도 수반되는 일이기에. 매번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혼자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어서 절감하는 나. 그럼에도 감사할 만한 걸 찾자면 나는 식탐이 강하고 맛을 즐기는 사람이기에 음식 자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는 것. 요리도 창조적인 과정이기에 즐겁게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요즘엔 워낙 좋은 기계와 장비들과 다양한 레시피, 풍부한 재료들이 있기에 앞뒤의 과정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
3.
그래, 맞다. 자꾸만 지리멸렬함을 느끼는 나를 본다. 세 끼를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이 귀찮아지는 나를 본다.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는 더욱더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싶어 진다. 소중히 매 순간을 가꾸고 싶어 진다. 지금까지 찾아낸 방법은, 게임을 하듯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주어진 한정된 재료와 한정된 (배고픔을 견딜 수 있는) 시간 안에 그날의 내 기분과 상태에 잘 맞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미션이라고 생각하며 레시피를 찾는다. 냉장고와 장에 있는 재료들과 양념들을 머릿속에서 체크하고 가지고 있는 요리책과 먹어봤던 요리들, 구글링을 동원해서 그려본다. 어떤 요리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적합할지. 레시피를 서너 개 찾아보고 재료와 시간을 체크해본 다음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 요리를 시작한다. 레시피를 따라가되 집에 있는 양념이나 재료들로 대체하거나 변용해서 요리를 마무리한다. 나를 위해 잘 차려두고 사진을 한 장 찍어 기념한 다음 맛있게 먹고 웬만하면 오래 두지 않고 설거지를 한다. 종종 전시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주어진 것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상상해내는 것, 주어진 것을 활용하되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것, 결과를 선보이고 나면 물론 뿌듯하지만 결국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라지고 만다는 것.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욱 사진을 남기고 모아서 이렇게 글을 쓰며 되돌아보고 사람들과도 나누며 즐기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
최근 한 달간 나의 요리는 있는 재료를 최대한 다양하게 풀어보는 것이었다. 달걀을 한 판 사서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는 걸 깨닫고는 시작된 여정이었는데 라면에 불어넣고 오이와 함께 달걀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봤다가 너무 맛있어서 재료의 분량을 달리해서 몇 번 더 만들어 먹고는 버터 간장계란밥으로 결국 계란 한 판을 마무리. 샌드위치는 가벼운 토스트로, 진한 커피와 함께 브런치로, 우유와 함께 든든한 저녁으로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어서는 남아있던 양송이버섯 한 봉지를 나누어 떡볶이의 부재료로 쓰기도 하고 참치덮밥의 부재료로 쓰기도 하며 남김없이 먹었다. 함께 산 양배추 한 포기. 절반은 대패삼겹살과 함께 켜켜이 쌓아 양배추찜으로 칠리소스와 고추냉이 간장소스와 함께 저녁으로. 절반은 소금에 절인 후 햄과 레몬즙과 먀요네즈와 통후추를 갈아 넣은 산뜻한 프랑스식 코올슬로로 배달치킨 사이드 샐러드로, 구운 식빵 사이에 끼워 먹는 속재료로. 역시 맛있어서 여러 번 나누어 먹었다.
더불어 친구들과의 약속에서, 일하는 틈틈이,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사 먹었던 음식들. 음식은 사색을 도와주기도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기도 하고 이따금은 위로를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