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와중에도,
아니 바쁠수록 더욱 소중히

의"식"주 일상실험

by 문성 moon song

1.

글을 쓰지 못한 채 다시 두달이 지났다. 마음 한 구석에 초조함이 점점 커졌다. 그럼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 덩치를 키운 초조함을 눌렀다. 전시와 전시연계프로그램, 특별행사, 사이사이 사이드프로젝트 작업들을 진행했다. 글과 그림, 전시, 온라인 전시, 컨설팅, 자문, 공모전프로젝트, 출퇴근 사이사이, 저녁과 주말을 쪼개서 일을 하며 두달이 지났다. 이대로 12월까지도 계속 바쁠 게 예상되고는 차라리 틈을 쪼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2.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소중히 아니 바쁠수록 더욱 소중히 여겼던 건 혼자 밥 먹는 시간. 혼자 집에서 먹어야하는 밥을 대충 아무렇게나 먹고 싶지 않았다. 정성을 들여서 맛있게 만들고 싶었다. 밥 먹는 시간만큼은 차분히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내 순간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음을 감사하며 그리고 기억하고 싶어서 남긴 순간들. 주말의 브런치. 퇴근후의 저녁. 녹다운된 날 음식배달, 그리고 메뉴를 고르고 음식을 나누며 함께한 대화들.


3.

요즘 주말 오전에는 주로 가벼운 브런치를 만들어 먹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류를 선호하지만, 없으면 식빵도 좋다. 에어프라이어에 빵을 가볍게 굽고 버터를 바르거나 바질페스토, 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스프레드는 달라진다. 과일이 있다면 함께 곁들여 구워내면 더욱 부드럽게. 친구가 선물로 준 베트남 커피를 진하게 내려서 함께 먹고 나면, 하루를 시작한 준비 끝.

주말 저녁에 도시락을 만들거나 퇴근해서 지쳐 돌아온 저녁에는 있는 재료를 최대치로 활용해서 가벼운 식사를 만들곤 했다. 스팸, 냉동안심살, 냉동청국장같은 반조리식품에 냉동해둔 야채들을 활용해서 주반찬이나 찌개를 만드는 건 짧고 간단하기에 미리 해둔 밥이 있다면 일이십분 안에도 충분히 저녁식사를 만들 수 있다.


양배추를 하나 사고는 생각보다 많은 양에 여러가지 요리를 시도해봤다. 떡볶이에 넣어서, 돼지고기와 함께 양배추찜으로 가늘게 채썰어 매콤하게 양념한 돼지고기와 함께 변형한 퀘사디아.



4.

일이 바빠질수록 집에 돌아온 저녁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졌다. 특히 금요일 밤이 되면 더더욱. 일주일간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요리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피곤에 찌든 금요일저녁에는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광고로 친숙한 배달앱을 다운받아 로딩하자 끝없이 이어지는 배달음식점목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다양한 음식들 중에서 메뉴를 골라도 동일한 메뉴를 파는 음식점 중에서 어디를 골라야하는지도 어려웠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배달음식도 유행하는 메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메뉴의 대부분이 튀기거나 볶거나 구운 맵고짠 음식들이라는 것, 한 번 배달을 시키려면 일정분량(금액)이상을 시켜야한다는 것, 대부분은 나 혼자 다 먹을 수 없기에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 배달을 위해서 비닐, 플라스틱용기와 랩, 소스포장재, 나무젓가락 같은 일회용품이 어마어마하게나온다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 나자 정말 몸이 너무 피곤하지 않으면 가급적 시키지 않게 됐다.

그리고 배달음식을 시켰을 때에는, 먹을 만큼 나누고 야채를 곁들여서 그리고 소분해둔 것도 다시 따뜻하게 익혀서 최적의 상태로 먹으면 좀 더 알차게 먹을 수 있다는 노하우도 익히게 됐다. 더불어 배달음식은 혼술과 함께. 캔맥주, 막거리, 와인, 주종을 가리지 않고 폭음하지 않고 딱 기분좋을 만큼 먹고 멈추는 것도 연습하게 되었다.



5.

퇴근시간이 다가오는데 혹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너무 배가 고플 때에 이따금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혼자 먹기엔 부담스럽고 집에 돌아갈 걸 생각하면 이미 귀찮아지던 음식점 나들이도 친구와 함께 기꺼이 만나서 메뉴를 고르고 대화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곤 했다. 약속을 잡고나면 피곤에 지쳐 무겁던 발걸음도 어느새 가벼워지고 음식을 나누며 수다를 떨다보면 스트레스받았던 순간들도 조금은 가벼워지고 있었다.




6.

일과 일 사이, 피로로 눅진해진 몸을 달래주는 시간을 갖곤 했다. 애정하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시키고 혹시라도 출출하면 곁들인 미트파이, 샌드위치. 다정한 자매 사장님들이 피곤을 걱정해주면 만들어준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허기를 채우고 창 너머 지나치는 사람들과 함께 기울어지는 늦가을 햇살을 잠시 지켜보고 있으면 그래도 충만히 한 계절을 지나고 있다는 게 감사했다.


바쁜 와중에도 소중히, 아니 바쁠수록 더욱 소중히. 맛있는 음식으로 나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다짐하듯 한 번 더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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