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일상실험
1.
코로나4단계와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나의 일상실험은 여전히 이어진다. 브런치플랫폼에서 친절하게도 글을 올린지 오래됐음을 알리는 공지가 와서 확인해보니 글을 올린지 한달이나 지나있었다. 의식주 일상실험이라는 주제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2019년 봄이었고 본격적으로 일상실험의 내용을 적어올리기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쯤 근 1년전이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돌아보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가치와 가고자 하는 지향을 일상을 살아내는 것으로 실천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늘 돈보다는 시간을 택하는 나. 물건을 가지는 것보다는 순간을 경험하는 쪽을 택하는 나. 내가 즐거운 만큼 다른 이들도 즐겁기를 바라는 나. 그런 내 모습 그대로 조금 더 알차게 살아내고 싶어 글을 적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서. 아주 사소한 순간순간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것, 스스로를 돌보고 북돋고 채우며 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얻거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처음 6개월은 "주"를 만들고 다음엔 "식"에 집중한 6개월이었다. 살 곳을 정하고 공간을 만드는 일이 마무리되고는 공간을 채우고 유지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본격적으로 주방을 갖춘 곳에서 사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출근을 하며 세 끼를 제대로 챙겨먹는 게 것도 처음이었기에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무엇보다도 요리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넓고 깊은 세계였다. 나는 지난 6개월간 그 무궁무진한 세계에 조금씩 발을 들이며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누군가와 나누는 것도 즐거워한다는 걸. 식탐도 크고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도 강하고 새로운 시도도 겁내지 않고 실험도 곧잘 한다는 걸. 음식 자체에 매료되는 일도 많고 음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걸. 음식을 앞에 두고, 음식을 나누며, 음식과 관련된 대화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한다는 걸.
이렇게,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나 자신을 또 조금 더 잘 알아간다.
3.
코로나4단계 격상과 박물관 개관, 중복대서말복까지 계속된 무더위를 보내는 식생활. 역시 '최대한 게으르게'가 나의 기조였고 기회가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을 찾아먹으려 애를 썼다. 맛있는 음식을 아끼는 이와 함께 찾아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나에겐 일종의 격려이자 응원같은 혹은 기념이자 축하같은 순간들이었다.
박물관 개관 앞뒤로 숨가쁜 일이주를 보내고 일부러 연차를 써서 저렴한 날짜에 하루를 호텔에서 잤다. 뽀송한 침구와 쾌적한 습도가 갖춰진 룸에서 느긋하게 낮잠도 즐기고 어슬렁어슬렁 나와서 외국음식들을 섭렵했다. 일종의 1박2일간 도심속 외국여행이랄까. 이태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고 조용했고 작열하는 태양이 뉘엿해지는 오후, 아스팔트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골목에서 나름 이국의 맛으로 여행기분을 냈다.
멕시칸. 하시엔다. 주문하자마자 만들어주는 신선한 과카몰리와 그릴비프를 얹은 후라이드포테이토, 브리또, 멕시칸맥주와 마가리타. 느지막한 브런치. 푸짐한 샐러드와 슾, 쉬림프샌드위치와 베네딕트에그. 진한 커피. 베트남쌀국수. 분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주는 이국의 음식들.
말복에는 전복죽과 냉면을 함께주는 식당에 가서 냉면, 갈비탕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말복이 지나면 이제 여름도 끝나겠구나. 올 여름도 치열한 날들이었지. 적으며 다시 한번 돌아보는 올 여름 무더위의 기억.
4.
몰아치듯 바빴던 일정을 일단락하고 체력적으로 좀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집에서도 다시 요리를 조금씩 시작했다. 도시락도 꾸준히 싸야했기에 식단이 지루해지는 게 싫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집근처 도서관에서 빌린 요리책들을 넘겨보다가 내가 갖고 있는 재료를 활용할 수 있을 듯 하면 응용해보는 방식으로 조금씩 변화를 줬다. 다시 사진을 천천히 살펴보며 돌이켜보니 주로 제철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하되 간단하고 빠른 요리(라고 하기엔 민망하리만치 간단한 요리)들이다.
제철 햇감자로 웨지감자. 소금과 후추, 허브로 기본적인 맛을 내고 나서도 위에 치즈를 얹거나 칠리 소스, 꿀 같은 걸 더해서 먹으면 맛을 또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의외로 든든한 한끼. 커피와도 잘 어울려 여러 차례 점심으로 먹었다. 오이, 가지, 양배추 등 마트에 가면 그 주에 가장 저렴한 야채들을 살 수 있었다. 더위때문에도 신선한 야채의 아삭함과 시원함이 자꾸만 생각이 나기도 했고. 역시나 간단한 면! 면! 면! 요리라고 하기에도 옹색한 짜파게티, 비빔면, 파스타, 라면에 산더미같이 야채를 쌓고 참기름과 통깨, 추가로 마무리. 남은 자투리 야채들로 토마토소스캔과 함께 에그인헬. 스팸햄과 함께 코올슬로. 기성피클에 더해 산뜻한 반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