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게으르게!

의"식"주일상실험

by 문성 moon song

1.

전시가 오픈했고 박물관이 개관했다. 전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엄마아빠 가족들과 그 주변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이들에게도 한꺼번에 연락이 왔고 연이어 여러가지 제의를 받았다. 누군가 나에게 워커홀릭이라 했다. 글쎄, 정말 그럴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쉽게 수긍할 순 없었다.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 밀려 있고 여기 글을 적는 것도, 그러니까 일상을 챙기고 돌아보는 시간조차 미루고 쉬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날 알고 있었기에.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풀고 도시락통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음악을 틀고 한숨 돌린 후 그대로 침대로 직행했다가 씻고 잠들거나 씻고 침대로 직행하거나.


2.

더위와 분주함 속에서 나는 최대한 게으르게 일상을 챙겼다. 처음에는 게으름 피우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는데 며칠 야근하고 발이 퉁퉁 부어 집에 도착한 어느 날 문득 느꼈다. 이 게으름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나에게 게으름 피울 권리를 주어야겠다고. 충분히 게으름을 피우고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어질 때까지 나를 두어야겠다고. 돌이켜보면 매일 아침 출근 전이나 잠자리 들기 전 바닥을 간단히 청소기로 정리해주고 화장실은 샤워한 후 정리하면 전체 청소 정도는 2주에 한번 정도로도 충분했다. 빨래도 쓰레기도 2주 정도에 한 번이면 충분했다.

쓰레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최대한 물건을 늘리지도 않고 분리수거를 곧바로 하다보니 2리터도 되지 않는 쓰레기통 단 하나만으로도 2주가 충분했다. 빨래 역시 여러 차례 옷과 세탁에 관련된 책과 자료를 찾아보며 자주 빨래하는 게 옷에도 환경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냄새가 나거나 얼룩이 심하지 않은 이상 빨지 말라고 권하는 전문가들이 많다는 걸 알고 최대한 깨끗하게 입고 걸어서 통풍시켜 건조한 다음 돌려 입는 방식으로 지내다보니 자주 빨래를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물론 속옷은 매일 샤워하며 간단히 빨아 말린다. (한국인은 땀을 많이 흘려서 옷이 흠뻑 젖지 않는 한 체취가 거의 없고 옷을 물로만 제대로 세탁해도 충부히 더러움을 제거하고 입을 수 있다. 연구논문과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는 이 사실에 해외여행을 같이하던 서양친구들은 충격을 받아서 몇 번이고 내 옷에 코를 처박고 놀라워했었다. 그리고 난 그들이 곁에 올 때마다 암내에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3.

문제는 끼니챙기기였다.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공이 필요한 건 끼니 챙기기임을 새삼 느꼈다.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데에는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나날. 정신없이 전시실과 사무실을 뛰어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면 너무 배가 고픈데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아침에 두들겨 맞은 듯 쑤시는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는 것도 버거운데 아침을 챙겨 먹고 도시락도 준비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주말에는 하루종일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자다깨길 반복한 날도 있었다. 스스로를 달래며 냉장고를 열어 식재료를 확인하고 밥을 하다보면 열기 앞에 있어야 하고 밥을 다 먹고 나면 설거지거리는 일인분이어도 싱크대를 제법 채워 기어이 설거지까지 끝내야하는 게 힘들었다.

그럼에도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노릇.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할 때에도 본능적으로 게으름피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토스트,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된장국, 또르띠야, 바로 먹을 수 있는 오이, 파프리카, 쑥갓, 살짝 데치면 끝나는 곤약, 미나리...빠르게 요리하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음식 혹은 인스턴트 비빔면에 오이나 쑥갓같으 야채를 추가해서 요리시간을 줄였다.

도시락 역시 곧바로 들고 갈 수 있는 바나나, 천도복숭아 같은 과일, 토스트, 데워먹을 수 있는 카레같은 것들로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고 도시락을 다 먹고 나면 설거지를 사무실에서 해서 들고 와서 집에서 다시 정리해야하는 수고로움을 줄였다. 그래도 도저히 못하겠는 날에는, 집앞에 나가서, 좋아하는 곳에 가서, 혹은 식욕을 돋구는 음식을 골라 배달로 사먹었다.


4.

끼니문제를 사진과 함께 돌아보며 생각에 잠긴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즐겁게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얼까.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혹은 자신만의 여유를 누리며 음식에 담긴 정성을 함께 곱씹는 식사시간을 지키는 것을 넘기는 게 과연 좋은 삶일까. 나의 노동 혹은 다른 이의 노동을 그에 합당한 비용으로 지불하고 맛보는 음식의 감사함을 기쁘게 음미하고 싶다. 이것이 바쁜 일들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 게으름으로 보인다면 나는 더더욱 게으른 사람이 되어야지 마음먹는다. 좀 더 여유롭게 음식을 누릴 수 있는 빠른 조리법을 찾아봐야지, 가급적 다 쓸 수 있는 식재료를 구매해야지, 배달을 시키기보다는 직접 걸어가 다회용기에 포장해와야지. 더욱 현명하게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방법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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