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공원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나 말고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는 공원을 지키는 조각상뿐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흩어지는 동안에도 꼼짝하지 않고 고개 숙여 혼자 사색하는 그를 나 역시 혼자 앉아 스케치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건너편 벤치에 앉아있던 거리화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 활짝 웃으며 나를 부르는 손짓에 다가서자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을 스케치한 것을 보여주며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돈을 달라는 뜻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지갑에 돈이 없음을 보여주며 곤란해하자 그는 표정이 돌변해서 나를 노려보았다. 벌써 몇 번째 경험하는 일이었다.
여름정원에서는 그늘에 앉아 쉬고 있던 나에게 쪽지에 50Rb이라고 숫자까지 적어주던 아가씨도 있었다.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자 잠깐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했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그녀의 순진무구해보이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강변에 앉아 스케치하는 나를 둘러싼 남자애들도 있었다. 젊은 남자애들 서넛이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모습에 어디에나 껄렁대는 젊은애들이 있구나 했는데 어느 틈엔가 다가와 나를 둘러싸고는 히히덕거리며 말을 걸었다. 시비에 가까운 태도에 그들에게 호감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었다. 또 한 번은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더니 대화를 이어가다가 내 숙소를 알아내려고 애를 쓴 적도 있었다.
심지어 숙소 앞에서 무작정 행패를 부리던 한국인 보따리 장수를 만난 적도 있었다. 내가 머물던 숙소는 어느 한국유학생의 아파트였는데 그는 자신을 '불멸의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하던 피아노전공 유학생으로 나에게 방 하나를 빌려주고 숙박비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호텔이나 민박 외에 괜찮은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워 인터넷 검색을 하며 현지에 머무는 이들에게 무작정 문의하다가 알게 된 이였다. 그는 부족한 생활비를 얻고 나는 현지의 생활을 좀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었다. '불멸의 피아니스트'가 돈을 빌리고 갚질 않아 한국인 보따리 장수가 현관 앞에서 만난 나에게 돈을 갚으라 협박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현관열쇠구멍을 썹던 껌으로 막아버려 하루종일 집밖을 떠돌게 될지는 몰랐었다. 내가 피곤한 다리를 끌고 숙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헤매고 다니는 동안 '불멸의 피아니스트'는 사실 집안에서 숨어 있었다는 것도 역시.
거리의 화가가 나를 노려보는 그 순간 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들과 겪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도대체 나한테 왜들 그러냐고, 이곳에 호기심을 품고 온 내가 이곳을 싫어하게 만들고 싶은 거냐고, 일개 배낭여행객일 뿐인 나한테 무얼 바라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노려보다 말고 물감과 붓을 챙기는 화가를 보며 알았다. 이 순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구걸이나 시비, 터무니없는 요구나 불쾌한 시선들도 지극히 사랑스러운 상트의 주말만큼이나 우연한 일이었다. 여행을 하며 겪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맞닥뜨리고 또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깨를 잠깐 들썩이고 그 화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내가 앉았던 벤치로 돌아가 앉아 스케치를 마무리했다. 그 화가는 다시 새로운 대상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공원의 조각상은 그 해프닝이 끝날 때까지도 여전히 그 곳에 서서 사색하고 있었다. 내가 상트를 떠난 이후로도, 지금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여행객들에게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또 잊혀질 때까지 그곳에 서서 사색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