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예술가, 창조인빌에 안착하다

살다. 기억하다. 나누다: 또 다른 장석월의 시선들

by 문성 moon song

서울청년의회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예술가는 문득 성북으로 이사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가난한 예술가임을 증빙하는 것으로 창조인빌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동네친구가 되었다. 창조인빌은 미아와 월곡뉴타운과 맞닿은 오래된 월곡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새로이 이곳으로 들어와 이제 이곳에 적응을 넘어 안착하고 있는 주민으로서의 시선을 더한다.


Q. 소개 부탁드릴게요.

예술하는 기획자 정한나라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아직도 신생지역민이에요. 딱 2년 지났는데, 재작년 9월에 이사 와서 아직도 지역을 잘 모르겠고 거의 사실상 오자마자 코로나와 마찬가지였어요. 19년 하반기에는 내 바쁜 거 끝나고 코로나로 거의 집안에만 있어서 장 보러, 지하철, 버스 타는 루트 말고는 동네를 잘 모르겠어요. 최근에 가끔씩 안 가본 골목에 굳이 산책가기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Q. 장위석관월곡과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진 건가요.

성북과의 인연 1도 없었죠. 1도 없는데 (웃음) 창조인빌 (모집공고가) 뜬 걸 어디서 봤어요. 그때쯤 다시 좀 보금자리가 될만한 동네를 찾던 중이었고 친구들은 사실 성북에 많이 살고 있었어요. 오면 교류도 하고 그 친구들을 통해서, 성북의 문화예술/소셜섹터에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 건 알고 있었기에, 함께 하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 내 삶도 일과 그리 분리되는 삶이 아니라. 마침 서류가 떴고 서류 내서 면접도 보고 들어온 곳입니다. 구청이 지어서 그만큼 혜택을 주고자 가난한 예술가, 신혼부부, 캠퍼스타운 종사자, 혹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뽑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서류에 성북구에 와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하고 왔죠.

근데 막상 와서는 성북에서 뭘 하고 있다는 건 1도 없는 거 같은데. (웃음) 집이 성북이다. 막상 동네에서 뭔가 눈에 띄는 짓을 하기가 싫더라고요. (왜죠) 아, 사생활 때문에? 일과 삶이 분리가 안 되는 거랑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의 경계는 다르더라고요.


Q. 다른 지역에서 성북으로 왔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뭘까요.

계속 떠돌았죠. 인천 출신이고 어머니아버지 집이 인천에 있어요. 대학을 다닐 때, 일할 때 초반에는 집이 너무 멀고 외박횟수도 너무 많아져서 인서울, 서울 안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틈만 나면 나와서 자취를 하고 다시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지냈어요. 프리랜서로 독립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아예 집이랑 분리, 독립을 한 거 같아요. 그때도 집이 있었던 건 아니고 다른 친구 집에 더부살이하거나 공동주거를 하거나 아예 작업실에서 살거나. 적을 두지 않고 떠돌아다닌 세월이 4, 5년 정도 되는 거 같아요.


Q. 왜 굳이 서울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나요.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활동 바운더리가 자연스럽게 서울로 세팅이 되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문화예술 관련한 것들이 진보적인, 다양한 씬들이 서울에 많으니까 기회 자체도. 그래서 서울에 자리 잡으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때 당시 프리랜서 독립 준비할 때 만난 친구들이 청년허브 통해서 만났던 친구들인데 그때 교류하며 했던 일들이 모두 다 서울에서 벌이지고 있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작당을 서울에서 시작하다 보니까.

서울에서 양가적인 감정이 있는 거죠. 기회도 많지만 복작복작 부대끼기도 하니까. 부대끼는 거 지친다, 지역에 내려가면 다를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지역에서 지내는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아 나는 못 내려가겠다는. (웃음) 엄청 파이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게을러서 그 정도로 에너지가 있을 거 같진 않아요. 그리고 어쨌든 막연한 선입견이지만, 제가 워낙에 리버럴해서 지역에 가면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Q. 서울의 다른 지역과 성북의 창조인빌 차이점도 느끼시나요.

성북 오기 전에 군자에 잠깐 있었고 그전에 불광에서 3년 있었죠. 서울혁신파크. 불광이나 성북에 그나마 적을 두고 있었던 건 좀 청년의 냄새,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그런 게 좀 느껴진달까. 예를 들면 김영배 구청장 시절이 제가 국회에서 일 할 때였고 김영배 구청장님이랑 일 때문에 따로 만난 적도 있는데 실질임금제가 핫할 때여서 인터뷰하러 오고 그러저러하면서 성북이 되게 혁신까진 아니어도 앞선 곳이다 그런 인상은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고. 성북에서 활동하는 친구들 보면서 예를 들어 성북신나라든지, 공탁도 알게 되면서 천장산 우화극장, 미아리 예술극장 고가 밑 어디 뭐시기, 재미있는 게 많더라고요. 그런 다양한 여러 가지 씬들이 자발적으로 벌어지는 동네라는 게 인상적이었던 거 같아요. (웃음) 나도 좀 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와서는 코로나 때문에 뭘 한 게 없어서. 저도 제 일 하느라 너무 바빴고.


창조인빌포스터.jpg
창조인빌2.jpg

처음 창조인빌 입주했을 때, 네 개 동이 있는데, 임시 동대표를 했는데 그때 만난 옆 동 대표님이 여기 온 게 자기 아이들이 크면서 동네 안에서 예술가들의 여러 가지를 보면서 자라는 걸 보고 싶어서 굳이 여기 왔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셔서 저런 분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도 약간 그런 걸 기대할 뻔 하였으나 지금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죠). (웃음) (구청의 코디네이터가 창조인빌) 앞에 광장이 있는데 작은 공연을 하거나 플리마켓을 하거나 그런 게 벌어질 수도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이웃 같은 이웃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예술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런 기대를 했었죠. 그런데 다들 저랑 비슷한 거 같아요. 적을 둔 건 여기지만 몸뚱이는 여기에 두나 나가서 각개전투하는 거 같아요. 문화예술계가 코로나로 회복이 안 되는 것도 있으니 먹고사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초반에 그렇게 분위기가 잡혀서 이후에 다른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Q. 지역민으로서 이곳이 자신에게 어떻게 여겨지는지?

성북만의 특이성이라기보단 서울시가 자치구별로 시민관리를 잘 하는 거 같아요. 군자에서도 통장이 이주를 환영한다는 문자도 보내주고 좋게 말하면 환영받는, 나쁘게 말하면 감시받는 느낌. (웃음) 성북 와서는 이차저차 사정 때문에 기대만큼 지역 안에 녹아든 삶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거 같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유하다가 창조인빌 와서는 안정감을 확보한 게 있어서 앞으로 조금 정주성을 가질 수 있는 뭔가를 좀 더 탐색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은 성북구는 이런 게 좋은 거 같아, 하고 떠오르는 게 부족한 거 같아요. 정서 자체가 워낙 부유하며 살았던 시간이 길어서, 2년이 지나니까 이제야 조금 이 집이 내 집이구나 적응되는 느낌이어서. 집도 이제야 적응했는데 지역에 적응하는 건 훨씬 더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지역에서 본인에게 가장 특별한 공간/장소를 꼽는다면? 그 이유는?

콕 집어서 좌표가 있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두루 괜찮은 거 같아요. 마트가 가깝고 조금만 나가면 산책할 수 있는 천이 있고 옆에 수목원도 있고. 근데 사실 나는 그런 걸 찾아다니는 인간도 아니고 당신이 가이드해줘서 다닌 거라. (웃음) 딴 동네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굉장히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전에 살던 군자, 불광 같은 곳에서는 올레가 있어도 산책 한 번을 안 갔는데 코로나랑 타이밍이 맞은 것도 있고 마음도 좀 다르겠죠. 산책이라는 게 붙은 느낌.


Q. 산책할 때 동네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요.

되게 재밌는 동네다? 옛스러운 게 보일 때도 있고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가는 것도 있고. 옆 동네만 가도 곧 무너질 것 같은 담벼락과 집을 볼 수 있는데, 이 동네 히스토리도 들어서, 사창가 슬럼가 등등, 그런 것들을 감안했을 때 오래된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게 재밌는 거 같아요. 구경하는 재미.


KakaoTalk_20210901_004537919_04.jpg
20210509_174239.jpg

Q. 살기엔 어때요.

살기 좋죠. 얘기한 것처럼 마트 가깝고 뭐 서울 안에서 병원이든 경찰서든 가전제품 수리점이든 조금만 움직이면 다 근처에 있으니까. 그런 삶의 편의성 차원에서는 불편할 게 없고 약간 그냥 제가 적응이 필요한 거 같아요. 이웃들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 그런 게 여전히. 이 동네가 이 필지 안에 130여 세대가 있는데, 이게 작은 다세대도 아니고 아파트만큼 큰 세대도 아니고.


Q. 이 지역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뭔가요.

계획 같은 건 없고 그냥 저의 목표 아닌 목표 같은 목표는 어떻게 하면 가난한 예술가의 지위를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예요. 그래야 이 집에서 20년을 살 수 있어서. (웃음) 사실 이전에는 집이라는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건 저의 도피적 생각이었던 거 같고. 막상 내 집 같은 집이, 둥지에 안착되다 보니 마음도 그렇고 일하는 것도 전반적으로 안정감이 생기는 거 같고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요. 그전에는 월세 자체가 너무 비싸서 적은 노동과 적은 임금을 지향하면서도 돈 버는 것에 대한 압박이 심한 편이었고 그 압박이 대부분이 월세로 인한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집 자체도 마음에 들고 동네도 마음에 들고. 성북구에 대해서 감사한 점은 그런 거죠. 돈도 없고 비루한 예술가를 이렇게 위해서 (웃음) 복지, 주거복지를 세팅해준 그런 게 굉장히 감사하다. 요즘 예술인 주택 많이 생기긴 하는데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심지어 신축으로 한 거니, 청년이든 가난한 이들이든 예술가든 그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감사하죠.


Q. 지역/지역민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내 마음의 허들인 거 같아요. 공탁 단톡방에 저도 있어요. 그 안에 문화예술프로그램이라든가 전시공간 소개 같은 게 굉장히 많이 올라오는데 그냥 가면 되는데 마음의 허들이 있어요. 아직은 선뜻 가기가 안 내킨다고 해야 하나. 마음의 허들이 낮아지면 언젠가 거기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를 만나고 교류하며 새로운 관계가 접점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 바란다기보단 내가 해야죠. (웃음) 이주민에 대한 환대의 제스처는 여기저기 굉장히 많은 거 같아요. 운이 좋아서 아는 분이 단톡에 초대해주셔서 그런 씬들을 알 수 있었는데 만약에 공탁방에 없었으면 몰랐을 거 같긴 해요. 그래도 성북구 구청 소식지 같은 것도 현관에서 집어와서 봐요. 띄엄띄엄 보면서 행정적 알림이든 정서적 환대든 그런 건 꽤 있는 거 같아요.


* 이 프로젝트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생애사와 드로잉을 통해 성북의 장위동 일대 지역의 미시사를 기록한 작업입니다. 2021년 성북문화재단 예술순환로 성북오픈리서치랩의 소주제연구 지원을 받았습니다.

keyword
이전 08화중년이 되어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