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어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오다

살다.기억하다.나누다: 또 다른 장석월의 시선들

by 문성 moon song

그녀는 나처럼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까지 낳았지만 아이들의 입시를 위해서 이곳을 떠났다. 그리곤 아이들이 훌쩍 커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이곳에 돌아와 노후를 위해 둥지를 틀었다. 재개발이 되기 이전의 이곳을 살았고 이제는 재개발이 되고 난 이곳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곳의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는 동시에 이곳의 현재를 다시 살아가고 있는 주민으로서의 시선을 더해본다.


그냥 집이죠, 뭐. 우리 동네. 늘 있는 공기 같은 곳이니까. 여기서 떠난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 같아요. 싫어서 떠난다는 생각 같은 거.


Q.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김 00(*요청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음)입니다. 한 다섯 살 정도부터 장위동에 이사 와서 살았던 것 같아요. 월곡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는 피아노과를 가느라 이 동네에서 다니진 않았지만 다시 염광여고를 나왔어요. 대학에 가고 이 동네에서 결혼해서 신혼집을 꾸리고도 꽤 오랫동안 여기에서 살다가 잠깐 중계동으로 이사 가서 7년 정도 살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친정 근처인 상월곡동. 장위동 옆에서 살다가 북서울 꿈의 숲 근처로 이사 왔어요. 인생에서 7년을 제외하고 장위동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죠.


Q. 장위동에서의 기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래요?

월곡초등학교 바로 밑에,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월곡초등학교 축대 밑 월곡초등학교 철조망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곳에서 전세로 살았어요. 월곡초등학교에서 정문으로 나오면 길이 있고 문방구들이 있고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서 남아있지 않아요. 그때는 월곡초등학교에서부터 밑으로 내려가는데 골목길이 많고 집이 많았어요. 사람이 두 명 다닐 만한 좁은 골목에 집들이 있었죠. 그 골목들 꼭대기에 월곡초등학교가 생기고 얼마 안 돼서 제가 입학했어요. 내 기억으로는 장위초등학교 학생수가 너무 많아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장위초등학교는 규모가 (월곡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학급수가 많았어요.

근데 월곡초등학교에 다니긴 했는데 밑에 있던 우리집은 상월곡동이었는지 장위동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국민은행사거리까지는 규모 있는 집들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전세 들어 살던 집도 그런 집 중에 하나였는데 주인집의 별채에 마당이 넓은 곳이었어요. 초등학교2학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고 몇 번 전세를 옮겨서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살다가. 독채 전세로. 지금 부모님집이 있는 골목 아랫골목의 모퉁이 끝집에서도 전세로 살았어요. 그 집은 두 채로 되어 있어서 우리집이 한 채를 쓰고 다른 집이 다른 한 채를 썼죠. 마당이 넓었어요. 그 집도.

초등학교 3. 4학년 쯤 지금 부모님 집으로 이사왔어요. 집을 사서 이사 온 거였어요. 오래된 집이었죠. 숲이 우거졌다고 할 정도로 나무가 많았어요. 대추나무, 앵두나무, 온갖 종류나무가 다 있었고 연못도 있었고. 나중에 나무들을 좀 베고 뒷채를 새로 지었어요. 되게 넓었죠.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중학교 때에는 이미 그 뒷채가 지어져 있었어요.

결혼을 할 즈음 부모님이 바로 뒷집으로 이사 가서 집을 지을 준비를 했고 곧 원래 자리에 새로 지은 집 1층으로 이사를 왔어요.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살았죠. 둘째가 네 살 정도까지. 애가 둘이라 너무 좁아서 상월곡역 우남아파트로 갔다가 돌곶이역근처 우방아파트로 갔어요. 그 다음엔 월곡초등학교 아래 동아아파트로 갔죠. (왜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았나요.) 그 때 엄마가 애들을 봐줘서 퇴근하면 엄마와 같이 애들을 돌볼 수 있었어요. 육아를 엄마가 해주셨죠. 고맙죠. 믿고 맡길 수 있는 데가 없잖아요.

그다음에 동아아파트 내에서 한 번 더 이사를 했어요. 그때쯤 애들이 커서 더 이상 돌봄이 필요하지 않았고 할머니할아버지 집보단 우리집에 있고 싶다고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계동으로 이사를 갔어요. 원래 중계동에 갖고 있던 집에 들어가게 된 거였죠. 그 전에는 전세를 둔 상태라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중계동에서 얼마나 지내셨나요.) 7년이요. 그리고 다시 월곡동 동아아파트로 돌아왔어요. (다시 돌아온 이유가 뭔가요.) 친정 근처에서 살고 싶기도 하고. 엄마가 아팠기도 했고. 장위동이 편하니까요. 중계동은 그렇게 마음을 붙이고 싶은 동네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할까요. 학원이 많아서 애들 교육시킬 때 내가 차로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점이 있었어요.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니까 더 이상 그런 게 필요 없었고 무주택으로 그냥 전세로 살자고 남편이랑 이야기했었죠. 잘못된 예측이었지만 집값이 내려갈 거라고 예측하고 편안하게 살려고 했는데 집값이 다시 뛰게 된 거죠. 상대적으로 노원구보다는 아파트가격이 저렴하니까 그냥 여기서 사서 안주하려고 했는데 동아아파트는 너무 오래 되서 다시 새로 지은 북서울 꿈의 숲 코오롱아파트로 오게 됐어요. 동아아파트에 한 3년 정도 있다가 여기 북서울꿈의 숲 앞으로 오게 된 거 같아요.


Q. 중계동에 정붙이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그건 내 느낌일 수도 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그럴까, 애들 교육에만 관심 있고 그런 사람들로만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친했던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지금도 (만나러) 가고 있지만. 뭐랄까 공동체적 느낌이 안 든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장위동에서 사람들하고 막 어울린 것도 아닌데 그냥 더 각박하게 느껴졌어요. 학원이 많고, 단독주택도 없고, 좀 뜨악하고 썰렁하죠.


Q. 주택과 아파트, 둘 다에서 살았는데, 차이점이 있나요?

아파트는 일단 문단속이 편해요. 근데 주택은 마당이 있으니까. 옛날에는 앵두 따먹고 대추 따먹고 그러고 살았어요. 나무가 너무 많아서 밤에는 비가 오고 그러면 무섭게 느껴져서 엄마가 좀 베어버린 적도 있어요. 골목에서 놀았던 기억이 나요. 애들이랑. 한 초등학교 2,3학년까지.


Q. 다시 장위동을 돌아오면서 주택에 살고 싶은 맘은 없었나요.

어린 시절에 살던 주택이 너무 힘들었어서 주택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요. 아파트는 편한데. 지금 아파트는 단열이 잘 돼서 그렇게 춥지 않아서 좋은 거 같아요. 일단 단독주택은 단열이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좋은 재료 써서 새로 지으면 모르겠는데 난방손실이 많은 거 같아요. 너무 옛날주택에 살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근데 지금 주택은 주택이라도 다세대주택이라서 별로 정이 가는 주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장위동도 집을 다 다시 지었고 다세대주택이라 장위동도 옛날보단 별로에요. 어차피 마당 없애고 집으로 가득 채우면 단독주택의 의미가 없잖아요. 그리고 신혼부부같은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시작하려고 하지 아파트 아닌 곳에 안 가려고 하고 다세대주택은 이주노동자나 사람들이 들어가고 슬럼화되고 하니까. 근데 뭐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해요. 단독주택이 별로 메리트가 없으니까.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단독주택은 현실에서는 드물잖아요.


Q. 중계동 아파트와 장위동 아파트에서 차이를 느끼시나요?

장위동이 더 싸니까 같은 값으로 좀 더 넓게 쾌적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오려고 했던 것도 있어요. 상월곡동 아파트는 아무래도 단독주택이랑 섞여있으니까. 옆에 산이 있기도 하고. 덜 답답하기도 하고.


Q. 그럼 지금은 어떠세요. 북서울꿈의 숲 코오롱아파트 뒤로는 (아파트들이 막 입주를 시작했거나 막 완공됐거나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는 등) 개발의 한복판에 있는데요.

여기요? 그냥 그래요. 대단지화 되고 있으니까요. 나중에는 중계동이랑 비슷해질 수도 있겠죠. 근데 다행히 여기는 꿈의 숲이 있으니까. 그래도 여기는 약간, 도로와 도로 사이에 중계동보다는 여유가 있으니까. …앞으론 모르죠, 뭐. (네, 중계동만큼 밀집된 느낌은 아니긴 해요.) 맞아요. 내가 이곳을 고른 이유는 아파트 도로, 공원 등 사이가 여유 있게 느껴져서. 그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바둑판처럼 차곡차곡 되어있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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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른 지역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시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히 다른 데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아무래도 친정 근처라서?


Q. 지역민으로서 이곳이 어떻게 여겨지세요.

그런 생각자체를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냥 집이죠, 뭐. 우리 동네. 늘 있는 공기 같은 곳이니까. 여기서 떠난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 같아요. 싫어서 떠난다는 생각 같은 거. 딱히 싫지도 않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할 만한 그런 것도 없어요.

(생각해보다가) 근데 장위시장은 시장으로서 굉장히 큰 편이고 예전에는 장위시장에서 장을 많이 보고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안 가시나요.) 지금은 안 가지. (왜 안 가시죠.) 지금은 (장위시장에서) 멀리 살잖아요.


Q. 그렇다면 자라면서 그리고 돌아오고 나서 이곳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그때는 되게 장위동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장위시장도 다른 곳에 비해서 엄청 큰 곳이었고. 지금은 너무 죽어있어서 약간 식물인간 같다는 느낌이에요. 재개발하지 않은 곳도 죽어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석관동을 가보면 장위동만큼 죽어 있지 않거든요. 거기 있는 상권은 여전히 옛날처럼 촌스럽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있는 거 같아요. 버스가 다니고 사람이 다녀서 그런가? 거기는 살아있는 거 같아요. 거기가 더 좋게 리모델링되거나 그런 게 없는데도. 왜 괜찮죠? 장위시장은 죽어있는데. 장위시장은 큰길이 아니어서 그런가?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옛날 장위시장 초입부터 올라오는 큰 길, 내려가는 길도 다 죽은 거 같이 느껴지던데. 나한테는. 가게는 엄청 많은데 죽어있는 거 같아요. 사랑제일교회까지 이어지는 그 길도. 사랑제일교회사건 때문에 더 그렇게 됐나? 모르겠네요.

돌아오고 나서는 좀 죽어있는 게 안타깝죠. 장위동 재개발이나 등등 여러 가지로. 들썩이고 어수선하고 상권 같은 건 죽어있고. 예전에 활발했던 곳이 그렇게 된 게 약간 슬럼가같이 된 거 같아서 슬퍼요. (장위동 뿐만 아니라 월곡에서도 사셨잖아요.) 월곡이 장위랑 완전히 거꾸로 됐죠. 예전엔 장위동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곳이었고 월곡이 오히려 슬럼가 같은 곳이었는데. 장위동은 집들이 노후화됐거나 바꿨어도 다세대주택이고. 월곡동이 그렇게 된 게 어찌보면 다행이죠. 그것마저도 없었으면 힘들었을 테니까. 카페나 가게나 이런 게 다 거기에 생겼으니까요.


Q. 이 지역에서 본인에게 가장 특별한 공간/장소를 꼽는다면, 그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젋었을 때는 장위사거리 국민은행 근처에서 카페나 음식점이 많이 있었어요. 국민은행 근처에서 아래 장위시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카페나 레스토랑같은 것들. 국민은행 위쪽에는 자주 다니던 옷집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도 그런 것들이 있어서 거기에 자주 갔었죠. 동방주택 쪽으로 연결되는 길. 그래도 한 30대 때까지 거기가 살아있었던 거 같아. 근데 거기가 다 죽었잖아요. 장위동이 낙후되면서 그쪽도 같이 죽은 거 같아요.

그 다음에는, 내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다음엔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공간은 없는 거 같아요. 젊을 때는 국민은행에서부터 우리집까지, 걸어오는 그곳이 너무나 크고 길도 넓고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사람도 너무 안 다니고 되게 약간 황폐해진 느낌이었어요. (저한테는 성북정보도서관이 의미가 있었는데요) 거기 많이 갔었죠. 애들 데리고도 가고. 그리고 월곡초등학교까지 산책길도 많이 이용했어요. 애들 어릴 때. 드림랜드도 많이 갔었죠. 만만해서. 갈 데가 없어가지고. (드림랜드였다가 북서울꿈의 숲 공원으로 바뀌었는데 어떠세요.) 글쎄. 뭐 공원이 된 건 좋죠. (집앞에 있는데 공원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세요?) 그렇게까지 자주는 이용 못해요. 생각처럼. 퇴근하면 쉬고 싶으니까 잘 안 가게 되요. 근데 집에서 공원이 보이니까. 나무가 보이니까. 그건 참 좋아요. (그럼 그것도 생각해서 여길 고른 건가요.) 네. 그래서 저층을 일부러 안 골랐어요. (공원이 더 잘 보였으면 해서요?) 공원이라기보단 공원 옆에 있는 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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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지역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얼까요? 지역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신가요.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아직까지는 큰 계획은 없어요. 퇴직하고 지역에서 만약 의미 있는 일이 있으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몸이 아프지 않다면. (예를 들면 뭐가 있을까요.) 뭐 하지도 않고 함부로 말하기가 그래서. (괜찮아요.) 지금까지 배운 도둑질을 써먹는거죠, 뭐. 가르치는 거, 봉사로.


Q.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신 이유가 무언가요.

보내지 않을 생각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단 북서울꿈의 숲에 자주가지 않더라도 공원이 있고. 낯선 곳에 나이 들어서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특별히 강남같은 데를 좋아하지도 않고요. 갈 돈도 없지만. 필요하면 지하철타고 어디 갈 수도 있으니까. (아파트 앞에 경전철공사를 시작했더라고요.) 2025년에 끝난다더라고요. (생각보다 빨리 끝나네요.) 근데 너무 시끄러요. 그래서 문 닫고 있어요.


Q. 이 지역에 혹은 지역민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노원구는 버스를 기다리는 의자에 따뜻한 거 들어오던데 우리도 그런 거 해줬으면 좋겠어요. 앉아서 기다리는 의자에 난방 되는 거. 열선이 들어있는 거 같던데. 성북구는 안 되는 거 같아요. 지역사람들한테는. 글쎄. 재개발 때문에 너무 민심이 흉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이 프로젝트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생애사와 드로잉을 통해 성북의 장위동 일대 지역의 미시사를 기록한 작업입니다. 2021년 성북문화재단 예술순환로 성북오픈리서치랩의 소주제연구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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