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일상실험
1.
"인생은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돌아봐야 한다."
- 키에르케고르
2.
이 문장을 알려준 이는 올리버 색스였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두 번째 페이지에 이 문장 하나만을 적었다. 첫 번째 페이지는? "빌리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였다. 자신의 자서전을 펼칠 이들에게 가장 간결하고도 압축적으로 알린 셈이었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달리 말하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는지.
올리버 색스는 뛰어난 학자였고 동시에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성소수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고 그의 임상적인 노력과 통섭적인 관점이 학계의 외면을 받으며 고투해야 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두 문장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진 그도 선대의 철학자의 말에 기대어 그리고 개인적인 고백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막연한 상황 앞에 놓인 한 사람으로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살아내며 자신의 일상을 함께한 소중한 이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한 일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적어내려갔을 그의 심정을 혼자 가만히 헤아려본다.
3.
결국 누구든 한 인간으로서 마주하는 매일을 살아가며 바랄 수 있는 건, 일상을 함께하는 가까운 이들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작업해온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을 다시 펼쳐들며 마주한 두 문장은 엄마가 떠난지 6개월 그리고 2년에 가까운 시간 박물관 업무를 마무리하고 난 지금의 나에게 올리버 색스가 건네주는 답변같았다. 엄마가 떠나던 날 이후 지금껏 문득문득 어떻게 살고 싶은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곤 하는 나에게 이미 지난한 시간을 견디어온 따뜻한 목소리로 건네는 위무.
4.
나는 다시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 나 자신과 그리고 함께하게 될 사람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그것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살아온 시간들을 이해하기 위해 돌아보고 또 그때그때 갈무리하며 그 시간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나누어보려 한다. 그렇게 의식주일상실험의 기록을 이어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