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는
엄마가 남긴 옥반지를

"의"식주 일상실험

by 문성 moon song

1.

더위가 시작되고부터 옥반지를 끼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두 개의 옥반지가 있다. 하나는 원형에 가까운 청록색 다른 하나는 타원형으로 그야말로 맑은 옥색에 가까운 옅은 연두색. 나가기 직전 옷에 맞게 귀걸이나 반지 혹은 시계를 착용하곤 하는데 여름이 시작되면서 옥반지를 끼는 날이 잦다. 옷차림의 색감이나 분위기에 따라 둘 중 하나를 고른다. 옅은 연두색의 옥반지는 셔츠나 무늬가 없는 티셔츠와 같은 단순한 디자인에 무채색이나 베이지색 계열의 정장류의 옷들과 잘 어울리고 청록색은 청색이나 녹색 계열 혹은 보색의 붉은 색계열의 화려한 색감 그리고 의외로 경쾌한 티셔츠나 청바지 같은 캐주얼한 옷들과도 이질적이면서도 무리 없이 어우러진다.

둘 다 제법 두께가 있는 반지라 끼고 나면 그 매끈하고도 질감이 서늘하게 전해지고 묵직한 무게감이 안정감 있게 느껴진다. 일과 중 문득 반지의 무게감과 질감이 손에 닿을 때마다 시원함을 느끼곤 한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남긴 무엇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게 좋다. 이렇게 엄마의 무엇을 지니고 다니며 엄마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다른 이들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사랑하는 이의 유품을 어떻게 할까?



2.

두 개의 옥반지는 엄마가 남긴 유품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을 마무리하고 언니들과 엄마의 유품을 함께 정리했었다. 우리는 물건들을 분류해 대여한 것들은 반납하고 필요가 없는 물건들은 기부하거나 처분하고 남은 물건들은 어떻게 할지 의논했었다. 이미 오랜 투병생활 끝이라 남은 건 엄마가 아프고 나서 썼던 옷과 물품들 그리고 엄마가 아프기 전에 썼던 옷과 물품들이었다.

엄마가 아프며 썼던 우주복이라 불리는 환자복, 방수처리가 된 패드, 빨기 쉬운 넉넉한 티셔츠들은 이미 수없이 세탁하고도 지워지지 않은 얼룩들로 매일의 의식주를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엄마의 몇 년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고 함께 그 물건들을 모아 폐기물 봉투에 담았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기 전에 썼던 옷들과 물품들 앞에서는 언니들도 나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엄마가 입을 때마다 행복해했던 우리가 사준 옷들, 무대에 올라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랑스러워했던 합창단 드레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엄마의 화사한 외출복들 …. 어린 마음에 분 냄새와 함께 하늘하늘하게 스치던 옷자락과 우아하던 실루엣 그리고 반짝거리던 액세서리를 보며 처음으로 접한 여성성에 우리 엄마는 참 예쁜 사람이구나 감탄하곤 했던 순간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들이 두서없이 떠올라 목이 메었다. 우리는 기억을 더듬다 점점 말이 없어졌고 나는 엄마의 옷장에 걸린 옷들 속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워서였을까, 언니들은 이미 옷장 속에서 너무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낡은 물건들을 모두 처분하고 싶어 했지만 내가 가져가고 싶은 게 있다면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바래고 닳은 물건들 속에서 내가 간직할 수 있는 그리고 때때로 입거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것들을 골랐다. 엄마가 좋아하던 보라색으로 된 롱코트. 내 기억 속에는 없지만 사진으로 남아있는 엄마의 중년을 함께한 트렌치코트.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분홍색, 큼직하고 화려한 귀걸이들 두어 쌍과 분홍색 칵테일 반지와 옥반지 두 개. 그렇게 나는 엄마의 물건들을 가져왔고 겨울에는 코트를 가을에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여름이 되어서는 엄마의 옥반지를 끼고 다니기 시작했다.


3.

엄마는 귀를 뚫지도 않았고 목걸이나 반지를 즐겨하지도 않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얼마 안 되는 화려한 액세서리들을 -옥반지 두 개를 포함해-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 부족한 살림에 딸 다섯을 키우느라 거기에 더해 시댁과 친정에 틈이 나는 대로 돈을 보태야 했기에 늘 돈이 없었던 엄마임을 알기에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이것들이 값나가지 않는 물건임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보석을 세심히 감별하는 안목이 없는 내 눈에도 금붙이라고 할 수도 없는 금속에 유리나 광택을 입힌 저렴한 원석들로 만든 게 분명한, 굳이 커스텀 주얼리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사실상 값어치라고는 제로에 가까운 액세서리들. 그렇다. 옥반지들도 역시 옥처럼 보이게 만든 저럼한 원석이거나 색을 물들인 유리알같은 가짜 옥반지인 듯하다. 작년에 서울무형문화재 특별기획전시를 맡으며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옥장인 선생님의 작품들을 실견하고 만져도 보며 진짜 옥이 어떤 빛깔에 광택 그리고 투명함을 갖고 있는지도 익히 알았기에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왜 굳이 가짜 옥반지를, 쓰지도 않고 값도 나가지 않는 언뜻 보기에만 화려한 액세서리들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던 것인지 혹은 엄마가 마음에 들어서 샀던 것인지 나는 모른다. 이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영영 알 수 없으리라. 가만히 기억을 더듬는다. 손이 크고 손가락이 두꺼워서 예쁘지 않다고 부끄러워하듯 웃으며 넘기던 엄마. 귓불이 두꺼워서 귀걸이가 잘 안 어울린다고 스치듯 이야기하던 엄마.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마냥 소녀 같던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어쩌면 엄마는 이것들을 쓰지 않더라도 차마 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버리지 못했겠으리라고 다만 곁에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해본다. 엄마의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간직하던 그대로 나도 간직하고 또 지니기로 한다.


4.

폭우와 폭염을 오가며 반복되는 나날들.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적으며 엄마의 청록색 옥반지를 끼고 있다. 가짜 옥반지임을 알지만 엄마가 오래도록 간직해온 이 반지를 내가 끼고 다닐 수 있다는 게 기쁘다. 반지를 끼운 넷째 손가락에 느껴지는 청량함이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한다. 이제 엄마가 없는 여름 어느 날을 이렇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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