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건,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일
의"식"주일상실험
by 문성 moon song Jan 19. 2022
1.
엄마가 돌아가신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엄마가 떠나고 엄마가 떠올라 견딜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글을 쓰지 못했다. 나에게 글은 결국 가장 절실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되곤 했다. 그렇기에 의식주일상실험이라는 제목으로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기록하던 이 연재를 이어가는 건 어려웠다. 아니,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엄마가 떠났는데 먹는 걸 이야기하다니. 아니, 덧없이 느껴졌다. 이런 것들을 기록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럼에도 나는 장례식에서조차 먹고 마시고 음식을 두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다. 결국 살아있다는 건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그것을 통해서 다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나에게 가장 중요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고 해도 멈추지 못하는 일.
2.
장례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홀로 눈을 뜨는 아침마다 무기력했지만 해야 할 일들이 일어나 출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또다시 집으로 돌아와 내일을 준비하다가 잠들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끼니를 때우고 돌아와 지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나가 사람들을 만나서 끼니를 때우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인가 감기몸살에 걸렸다. 나가서 무언가를 먹기도 어려운 며칠을 보내며 냉장고를 열었다.
오랫동안 냉장고를 버려둔 채 열어보지 않아 먹다 남은 음식들과 사두었던 식재료들이 상해 가고 있었다. 새삼 엄마가 돌아가셔도 일과를 챙기고 번잡스러운 집안일들을 해내지 않으면 매일을 보낼 수 없음을 실감했다. 사람들 속에서 무감각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어둠 속에서 서성이며 보내온 몇 주를 돌이켜보며 문득 내가 이렇게 보내고 있는 것을 엄마가 본다면 어떨까 싶었다.
3.
냉장고에서 상한 음식들을 꺼내어 정리했다. 남은 재료들을 확인하고 새로이 돌아오는 한 주를 준비하며 다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고 끼니를 챙기고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지푸라기를 잡듯이 계속해서 올리버 색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담아 지금 이 시기 이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글로 쓰는 것이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통해서 의미를 만들고 나누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그것임을 생각하며 다시금 의식주일상실험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4.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는 요리를 할 수 없었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요리를 해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혼자 살면서 나는 정성을 다해서 한 끼를 만들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급한 성격 탓에 일하는 와중엔 식사를 서둘러 끝나고 바쁠수록 점점 짧아지곤 했지만. 혼자 살면서 그리고 스스로를 건사하게 되면서 혼자 만들어 먹는 저녁 한 끼만큼은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나를 다독이고 채우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엄마의 투병생활 중에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엄마가 나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더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엄마가 더는 나를 보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순간들에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5.
주말 오후나 일에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퇴근 후 저녁, 사람들과 혹은 혼자 맛있는 음식을 두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햇살이 있다면 햇살과 함께 산책을 더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이라면 좋은 음악과 부드러운 조명이 함께하는 곳에서. 멋을 더하면 맛이 더욱 살아남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고 돌아와,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다시금 새로운 일들을 할 기운이 생겼다.
이렇게 돌아보며, ……, 어쩌면 엄마를 기쁘게 기억하고 또 그 기억들과 함께 기쁘게 나에게 남은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남은 과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