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일상실험: 미니멀리스트게임 day1-10
문을 닫아 두고 가끔 열어보던 수납함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그 물건들과 얽힌 기억들과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언젠가는, 그래도 어쩌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갖고 있었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이것들과 함께하는 게 필요한 순간들인가?
이것들을 계속해서 가져갈 것인가?
이것들이 나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그렇다. 미니멀리스트들이 가이드처럼 제시했던 질문이 두고두고 도움이 됐다. 꺼내다 말고 그래도 이건 갖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망설이거나 머뭇거리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추가로 묻게 된 질문들.
이것들로 구체적으로 무얼 하고 싶은가?
무얼 할지 그려지지 않는다고 해도 갖고 있는 게 기쁜가?
갖고 있는 것만을 도 기쁘다면 그 기쁨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
단순히 넣어두는 것 외에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다 보면 자연스럽게도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사인 5년 치를 정리하면서 스스로의 욕심과 강박을 절절하게 자각하고 내려놓은 덕분인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굳이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필요한 이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게 더 분명해지고 있었다.
2. 아껴"두기"만 했던 것들을 나눔으로
아껴두었던 동양화물감 2개를 경기도 어딘가의 동양화를 연습하시는 분에게 나누었다. 필름지와 인화지 등 예전에 쓰고 남아 언젠가는 쓰겠다고 보관해 두었던 것들을 전북의 어느 유치원 선생님에게 보냈다. 노트와 선물 받은 필기도구들은 필기할 것이 많다는 어느 중년 남성분에게 나누었다. 네이버의 중고나라와 당근에 사진을 찍고 상세설명을 올리자마자 속속 연락이 왔고 사람들의 짤막한 한두 줄의 이야기 속에도 각자의 사연을 상상하게 했다. 마침 필요했다는, 유용히 쓸 수 있겠다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포장을 하고 택배를 부쳤다.
5일째가 되던 날에는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받았던 것들을 모아 마참 있던 모임에 가져가 갖고 싶어 하는 지인들에게 나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긴 했지만 누구도 갖고 싶어 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들 관심을 갖고 원하는 품목을 하나씩 이야기해 주었다. 나에게는 고마워서 혹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갖고 싶고 쓸모 있는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역시나 물건을 함부로 버리기보다는 나누거나 적어도 재활용이 가능한 방향으로 최대한 노력해 보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굳혔다.
5일째까지 정리를 하고 나니 수납함이 여유로워졌다. 아껴서 "두기만" 했던 물건들을 실제로 그 물건의 용도에 맞게 쓸 이들에게 보내고 나니 오히려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이 좋았다. 더불어 어떤 것들에 미련을 갖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건 막연한 희망사항이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제대로 실행해 볼 생각이나 여력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리고 정말로 하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무얼 할 것인지, 정리를 계기로 돌아볼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이었다.
3. 기부, 나눔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
오래도록 갖고 있었던 기념품들과 내가 맡아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기념엽서들도 역시 모아서 정리했다. 나눔을 올리는 것마다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내가 정리를 한다는 게 사실은 쓰레기를 더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게 어찌나 다행스럽게 여겨지는지. 그렇게 큰 수납함 하나를 정리하고 나자 자신감이 붙어 자연스럽게 다른 수납공간들로 옮겨가며 하나씩 정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부엌의 상부장에서도 혹시나, 언젠가는,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었던 물건들을 꺼냈다. 다양한 종류의 집기와 잡동사니를 보관하던 서랍장에서도 그래도 몰라하는 마음으로 갖고 있던 것들을 꺼냈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들은 당근에 저렴한 금액으로 올리고 판매하기가 애매한 것들은 모아서 기부를 하기로 했다. 6일째가 지나기 시작하자 품목의 종류도 많아지고 개수도 많아져서 당근으로 하나씩 나눔을 하기에는 시간도 품도 너무 많이 들어서 부담이 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30일까지의 분량을 고려했을 때 중고로 판매가 가능한 것들이나 곧바로 나눔이 가능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아서 한꺼번에 보내는 것이 제일 부담이 덜한 방법이었다. 몇 차례 검색을 해본 결과 필기도구는 나눔 코리아에 택배로 부치고 나머지는 구세군 희망나누미로 보내기로 하고 박스를 마련해 모으기 시작했다. 아서 역시나 "두기만" 했던 필기구들을 볼펜, 펜, 사인펜, 네임펜, 샤프 등 품목별로 묶었더니 작은 박스 하나가 찼다. 정성스레 포장을 하고 택배를 부치고 나자 역시나 홀가분한 마음. 키홀터, 한 번도 쓰지 않은 핸드폰케이스, 충전용 배터리 등 선물이나 기념품,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어느새 십 일째가 되었고 서랍장도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나눔 코리아는 다양한 품목을 어려운 가정형 편의 국내청소년들에게 지원하는 곳으로 중고 필기도구와 학용품들도 받으며 품목을 분류해서 선불택배로 보낼 수 있었다. 모아름다운 가게는 3박스 이상, 구세군희망 나누미는 4박스 이상의 기부물품이 있다면 택배수거 신청을 할 수 있고 더불어 기부금 영수증도 받아 세액공제해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책과 같은 물품은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경우 출판 연도에 제한이 있지만 구세군은 제한이 없는 등 품목에 따라서 기부가능한 물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서 내가 기부하고자 하는 물건을 받는지 확인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