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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May 20. 2023

멈추고 누리는 순간. 향유는 그렇게 시작된다.

국립중앙박물관

*향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여러분의 향유에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국립중앙박물관


5월이 가기 전에 산책을 나선다. 풍성하고 짙은 녹음의 숲을 즐기고 더불어 아름다운 작품들의 숲을 즐기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간다. 목적 없이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 마음을 잡아끌어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 멈추고 보고 누리는 순간. 향유는 그렇게 시작된다.


* 위  치: 이촌역 4호선 2번 출구

* 관람료: 유료 특별전시 외 무료  

* 관람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수요일(입장마감 5시 반), 토요일은 저녁 9시(입장마감 8시 반)

                휴관일 1월 1일, 구정설날 당일, 추석당일을 제외


1.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진입로

대나무가 양옆으로 늘어선 진입로를 사랑한다. 이촌역 지하에서 올라와 탁 트인 정원을 지나 널따란 계단 왼쪽으로 가지런히 늘어선 대나무들. 사람만큼 큰 화분에 심은 대나무들이 건물 몇 층에 이르는 높이로 무성한 녹음을 이룬다. 그 길에 걷다 보면 저절로 전시를 볼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높다란 대나무가지 끝으로 시선을 이끌고 펼쳐진 하늘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압도적인 건축과 마주한다. 전시실 안에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유물들 그리고 그것에 얽힌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대나무 터널이 끝난다.  



2. 백자철채 인물모양 명기,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의 규모는 매번 들어서는 사람을 압도한다. 웅장한 규모에 짓눌리지 않는 하나의 방법은 시대순이나 유물의 중요성과 상관없이 마음을 끄는 작품만을 감상하는 것이다. 울창한 숲을 산책하듯 무수한 유물의 숲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다 마음을 잡아끄는 것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따금 아주 작은 것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죽은 이의 내세를 위해 만든 어른 손가락 크기보다도 작은 인물상들도 그랬다. 손으로 대충 빚은 비대칭에 무심하게 툭툭 손톱으로 눌러가며 만들어낸 얼굴에도 다채로운 표정과 가지런히 손을 모은 자세가 생생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한편으로 침착한, 걱정스러운, 놀란 감정까지도 드러나는 표현력. 이 인물상들이 지키고 바라보고 있는 그 누군가가 세상을 떠날 때 그를 보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유리진열장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3. 국립중앙박물관 사무동 옆 산책로

유물의 숲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신선한 바람을 쐬러 현실의 숲으로 나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박물관 앞 연못과 정원은 물론이고 석조정원에서 용산가족공원으로 이어지는 숲과 전통정원을 살린 후원, 사무동 옆으로는 자작나무 숲길을 조성해 놓았다. 특히 상설전시실에서 나와 남산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계단을 올랐다가 후원으로 내려가 건물을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면 활짝 핀 꽃들과 울창한 나무들, 바람에 흔들리며 부딪히는 소리까지 산책을 즐겁게 만든다. 햇살이 뜨거워도 그늘은 아직 서늘하고 산들거리는 바람에 실린 꽃향기까지 달콤한 5월 국립중앙박물관은 누릴 것들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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