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에 시작한 매일의 옷차림 기록은 10월 말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중. 사진을 찍고 Acloset앱을 열어 옷의 종류가 무엇인지 재질과 색깔, 브랜드나 가격과 같은 관련 정보를 입력하는 것까지. 처음에는 번거로웠지만 인내심을 갖고 하루하루 해나가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전신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확인할 때 혹 잊었다면 지하철역 계단 앞 전신거울 앞에서 옷차림을 확인할 때 사진을 찍고,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그날의 옷 두어 가지를 입력하면 간단히 그날의 기록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날의 옷차림 기록을 시작하며 옷장에 걸어놓은 옷들을 다 입어보자고 마음먹었더랬다. 적어도 여름이 지나고 나서 계절이 바뀔 때 겨울옷을 꺼내고 여름옷들은 내년에도 입을 옷과 내년에 입지 않을 옷을 분류해 보관용 수납장에 최소한의 분량을 넣고 싶었다. 매일 최대한 다른 옷들을 입어보려 노력했고 그걸 기록하다 보니 며칠 전에 입은 반바지를 입더라도 상의는 다른 티셔츠를 고른다거나 카디건을 더한다거나 해서 그 역시 옷을 다양하게 매치해 입는데 도움을 주었다.
더불어 기록을 하면서 종종 앱의 스타일 통계를 확인하곤 했는데 최근 30일간 즐겨 입은 옷, 계절별 옷장활용도, 오랫동안 입지 안은 옷들을 보여주어 내가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옷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상의나 하의, 드레스와 아우터가 옷장에서 차지하는 비율, 컬러나 브랜드의 비율까지도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옷의 가격도 입력해 두었다면 옷장의 가치를 금액으로 착용비용을 금액으로 환산해주기까지 했다.
2. 옷차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옷정리: 드디어 다시 옷 줄이기
9월 말 추석연휴 중에 여름옷을 정리하며 데이터와 함께 내 여름 스타일을 점검했다. 반바지와 셔츠나 블라우스, 티셔츠 혹은 하나 걸치는 것으로 끝나는 드레스. 여기에 지하철이나 버스, 사무실의 에어컨바람을 견딜 수 있는 카디건을 더하는 가벼운 옷차림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셔츠나 블라우스도 몸에 달라붙지 않는 재질을 선호하고 허리를 강조하거나 허리선 아래 하체를 길어 보이게 하는 실루엣을 선호했다. 검은색과 흰색을 필두로 네이비와 베이지 옐로 핑크로 컬러는 다채로운 편이었고 ZARA에서 구매한 옷들이 짐작했던 것보다도 많아 "ZARA건물 기둥 하나 세우셨네요." 분석멘트가 달릴 정도였다. 상의가 옷장의 40퍼센트 가까이 차지하고 드레스가 25%, 하의가 20% 정도를 차지했고 최대한 입어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입지 못하고 다시 옷걸이에서 뺀 옷들도 10%-15%는 되는 듯했다. 독특한 소재나 디테일, 휴가지나 파티에 입기 적합한 튀는 옷들, 너무 작거나 꽉 껴서 혹은 소재가 불편한 옷들이라 입으려 들었다가도 다시 내려놓곤 했던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매일의 옷차림 사진이 누적되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려 하면 막연하던 나의 모습이 이제는 좀 더 구체적인 장면들로 그려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사진 속의 모습들 속에서 어떤 옷들이 잘 어울리고 잘 어울리지 않는지, 어떤 소재와 색깔이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지,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손이 가지 않아 사진으로 찍지도 못한 옷들은 무엇이고 왜 그것들을 입지 못했는지도 좀 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드디어 망설이며 멈췄던 옷 줄이기는 다시 시작했다. 행거에 걸려있던 옷들 중에서도 한여름 옷을 중심으로 내년까지 입지 않을 옷들을 모두 꺼내고 그중에도 입지 않았던 그리고 앞으로도 입지 않을 옷들을 골라냈다. 탱크톱, 캐미솔, 빛바래거나 앓고 닳은 티셔츠들, 여름옷이지만 너무 꽉 끼고 답답한 소재이거나 땀이 차는 두꺼운 소재의 티셔츠들, 암홀이나 숄더라인 혹은 실루엣이 잘 어울리지 않는 블라우스, 원피스, 치마와 바지들. 마지막으로 같은 옷 두 벌을 선물 받아 하나는 뜯지도 않고 고스란히 갖고 있던 얇은 여름용 아우터 아노락까지. 스물다섯 벌. 그중 낡은 것은 처분하고 입을 수 있는 옷들은 곱게 접어 차곡차곡 기증할 박스에 넣었다.
3. 옷-빨래, 수납, 보관-관리까지 고려한 옷정리: 역시나 줄이는 게 답
홀가분한 마음으로 빨래를 시작했는데 우습게도 연휴초반 삼일 내내 빨래를 해대고 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그것도 매일 눈부신 파란 하늘이 펼쳐진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지 만약 날이 흐리거나 비가 왔다면 며칠을 더 잡아먹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큰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 씨름을 하고 나니 스물다섯 벌을 줄였다고 해도 빨래를 이렇게 해야 한다니 아직 멀었다 싶었다. 일차로 흰 옷들을 빨고 이차로 색깔이 있는 옷들, 삼차로 어두운 색과 검은색 옷들로 분류해서 빠는데도 매일 옥상의 빨랫줄이 꽉 찰 정도라 여전히 옷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얼룩을 확인하고 지우거나 표백, 살균을 위해 간단한 애벌빨래를 하고 세탁기로 마무리해서 널고 말리고 나서 다시 걷고 정리까지 하면 하루가 다 갈 지경이었다.
이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양의 빨래를 했던 건지 의아해질 지경이어서 다시 미니멀옷장 프로젝트 이전을 더듬어보기까지 했다. 이전에는 옷장에 계속해서 옷이 쌓여가도 옷 전체를 파악해보지도 않았고 손이 가는 옷만 입다가 빨고 손대지 않은 옷들은 고스란히 다시 수납장으로 넣곤 했기에 이렇게 대대적으로 빨래를 한 적도 없었고 그래서 계절이 지나며 전체 옷의 양을 가늠해보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거기까지 깨닫고 나자 그래도 이제 옷장의 규모를 파악하고 실제 활용을 최대한해보고 또 활용도를 가늠하며 정리하는 단계까지 발전해 왔다는 것에 안도가 되었다. 물론 관리를 위해서라도 활용도가 높은 옷들 위주로 정리를 계속해야겠다는 결론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제 방향을 잡았으니 가을옷도 겨울옷도 여름옷과 마찬가지로 스타일을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점검해 나가면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을 거쳐 여름을 맞을 때에는 더욱 확실해진 내 스타일에 맞게 여름을 나면서 필요 없는 여름옷들을 줄여나가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나에게 더욱 잘 맞고 또 관리와 유지도 더욱 편리해진 캡슐옷장까지도 가능하겠구나. 앞으로의 의생활이 이제는 힘들여 계획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려지는 게 뿌듯하기도 했다. 지나는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나의 일상과 더불어 변화해 나가는 옷장이라 슬로 패션이라고 칭하는구나, 미니멀리스트를 자칭하는 이들이 슬로패션이라고 굳이 굳이 명명까지 해가며 옷장정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4. 가을맞이 옷장과 액세서리 정리정돈: 미니멀옷장의 위력을 실감하다
이제 옷장을 새로운 계절에 맞게 정비할 차례. 여름옷들을 모두 침대 위에 모아 차곡차곡 개어두고는 침대 아래 보관용 수납장을 열었다. 성인 한 명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크고 깊은 수납장 두 곳에 네 개의 박스(하나는 봄가을상하의, 하나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입는 옷들, 하나는 겨울 재킷과 코트, 하나는 겨울 점퍼와 패딩이 들어있다.) 중에서 두 개를 꺼냈다. 우선은 봄가을 상하의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입는 두꺼운 옷들을 꺼내고 여름옷을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박스 하나로 여름옷 정리가 끝났다. 분명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박스 두 개 분량의 옷을 꺼냈던 것 같은데. 깔끔하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해서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여름 옷가지는 보관용 수납장 안쪽에 넣어두고 옷장에 가을옷을 걸기 시작했는데 역시 이것도 순식간에 끝났다. 안쪽 행거 위쪽에는 원피스류를 거는 것도 아래쪽에는 받쳐 입을 반팔티, 긴팔티, 블라우스, 셔츠, 스웨트티를 거는 것도 넉넉했다. 측면 행거 위쪽에 재킷과 점퍼, 니트아우터를 거는 것도 아래쪽에는 반바지, 치마, 긴바지를 그리고 멀티바지걸이에 데님을 실루엣과 컬러별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도 순조로웠다.
신이 나서 내친김에 서랍장의 가장 아랫칸에 스웨터류도 정리하고 안쪽 상의행거에 두터운 겨울 스웨트티와 후디까지 걸었다. 이제 한겨울이 오면 왼쪽 행거 위쪽에 걸린 가을아우터들을 정리해서 겨울재킷과 코트와 교체해 보관용 수납함 안쪽에 넣고 수납함의 앞쪽 두 칸에 각각 두꺼운 스웨터와 두꺼운 패팅, 무스탕, 점퍼류를 두어 서랍장처럼 사용하면 충분히 넉넉하고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옷을 걸고 고르고 빼거나 다시 거는 데에도 충분한 공간을 보면서 혼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빽빽하게 걸린 옷 때문에 결국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던 그 행거가 이렇게 편안하게 옷을 골라 입을 수 있게 되었다니.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미니멀옷장 프로젝트와 더불어 공간에서도 생활에서도 필요 없는 것들을 줄여온 덕분에 거실수납함에 가방과 액세서리를 위한 자리도 마련했다. 모자와 장갑, 스카프와 머플러는 윗단에 자주 드는 출근용 가방은 아랫단에 정리하고 나니 옷을 입고 화장을 한 다음 거실에서 전신거울로 매무새를 보고 액세서리와 가방을 챙겨 나갈 수 있도록 동선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리된 가을옷장으로 10월을 보낸 지도 이제 삼주차가 되어간다. 이제는 옷장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옷을 꺼내고 넣는 것이 힘들지도 않다. 옷장 안에 있는 옷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잘 활용할지 이번번 가을옷장도 입지 못하는 옷을 남기지 않고 다 입고 지나는 것, 그러면서도 각 옷을 입을 때마다 나에게 잘 어울리게 그리고 아름답게 입는 것이 이번 시즌 나의 목표가 되었다. 또다시 10월과 11월까지 꾸준히 기록을 하고 그걸 바탕으로 지나는 가을을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할 때까지 즐겁게 이 옷장을 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