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예업무의 구체적인 실제: 1) 수집과 소장관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제시하는 학예사 자격인정 기준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에서 발간한 학예전문인력 업무 표준안을 바탕으로 뮤지엄에서 이루어지는 학예 업무는 조사와 연구를 기본으로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작품의 수집과 소장관리, 보존 2) 전시의 기획 및 운영 3) 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4) 뮤지엄 특성을 고려한 홍보와 관람객 응대 등의 뮤지엄운영과 관리
첫 번째로 작품의 수집과 관리의 실제 업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소장품 관리 및 조사연구
소장품 수집 및 기증관리
등록 및 db구축 유지
소장품활용
수장고환경관리
작품이 존재해야 이를 바탕으로 전시, 교육, 홍보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수집과 소장품관리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존재하기 위한 첫 번째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기존의 박물관 미술관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수집품이 많아지다 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건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혹은 수집과 보존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건립과 더불어 수집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먼저든, 기존의 작품이 있다면 그것들을 관리하고 조사연구하는 것과 함께 새로이 수집-기증이나 기탁, 구입 등-하고 유지관리-소프트웨어적으로는 시스템에 등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면 하드웨어적으로는 실측부터 수장고 격납까지- 나아가 그것들을 전시나 교육, 홍보에 활용해나가게 된다. 요컨대, 작품의 수집과 소장관리 업무는 다른 모든 업무의 출발점이 되는 핵심적인 콘텐츠를 다루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2. 수집과 소장관리 업무를 좌우하는 조건들
당신이 학예사라면, 어떤 것들을 수집하고 소장하고 싶은가. 아름다운 것.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것. 혹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것. 아마도 직관적으로는 위의 세 가지가 먼저 나오는 대답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학예업무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업무수행이기에 개인적인 흥미나 관심 혹은 다른 이들의 흥미나 관심을 고려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가치가 있더라도 수집하고 소장할 것이 뮤지엄의 목적과 지향에 맞지 않는다면? 뮤지엄 내에 연구할 수 있는 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산을 초과한다면? 그것을 수집하고 소장할 수 있는 공간 등의 물리적인 자원이 없다면? 실제 기증이나 기탁, 구입이 불가능하다면? 당연히 수집도 소장관리도 불가능해진다. 결국 이와 같은 조건들이 수집과 소장관리업무에 기준조건이 되는 셈이고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뮤지엄의 미션과 비전
뮤지엄의 주요 연구주제여부
뮤지엄의 예산
뮤지엄의 공간과 자원(물적자원, 인적자원)
실제 수집하는 과정에서 기증, 기탁, 구입 진행 가능 여부
3. 수집과 소장관리 수행, 역사문화의 화자로서 갖는 문화권력
위와 같은 조건들을 고려하면 결국 선택의 폭이 좁아질 텐데, 수집과 소장관리 업무가 뮤지엄의 역할을 좌우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업무들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업무경험이 그리 길지 않은 편임에도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직접 업무를 수행하며 혹은 동료들, 선임학예사들을 비롯한 다양한 이들의 업무를 접하며 누가 하느냐, 어떻게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느냐, 어떻게 의사소통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학예업무를 담당하는 이가 동일한 분야의 동일한 시기의 작품들이라 해도 어떤 장르의 혹은 어떤 소재의 작품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수집의 첫 단계인 조사와 대상의 선정부터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선정된 후보군들에서도 선택하게 되는 작품들의 시기나 소재와 같은 특성의 범위도 다양해질 수 있다. 기존 그리고 새로이 수집한 소장품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혹 누군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동일한 분야의 다양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중에서도 어느 특정기관에 기증하거나 기탁하게 되는 것은, 다른 그 어떤 기관도 아닌 그 기관에서 그 작품을 잘 다루어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 작품을 소중히 다루고 그 가치를 이해하고 연구하고 전시로 그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기대하며 맡기는 것이다. 업무로서 만난다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관심과 존중 혹은 기탁하거나 기증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고려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심지어는 매매에서 기탁, 기증으로 움직이게도 한다.
학예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관심과 판단,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수집하는 작품들이 달라질 수 있고, 이에 기반한 연구, 전시, 교육, 홍보까지도 모두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수집과 소장관리 업무는 뮤지엄의 역할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결국 학예사의 업무는 작품을 다루고 제시하고 해석하는 일종의 역사문화의 서술자이자 화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되기에 일종의 상징적 문화권력을 수행하고 제시하는 셈이기도 하다. 뒤집어 말하면, 그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수집과 소장관리 업무를 수행하며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선호와 취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해도 늘 역사와 문화적인 맥락 내에서의 예술적인 가치와 사회적인 역할을 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