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이 지나서야 우리집도 봄맞이를 시작했다. 날씨가 오락가락하면서 우리집은 4월까지도 실내온도가 18도 아니면 19도에 머물러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을 견디기 힘들어 전기장판에 겨울이불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낮의 기온은 극단적으로 올라 30도에 다다르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집안의 냉기가 가셨다. 드디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할 때임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그리고 화창한 주말이 이어지던 어느 날, 옷장의 겨울옷을 꺼내는 것들을 시작으로 옷장부터 하나씩 공간을 청소해 나갔다. 지난 일 년을 미니멀한 주거를 지향하면서 보낸 덕분에,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막막해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나갈 수 있었다.
우선은 의생활과 관련된 공간 정리. 옷장은 작년에 빈번한 폭우에 곰팡이의 시작을 발견했던 곳이라, 우리 집에서 가장 습기와 먼지를 주의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겨울옷들을 꺼내고 여름옷들을 수납장에서 꺼내어 걸기 전 옷장을 청소했다. 아우터, 하의, 드레스와 긴 아우터, 상의로 각 분류별로, 색깔별로, 봄부터 여름옷까지 순서대로 옷장에 걸었다. 서랍의 구획도 다시 한번 점검해 윗서랍에는 이너웨어들, 두 번째 서랍에는 양말류, 잠옷, 운동복류, 세 번째 서랍에는 옷걸이에 걸 수 없는 니트류와 민소매, 얇은 티셔츠류들을 종류별로 꺼내어 입고 수납하기 편하게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옷장의 빈 가벽에 입은 옷들을 잠시 걸어 습기를 빼둘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다음으로 거실수납장에 있는 머플러와 스카프, 모자들의 위치를 겨울 것들을 구석으로 봄여름 것들을 손이 닿기 편한 곳으로 옮겨주고 가방들도 역시 봄여름에 들기 좋은 것들을 우선으로 배치해 두었다. 신발장의 신발들도 한 번 더 꺼내어 점검하고 먼지와 얼룩을 털고 봄여름 신발들을 손에 닿기 편한 곳으로 정리했다.
두 번째로는 식생활과 관련된 공간 정리. 식기건조대를 더 넓은 것으로 바꾸어 설거지할 것들이 많아도 한 번에 널고 말릴 수 있도록 했다. 옆에 달린 도마거치대가 있어 자연스레 도마 자리도 정해졌다. 그 옆에 키친타월 걸이를 옮겨 달아 주고 이전 식기건조대는 당근으로 나눔 하고 이전 식기건조대에 달려있던 수저통도 부식이 되어가는 걸 확인하고 이참에 조리대 하부 서랍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정리했다. 걸이들을 활용해 고무장갑, 수세미 위치도 사용하기 편하게 위치를 정리.
세 번째로는 침실공간 정리. 겨울이불, 이불커버와 베개커버도 살균세탁한 후에 햇살의 바스락거리는 내음이 묻어나게 바싹 말렸다. 매트커버를 벗겨내 세탁하고 매트도 햇살에 소독하려고 살펴보다가 작년 장마 때 곰팡이자국이 조금 더 늘어난 것 같아서 영 마음에 걸려 정리를 하기로 했다. 몇 주 동안 알아보고 결정하기까지 임시로 요가매트를 깔고 지내다가 봄가을이불을 꺼내고 이불, 베개, 매트리스커버도 바꾸어 씌운 뒤 마무리.
마지막으로 비가 한바탕 퍼붓고난 다음날 드디어 현관문 주변과 현관 옆 보일러실도 정리를 했다. 갑자기 늘어난 벌레들이 현관문을 열 때마다 들어오지 못하도록 현관문틀 주변에 방충제를 둘러주고 현관옆 보일러실도 청소했다. 우리 동네 터줏대감 길고양이 가족들이 몇 번 츄르를 주고난 뒤로 자꾸만 자기들 구역으로 여기고 볼일을 보는 바람에 냄새와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았더랬다. 몇 번의 검색과 사람들의 댓글, 제품 소개들을 찾아보고 난 뒤 고양이들이 기피하는 천연기피제를 주문했다. 보일러 배관을 감아두었던 담요를 버리고 고양이들이 비비기 어려운 매트로 감싸고는 풀향이 강한 기피제를 보일러배관에 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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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봄여름 공간에 쌓이는 습기 대비하기
다음으로는 겨울 동안 쌓인 냉기와 습기를 걷어내고 빈번해진 폭우와 곧 이어질 장마를 대비하기로 했다. 작년 겨울을 맞으며 각 공간별로 넣어둔 제습제들을 모아서 비우고 케이스를 씻어 말려두었다가 염화칼슘을 주문해서 다시 채워 넣었다. 옷장, 철 지난 계절옷을 넣어두는 침대수납장, 액세서리류를 넣어둔 거실수납장, 신발장, 부엌 상온보관 식품이 든 하부장, 욕실의 수납장까지 다시 제습제들을 넣어두었다. 제습기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돌려 옷장의 습기를 빼주고 매일 한번 이상 창문을 열고 환기하기를 시작했다. 더불어 옷장 옆 서랍장 위에 그리고 부엌의 상부장 옆에 온습도계를 두고 늘 온습도를 체크하고 있다.
그렇게 일이 주를 지나다 보니 창문을 열고 이삼십 분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60퍼센트를 넘기던 방 안의 습도가 40퍼센트로 떨어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더더욱 환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요리할 때, 집에 돌아와서, 한 번씩 환기를 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3. 지금 내 생활에 잘 맞게 공간 정돈하기
청소와 습기대비를 끝내고 지금 내 생활에 좀 더 잘 맞도록 바꿀 것들이 있는지 점검해 보았다. 먼저 아침저녁으로 그리고 시간일 날 때마다 틈틈이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거실의 거울맞은편 코너공간을 운동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기부할 물건들을 모아두던 종이상자를 치우고 폼롤러와 요가매트, 스툴을 두었다. 거울옆 수납장 위에 있던 겨울장식을 정리해 그 위에 패드를 두고 거울을 보며 스트레칭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
다음으론 집을 나설 때마다 가방에 챙겨 넣고 돌아와서 가방에서 꺼내는 것들-지갑과 이어폰, 선글라스, 향수나 명함집까지 자꾸 거실수납장 위에 늘어놓곤 해서 아예 보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가방을 두는 스툴 곁 거실수납장 위에 수납바구니를 두었다. 부엌수납장에서 약정리상 자 두 개를 하나로 모으고 하나를 가져와 넣어두니 보기에도 깔끔하고 집에 들어올 때나 나설 때에도 편리하게 이용하는 중.
기부할 물건들을 한꺼번에 부치려고 모으다 보니 쌓이던 택배상자를 부엌수납장 하부의 분리수거함 옆에 정리했다. 무료수거를 신청하려고 서너 상자 이상이 될 때까지 모으다 보니 자꾸만 어수선해지길래 더는 기다리지 않고 하부장의 공간을 한도로 정하고 그 이상이 쌓이면 곧바로 가져다가 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4. 루틴을 만들어나가는 미니멀주거 2년 차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밤사이 내려앉은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나갈 채비를 하고 한 번 더 공간을 정리한 후에 옷장에 제습기를 예약해 틀어둔다. 부엌을 쓸 때도 욕실을 쓸 때도 환기와 정리로 마무리. 저녁에는 잘 준비를 하며 공간을 점검하고 벽부등만 남기고 불을 끄고 어둠을 맞는다.
바닥청소, 화장실청소는 두어 주에 한 번씩. 장마가 오기 전에 방충망과 창틀, 문틀의 틈새를 점검하고 보수하려고 한다. 그리고 또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필요한 청소와 정리정돈 그리고 그때그때 내 생활에 적합하도록 계속해서 물건이나 가구의 배치, 공간의 활용을 실험하고 변경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계속해서 필요 없는 것들을 줄여나갈 것이다.
미니멀한 삶을 의식적으로 지향하기로 마음먹고 일 년을 지나오면서 계절의 변화도 날씨도 일상 속에서 더욱 잘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걸 느끼곤 한다.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 것도 내 시간에서 꽤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게 되었다. 내 삶에서 지나는 계절들을 더욱 분명히 감각하고 또 공간을 정리 정돈하고 변경해 나가며 계절과 상호작용하고 계절을 더욱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미니멀한 생활이 만들어준 여유가 돌아오는 계절을 반갑게 맞고 또 기대하게 해 주었다는 걸 깨닫는다. 미니멀한 삶을 택하길 잘했구나. 내게 주어진 지금 이 계절을 더욱 음미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