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셨다.
혹독한 폭염을 지나고 열대야가 끝나던 무렵 아빠는 눈에 띄게 기력이 없었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마음 한편이 내려앉아 신경이 쓰였다. 큰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번갈아가며 아침마다 아빠를 일으켜 식사를 마치는 걸 보고 만사를 귀찮아하며 자꾸만 드러누으려 하는 아빠가 너무나 석연치 않았던 며칠, 응급실, 산소호흡기, 새벽의 보호자 대기실, 전원결정, 이송, 간호사들과 호흡기내과 전문의, 병실의 환자들, 언니들, 간병인, 연명치료거부를 강경하게 외치던 아빠······.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 받은 한밤중의 전화, 병원으로 가자는 말에 병원에서 일을 하시느냐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아빠가 위독하시다고 대답하고 나서 찾아온 긴 침묵, 산소포화도와 혈압을 보여주던 화면, 어둠 속의 복도와 불 밝힌 일인실 속의 아빠, 땀에 흠뻑 젖은 환자복, 새벽을 채 넘기지 못하고 모인 자매들, 또렷한 의식에도 감당할 수 없었던 아픔으로 인해 새어 나오던 신음, 돌아가며 아빠에게 속삭이던 이야기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던 의료진, 불안정하게 떨어지던 산소포화도, 갑작스레 곤두박질치던 맥박,
그리고 아빠의 호흡이 멈췄다.
다시 찾아온 간호사와 주치의. 사망선고. 눈물과 얼어붙은 침묵. 울리던 전화와 오가던 사람들. 다시금 장례절차 준비를 서둘러 시작해야 함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를 보내고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4년 9월 10일. 장례식장과 화장터, 가족들의 준비와 조문객 맞이, 결정해야 할 많은 사안들을 나누어 맡고 영정사진으로 쓸 아빠의 사진을 찾으러 가던 길.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병원에서의 시간이 다시 계절을 되돌린 듯했다. 한낮의 태양은 여름 한복판으로 돌아간 듯 내 머리 위로 햇살을 뜨겁게 내리꽂고 있었다.
폭염이 폭우로 다시 폭염으로 또다시 폭우 같은 소나기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 떠났던 본가의 풍경 속에서, 장례식장에서, 다시 집 다시 장례식장을 반복하며 여름은 고장 난 카세트테이프가 같은 구간을 반복하듯 계속되고 있었다. 화장터, 장지, 다시 장례식장에서 지친 얼굴로 헤어지던 가족들. 추석에 모여 긴 회의를 하고서야 마무리된 장례식과 관련된 일처리. 그리고 지금 이렇게 적어 내려 가며 내 머릿속 지난 며칠간의 필름을 되돌리고 있는 와중에도 폭우가 쏟아진다.
이 격렬한 폭염과 폭우가 마치 비상벨을 울리며 내게 고하는 듯하다. 여름이 끝나지 못하게 가로막으면서까지. 지금까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던 두 사람 중에 한 명, 남아있던 그가 떠났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