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이 하는 뻔한 말은 들어도 싫지 않고 화도 안 난다. 쓴웃음이 배시시 나며 그들의 속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큰 재미 중 하나다.
싱가포르에 사는 딸 가족 다섯 명은 여름과 겨울 방학을 맞으면 그 흔한 해외 가족여행도 마다하고 한국으로 향한다. 아프리카의 물소 떼나 시베리아의 철새들이 생존을 위해 계절 이동(migration)을 하는 것 같이 단단히 준비하여 친정을 향해 돌진한다.
한국에는 물론 시댁도 있지만 딸이 편하게 머무는 곳으로 베이스캠프를 치는데 거의 한 해도 빠짐없이 우리 집으로 선택된다. 친구들은 “아름다운 당첨을 축하한다”라고 비아냥댄다.
2년 전의 일이다. 큰 외손자의 미국 사립 고등학교 입학 설명회에 딸과 사위가 미국 동부 지역으로 보름간 다녀올 때까지 둘째와 셋째 손주를 맡아 달라는 특별한 당부가 있었다. 딸과 아내가 충분히 상의하여 결정하였겠지만 ‘손주와 함께 보름 살기’의 계획을 접하고는 머리에 지진이 났다.
초등학교 5학년 둘째 손자는 아파트 놀이터를 30바퀴 돌고, 팔 굽혀 펴기 15회씩 3회를 한 후 아침을 먹고 논술 예습과 복습을 한다. 논술 학원을 다녀온 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영어와 수학 과제물을 푼다. 이렇게 차질 없이 다 했을 때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40분 간 할 수 있도록 배정을 해 놓았다. 또 2,3일에 한 번은 축구와 수영을 다녀온다. 하루 꼬박 150~180분은 열심히 하여야 완수하는 힘든 하루이다.
그리고 5살 셋째 손녀의 하루는 유치원과 그림 학원을 다녀오는 일이다.
나는 두 상전(上典)의 일과를 확인, 점검하고 동행하며 할머니는 음식과 준비물을 맡아서 톱니바퀴같이 돌아가는 숨찬 일정을 보름간 반복해야 한다. 이 틈에 우리 내외의 개인 일정은 끼어 들 틈을 찾을 수가 없다.
애들에게 너무 가혹한 하루라고 했더니, 아빠가 잘 몰라서 그렇지 다른 애들은 더 하다고 딸은 잘라 말한다.
할아버지 숙제 다 했어요, 이제 좀 쉴게요
기특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한 공부와 운동을 숙명처럼 해 나간다. 사위는 둘째가 게임에 너무 빠져 있어서 힘든 일과를 수행하면 게임을 즐기도록 장치를 해 놨는데 아들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여행 중간에 수시로 확인한다. 자식을 위해서는 더 할 수 없는 부모의 모습을 보이기에 우리도 감동을 받아 보름 정도는 희생을 각오하였다.
“너, 할아버지가 보니까 운동장도 대충 돌고 팔 굽혀 펴기도 정확히 45개를 안 했는데?”
“잘 못했으니까 다시 해!”
“할아버지~ 제대로 했다고요” 어떻게 체크했는지 말해 보라며 도리어 당당하게 보이려고 애쓴다.
심지어 “내가 좀 모자라게 한 것이 할아버지 인생에 무슨 영향이 있어요?”라고 당차게 되묻는다.
“저도 할 게 너무 많으니 좀 봐주세요”하면서 땀범벅이 된 몸으로 사정없이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빨리 의무를 다하고 게임으로 가고 싶은 다급함이 묻어 있지만 하루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대견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할아버지의 사랑이며 보람 인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할아버지의 기치가 필요한 경우가 날로 늘어난다.
나는 손주에게 과제물을 채점하여 95%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좋아하는 게임을 20분 더 할 수 있도록 새 규칙을 만들었다. 그것은 공부 시간은 긴데, 게임 시간은 너무 짧다고 성토가 심하여 공부도 집중하고 좋아하는 게임도 제대로 즐기라고 만든 것인데 인기 만점의 호응과 결과를 얻었다.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똑똑 하세요? 하며 칭찬에 애교 공세를 더한다.
공부를 위한 게임인지, 게임을 위한 공부인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게임 삼매경에 빠진 손주를 본다.
저 집중력을 다른 데로 돌릴 수만 있다면 큰 결실을 맺을 아이로 클 것 같다고 느끼며 애석 해 하기도 하였다.
엄마! 나, 엄마 보고 싶다고 하나도 안 울었어
손녀는 한결같이 엄마의 귀국 날짜만 꼽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극도로 자제한다. 외갓집이 어려워 서일까? 우리가 잘못해서일까? 아무리 편하고 좋아도 엄마 품과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유치원이나 미술 공부를 갔다 오면 수업 중 있었던 자랑거리를 신나게 말하고 나서 “할아버지, 엄마 올 날 이제 7일 남았죠?” 돌아오는 날짜를 하루도 거른 날이 없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거나 놀 때도 엄마와 대화를 하며 논다. 아내와 딸이 전화하는 소리가 들리면 득달같이 쫓아가 할머니에게 얼굴을 붙이고 “엄마! 나, 엄마 보고 싶다고 하나도 안 울었어” 하면서 과장된 그리움을 보인다.
저런 하얀 거짓말이 왜 나오나?
차라리 대성통곡을 할 것이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엄마 장난감 사서 빨리 갈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있어~”
“엄마, 그런데, 그런데..” 하는 동안, 더 통화하면 눈물보가 터질 것 같아 중요한 확인만 하고 모녀는 서둘러 전화를 끝낸다.
그리움은 땅거미가 지고 어둠을 파고들기에, 저녁이 되면 오빠와 나와 할머니가 양 옆에 눕고, 나는 구전동화로 유도하여 꿈나라로 안내한다. 이렇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가 매일 반복된다. 드라마 따위에서 나오는 장면 일지라도, 자식을 두고 떠나는 여자의 심정은 어떨까? 또 아이들은 어떨까를 생각하면 나의 연민의 늪이 넘실거려 눈시울이 붉어진다.
할머니의 식사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집 밥이다.
김치찌개, 볶음밥, 카레라이스, 비빔밥, 불고기, 멸치볶음, 우거지 된장국이다. 여기에 멸치 주먹밥에 된장국도 즐겨 찾는다. 심심한 열무김치도 손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에 하나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기도가 끝나면 오늘의 좋아하는 메뉴로 식탁은 벌써 흥분된다. 삼겹살에 상추쌈, 과자 같은 멸치볶음과 된장국이다. 밥은 영양을 생각하여 콩과 찰 옥수수를 섞은 혼합식이다.
첫 술에 아이들은 “와 아~맛있어요”하면 엄지를 치켜든다.
말이 빠른 손녀는 “할머니, 이 멸치볶음 우리 엄마에게 어떻게 만드는지 꼭 가르쳐 주세요.” “제발 요”
하루도 엄마와 연관되지 않은 날이 없다. 오늘도 어떻게 상심을 달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가 우리들의 큰 숙제다. 천사의 마음을 지닌 어린 손녀에게 상처 없이 그리움을 녹이는 힘을 달라고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긴 하루하루가 쌓여 마지막 날이 돌아왔다.
작전대로 손녀가 알고 있는 날 보다 하루 일찍 엄마 아빠와 큰 오빠가 돌아와 자기 앞에 우뚝 섰다.
파안대소를 하며 엄마에게 안겨 참았던 눈물보를 터뜨린다. 아빠도 큰 오빠도 번갈아 가며 안고 돌리며 막내를 달랜다. 한참 동안을 울고 나서 막내딸이 엄마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엄마 왜 이리 일찍 왔어! 내일이잖아? 거짓말쟁이!”
“우리는 오늘부터 다리 뻗고 자도 되겠다. 모두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