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잃어버리라고 만든 물건인가?
가까이할수록 멀어진다. 이 보다 소중한 물건이 또 있을까? 모든 정보가 여기에 다 모여 있다. 여행 중 반드시 지참해야 할 세 가지 중 하나로 휴대폰은 단골로 선정된다. 소중 하니까 머리에서는 잘 간수하라고 심리적 작동을 명한다. 이렇게 잠재적인 강박 중에 습관적인 건망증이 있거나 성격이 급한 사람이나 멀티 태스킹(multitasking)하는 현대인 들은 쉽게 잃어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한다.
내가 경험한 두 양심(良心)을 통해 최소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손님을 태우고 먼저 약속 장소로 갑니다
작년 가을, 가까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몇 친구들과 번개 모임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되면 나오라는 것이다. 간단한 준비를 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음식 점에 도착하니 내게 전화한 친구와 또 다른 친구가 합세하여 내가 온 것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열심히 전화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와 나는 옆에 다소곳이 앉아 살펴보니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는 작전을 택시 기사에게 하고 있었다. 이 두 친구는 여기에 오기 전에 친구 사무실에서 두 사람 간의 용무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오면서 한 친구가 휴대폰을 택시에 놓고 내린 것이다. 다른 친구가 택시에 놓고 내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택시기사가 받고 있었다.
“기사님, 약 한 시간 전에 교대 앞 4번 출구에 내린 사람들인데요, 친구가 휴대폰을 놓고 내렸네요.”
“지금 어디쯤 계신 가요?”
“예, 아이고 많이 걱정되시겠네요, 저는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주변을 지납니다.”
“저희는 교대 역 주변에 있습니다. 바로 오실 수 있으면 왕복요금을 드릴 테니까 좀 도와주세요.”
“마침 강남 쪽으로 가는 손님을 모시고 넘어가는데 손님께서 양해를 해 주시면 그곳으로 먼저 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지요. 4번 출구 아까 내렸던 곳에서 휴대폰으로 불빛을 비추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탑승 손님의 양보아래 40분 뒤에 길가에서 ‘엔테베 구출작전’을 방불케 하는 손님과 기사와 분실자의 협조아래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이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친구가 왕복요금 상당액인 5만 원을 챙겨서 드리자 기사는 빈 차도 아니고 손님도 같은 방향인데 3만 원 정도면 되겠다고 하며 2만 원은 다시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억지로 5만 원을 드리며 내쫓듯이 헤어졌다고 하였다. 기사는 가면서 지금 타신 손님의 요금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헤어졌다고 돌아온 친구들이 전하였다.
이만하면 살만한 세상 아닌가? 양심적이고, 근본이 착하니 이런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말이 생활화되어 자연스레 나온다고 느꼈다.
이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요
고등학생인 외손주는 내가 알기에도 몇 번의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뒤가 약한 손주는 학교의 분실물 보관센터의 단골 이용객이 되었다고 한다.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을 때도 파손이 되어서 사위가 최신형으로 바꿔 주면서 잘 사용하라고 당부를 하였다.
그런데 두 달도 채 안되어 또 잃어버렸다. 손주와 사위는 학원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휴대폰 없어진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같이 휴대폰을 찾아 나섰다. 택시에 내린 후 이동선을 모두 확인하여도 없었다. 분실한 지 두 시간이 지난 뒤 사위는 예약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선지와 시간을 말하고 두 사람이 뒷자리에 앉았는데 혹시 휴대폰을 보셨는지 물었다.
“예, 손님들은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운행 중이고 뒤를 쳐다보니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20분 뒤에 다시 전화드릴 테니 확인 좀 꼭 부탁드립니다.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사위는 오늘 중으로 학교 선생님과 중요한 통화를 할 일이 있어서 20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를 다시 걸었다.
“기사님, 아까 전화드린 사람인데 휴대폰을 확인하셨습니까?”
“계속 손님이 있어서 제대로 확인을 못했는데 잠깐 세워놓고 확인을 해 봐야겠네요.” 사위가 불길한 생각이 스친 것은 택시 기사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신형 휴대폰은 고가에 장물(臟物)로 넘기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전화를 하였다.
“기사님 휴대폰 찾았습니까? 오늘 그 전화기로 중요한 통화를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찾아서 돌려주시면 20만 원의 사례를 하겠습니다.”
“예, 지금 차를 세워놓고 확인하니까 좌석 귀퉁이에 끼여 있네요.” 그제야 확인을 하였다고 한다.
“바로 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혹시 어디쯤 계신 가요?”
연신내에서 두 시간은 걸려야 올 수 있다고 하며, 별로 심각한 기색도 보이지 않아 더 조르면 늦어질까 두려워 가까이 와서 연락을 하라고 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휴대폰을 돌려받고 20만 원을 봉투에 넣어 드리니, ”꼭 이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하는 말만 남기고 받아서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사위는 찾은 게 다행이라며 크게 안도하는 기분이었고, 손주는 풀이 죽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나는 사위에게 10만 원 만 준비해서 주어도 감지덕지한데 왜 그렇게 많이 주었냐고 따져 물었다. 그것은 감사에 대한 사례금이 아니고 무언의 시위에 갈취당한 것 같다고 개탄하였다. 이번에는 장모님이 손주에게 준 용돈으로 처리하겠다고 주의를 주었고, 제 돈이 들어가면 좀 더 조심하지 않겠냐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며 종결지었다. 나는 손주들에게 AI가 일러주는 ‘물건 잘 잃어버리는 습관 줄이기’ 꿀 팁을 가족공동 카톡에 올리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사례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지나치면 고마움도 사라지고 불쾌함만 남기 마련이다.
땀 흘려 번 돈만 자산이 되고 가치로운 것이지, 상대방의 실수나 착오에 의한 수입에 재미를 들인다면 사회는 어두워지고 점점 불안해지는 것 아닌가?
그러나 내가 방심하여 잘못을 만들어 놓고 상대방만 저주하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니다.
두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하며 살 것인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다.
사람이 곧 말이니, 말에 인격을 더 입히자. 가슴으로 말하는 자와 입술로만 말하는 자는 그 인격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