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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멘션 Apr 01. 2020

보라카이 여행이 우리에게 준 선물

내게 가장 소중한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

내게 가장 소중한 엄마와  

“민지야! 엄마 12월 28일부터 일주일 동안 휴가야!”



2019년 11월이 거의 끝나가던 날,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엄마의 들뜬 목소리를 듣자마자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당장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더군다나 나이 오십이 훌쩍 넘도록 해외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는 우리 엄마가 보라카이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짧은 여행이지만 잠시 인생에 쉼표를 찍어보기로 했다.     


사실 작년에 우리 집 막내였던 강아지 ‘단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아들, 딸이 모두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단지를 특별히 많이 애틋해하셨던 엄마. 유독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고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여행을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빠랑 내가 둘 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빼기엔 무리였고 이직이 조금 더 자유로운 내가 퇴사를 하고 시간을 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니던 병원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마 내가 작년에 한 선택 중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퇴사를 결정하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는 여권이랑 짐만 가져와!”     


여행 경비는 아들, 딸이 내겠다는 말에 조금은 보태겠다고 하시던 엄마. 그러면 오빠랑 내가 어디 가서 자랑할 수가 없다고 하니 그제야 내 말을 들어주셨고 그렇게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보라카이로의 여행이 확정되었다.      


아쉽게도 오빠와 아빠는 시간을 도저히 뺄 수가 없어서 함께 가지 못했다. 아빠에게는 따로 용돈을 조금 드리면서 다음엔 꼭 같이 가자는 약속을 남겼다. 여행지를 보라카이로 정한 이유는 예전에 보라카이로 휴가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찍어 보내드린 풍경 사진이 너무 예쁘다며 보라카이를 꼭 가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이었고 게다가 2019년의 마지막 날과 2020년의 첫날을 끼워서 가는 것이다 보니 항공권은 두 배 가격, 리조트는 세배 가격으로 뛰어 있었다. 손은 좀 떨렸지만 가슴이 뛰었기에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보라카이 섬은 정말 작기 때문에 솔직히 하루면 충분히 구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바다와, 그 노을, 착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처음 호핑투어를 예약할 때, 엄마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시면서 많이 망설이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바닷속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무작정 예약을 진행했다. 그렇게 호핑투어를 시작하게 된 엄마. 수영을 못하시는 터라 처음 물에 들어갔을 때에는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많이 놀라셨다. 양쪽에서 가이드 분과 내가 잡고 있는데도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아 결국 10분 만에 다시 배로 올라왔다. 조금 쉬고 진정이 되니까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정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헤엄치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바닷속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며 너무나도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보는 나도 너무 즐겁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오히려 내가 먼저 지쳐서 배 위로 올라가자고 할 만큼 너무 즐거워하셨던 우리 엄마. 평소에 체력도, 몸도 많이 약하신 편인데 다음에는 호핑 투어만 두 번 잡아달라고 하실 만큼 행복해하셨다.      









선셋 세일링도 하게 됐는데 처음엔 다소 비싼 가격에 많이 망설였었다. 하지만 이왕 볼 거 돈 걱정하지 말고 더 예쁘게 보자는 생각에 엄마를 설득했고 역시나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선셋 세일링을 해본 적이 있어 날개 끝 쪽이 사진이 제일 잘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자리를 잡고 엄마를 앉혀드렸다. 사실 여행을 준비하고 출발할 때까지도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다. 평소에 전혀 티를 안 내시는 분이라 나도 덤덤하게 떠났는데 막상 가니까 그동안 덤덤했던 게 미안할 만큼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원래 겁이 참 많은 엄마였는데 여행 후에 이제는 뭘 해도 다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별거 아니네.”라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과 생각들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고작 4박 5일 짧은 여행을 위해서 퇴사했다고 하면 주변 사람 모두 미쳤다고, 배가 불렀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한 여행 중에 가장 의미 있고 따뜻한, 가슴 벅찬 여행이었던 것 같다.      









진짜 ‘쉼’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은 언제 떠나든지 옳은 것이다. 나도 엄마도 그동안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에 메여서 떠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린 떠나지 않고 있었던 거였다.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엄마를 보고 있으면 직장이 엄마보다 소중한가? 돈이 엄마보다 소중한가?라는 생각이 들곤 하였고 그러한 이유들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들을 포기하고 놓아주는데 충분했다.  

    

물론 떠날 수 없는 이유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을 때,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하나만 손에 쥐세요.”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우리 엄마에게 편지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엄마, 엄마가 우리에게 늘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닌, 가슴이 떨릴 때 가는 거야.”라고 말했잖아. 아들, 딸은 유럽으로, 동남아로 여행하며 더 큰 세상을 배우고 경험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떨리는 가슴을 숨기고 집으로 사무실로 그 오랜 시간들을 보냈던 거야?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나는 스물셋에 처음 가보네” 철없이 투정 부리듯 한 내 말에 “그러게”라며 보내주지 못해 미안한 듯 머쓱하게 웃던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여행 내내 마음이 따끔했어. 물이 무섭다던 엄마가 두 시간 넘게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바닷속을 보며 아이처럼 신나하던 걸 보고 물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경험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던 거구나 생각이 들더라. 내가 너무 늦게 알아채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어. 바다에 부딪혀 부서지는 빛을 받으며 행복하게 웃는 엄마가 정말 눈물 날 만큼 너무너무 예쁘더라. 맞아, 엄마도 이렇게나 예쁜 사람이었지. 이번 여행으로 한겨울에 뜨거운 여름을, 2019년의 마지막 태양을 엄마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엄마, 우리 이제는 떨리는 가슴으로 같이 여행 다니자. 내가 서른이 되기 전에 엄마를 유럽으로 보내줄게. 이건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하는 약속이야. 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딸이 될게. 사랑해 엄마.






2019.12.30 ~ 2020.01.03

'안민지'님의 쉼 이야기

Insta : minzi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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