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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멘션 Feb 17. 2020

우리 아이와 함께한 제주 한 달 살기

너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잠시만, 쉬어갈게요."



 11년 동안 나의 청춘을 받친 회사를 때려치우고, 32살에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간 나. 처음 퇴사를 결정할 때에 시원섭섭할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낯설어하기도 잠시,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천천히 해 나가기 위해 두 아이와 함께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의 두 아이중 첫째는 2년 6개월 된 비숑프리제 ‘이리’이고, 둘째는 2년 5개월 된 골든두들 ‘두리’이다.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계획한 건 아니었다. 퇴사 후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추억을 쌓자 싶어 처음엔 전국 캠핑여행을 계획했었다. 나름 30개국이 넘는 다양한 곳으로 여행도 다녀봤고 장기여행으로 태국, 미서부, 유럽 여행도 해본 내가 갑자기 제주도로 목적지를 정하게 된 이유는 온전히 우리 아이들과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기로 아이들을 데리고 짧게 제주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주었던 기억이 이번 장기여행을 결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사실 나는 어딜 여행하던 바쁘게 다니는 스타일이다. 장기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가면 하루하루 일과를 빡빡하게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유로운 여행에 대한 갈증이 생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2019년 3월 27일, 아이들과 함께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꿈의 제주로 떠났다.









여유로움 가득했던 첫 장기여행



 강아지들과 함께 하는 장기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먼저 제주도 한 달 살기 집 구하기 카페에서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곳들을 찾아보며 하나하나 다 전화를 돌렸다. 실물과 다르면 어떡하지?, 숙박 사기를 당하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불안한 마음이 들어 호스트에게 재차 확인을 받은 후 마음에 드는 숙소를 결정하였다. 


숙소는 협재 해수욕장이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민트색 집. 마당이 넓고 게다가 오션뷰 집이었기에 여기서 지낼 한 달이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처음 숙소를 선정할 때 나만의 기준이 있었는데, 우선적으로 실외 배변을 하는 아이들이기에 마당이 있으면서 산책하기 좋은 위치인지를 고려하였다. 또 숙소를 구할 때 신경 썼던 부분 중 하나가 자갈이 있는 마당이었다. 3~4월은 진드기가 많이 출몰되는 시기이기에 잔디마당보다는 자갈 깔린 마당을 찾게 되더라. 그렇게 숙소를 결정하고 시작된 제주도 한 달 살기. 





왼쪽부터'두리'와 '이리'





 차량을 탁송하여 제주로 들어왔기 때문에 교통편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음식은 근처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제주 맛집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일정에 맞춰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처음 2~3일은 낯선 지역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되게  불안해했지만 집에서 사용하던 이불과 식기를 사용하며 나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금방 적응하는 것 같았다. 제주도에서 하루 일과를 요약하자면 매일 아침 아이들과 갈만한 새로운 산책길을 찾아가 산책을 한 후 아이들과 가기 좋은 카페를 찾아갔다. 반려견 동반 가능한 식당이 있으면 그곳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이들을 잠시 차에 둔 채 빠르게 식사를 하고 나오곤 했다. 숙소 근처에 협재 해수욕장이 있다 보니 오후에도 산책을 하거나 집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너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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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견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는 힘든 점도 없지는 않았다. 특히 둘째 두리는 대형견이다 보니 제약이 많았다. 유모차 동반으로 가능한 식당, 카페, 관광지들은 가기 힘들었고 소형견만 함께 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가보지 못했던 것 같다. 비양도 섬을 갈 때에는 캐리어에 있어야 가능하다 해서 첫째만 데리고 갔는데 둘째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여행이 좋았던 이유를 꼽으라면 나는 단 번에 산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한담 산책로, 서우봉, 송악산 둘레길, 궷물오름, 가시리 유채꽃 축제, 닭머르해안길, 노리매 공원, 각종 오름 등 산책의 연속이었던 제주도 한 달 살기. 가장 추천하는 장소가 있다면 엉덩물 계곡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4월쯤에 간다면 유채꽃이 정말 예쁘니 꼭 한 번 가보길 추천한다. 



반대로 추천하지 않는 길이 있다면 유건에 오름이다. 10분 산책을 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왔는데 3시간 동안 진드기를 잡았으니 추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이들 몸에서 뿐만 아니라 내 몸에도 진드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진드기를 잡는 데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외에 아이들과 함께한 다른 산책들은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했다. 빡빡한 일정의 여행을 즐기던 나도 제주도 한 달 살기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눈 뜨고 마당에 나가면 에매랄드 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비양도 섬의 뷰가 날 반겨주었다. 마당이 있으니 아이들도 자유롭게 집과 마당을 오가며 자유롭게 뛰어놀았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말 제주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생긴 특별한 변화들



이러한 생각은 한 달 살기가 끝나고도 변하지 않았다. 한 달 살기를 통해 나와 아이들에게 생긴 변화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먼저 산책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나와 아이들 모두 근육이 발달하고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건 새로운 곳에 대해 느끼던 나의 불안감이다. 새로운 곳을 가게 되면 아무래도 불안함이 앞섰는데 이제는 어딜 가서 살더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이 기대감으로 변한 느낌이 들더라. 장기 여행이다 보니  시간적 여유도 많았고 내 주변의 것들을 하나하나 느끼며 걷다 보니 아직도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주변을 느끼며 여유롭게 걸어가기. 이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통해 내가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여유로운 여행의 맛을 제대로 알아버린 나는 지금 캐나다 장기여행을 생각 중에 있다. 대형견과 함께 할 수 있는 곳도 많고 펫 프랜들리 공원과 식당도 많아 아이들이 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더라. 캐나다에서만 볼 수 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아이들과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한다.


팍팍한 삶에 지치거나 반려견과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으신 분들, 게으름을 여유로 포장하여 빈둥거리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 어떤 분들이라도 좋다. 생각만 하다 보면 걱정이 많아져 실천으로 옮기기 힘들다. 일단 교통수단과 숙소를 질러 버리고 나중에 생각하자. 가끔은 완벽한 계획이 행동 자체를 막을 수 있다. 가보면 오길 잘했다 싶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떠나봤으면 좋겠다.




2019.03.27 ~ 2019.04.26

'박슬기'님의 쉼 이야기

Insta : sg_o8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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