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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멘션 Feb 26. 2020

두 아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결심하기까지

육아휴직이 내게 가져다준 변화


"여보, 육아휴직 어때?”


  

"여보, 육아휴직 어때?" 어느 날 갑자기 꺼낸 남편의 말에 순간 "응..?" 하고 남편을 한참 동안 쳐다만 보고 있었죠. 전업주부인 내가 육아휴직을 신청할 일은 없고, 도대체 누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걸까? 당황해하는 저를 보고 남편이 말했어요. 회사에 육아휴직제도가 있으니 신청해서 쓰고 싶다고, 그러면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제주도 일 년 살기를 제안했던 남편이었어요. 미쳤다고 바로 입을 막았지만요.


휴가 한번 쓴다고 말하기도 힘든 남편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그리고선 제주도를, 그것도 한 달이나 가겠다는 게 처음에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편이 육아휴직을 얘기하며 제주도 여행을 제안한 것은 아무 이유 없이 무턱대고 한 이야기는 아니겠다 싶었어요. 









나름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내가 육아맘으로 전업주부가 된 지 어느덧 7년.. 경력 단절녀가 되고픈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임신, 출산으로 집에 눌러앉은 경단녀가 되어버렸죠. 사실 임신과 출산 전에 하고 싶은 게 많았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제 삶을, 제 인생을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는 멋진 여성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다가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바라보니 저란 사람은 그저 그런 평범한 애기 엄마 모습이 되어있더라고요.


오늘 저녁 메뉴는 뭘 먹을지, 아이들 병원은 언제 갈지, 옷장 정리는 언제 끝낼지 생각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한심하고 지쳐가는 느낌이 들었던 거죠. "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외치던 화려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생산성이라고는 없는 따분한 일상들이 저를 짓누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에 나는 없고 모든 것이 아이들 위주가 되어버렸기에 계획된 일정도 매번 뒤틀리기 마련이었어요. 그냥 나는 뭐를 계획하고 생각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자포자기에 우울증도 찾아오더라고요. 어느 날은 활짝 웃다가 또 어느 날은 세상 무기력함에 빠져있었던 거죠. 


그런 저를 바라보면서 남편도 많이 지쳤던 거 아닐까 싶네요. 다시 직장을 구하고 취업을 할까? 아니면 좋아하는 취미를 찾아 빠져 볼까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어요. 결국은 어린아이들 때문에 진짜 나는 뒤로한 채 다시 체념하곤 했죠.









저 스스로도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 한 번 가보자, 카드 값은 다음 달에 걱정하자"는 생각으로 떠났어요. 내 인생 어느덧 약 40년 차에 접어드는데 한 달 정도 아무 일 안 하고 쉰다고 해도 나빠질 것 없다는 건 이제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였죠. 그래서 집이 아닌 먼 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어 떠난 제주도. 꽉 막힌 아파트 숲, 공장 연기 바라보는 동네, 미세먼지 가득한 날씨가 아닌 탁 트인 바다와 숨만 쉬어도 힐링될 것 같은 제주도로 떠나자고 결심한 거였죠. 


남편은 2달간 육아휴직을 했고 그렇게 저희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결정했습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다짐이 서고 나니까 준비하고 출발하기까지 일주일도 안 걸린 것 같아요. 그렇게 말도 안 된다고만 생각했던 저였지만 어느새 제주도에 가있는 저를 만날 수 있었어요. 








환경이 가져다준 변화


  4인 가족, 남편 나 그리고 미취학 영유아 2명에서 보낸 제주도의 삶은 평화롭고 또 평화로웠어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간단하게 밥을 먹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어요. 제주도 지도를 펼쳐놓고 가까운 바다, 해수욕장에 가기도 했고요. 서귀포 올레시장, 제주 동문시장 등 전통시장에 들러서 먹거리를 사 먹기도 했어요. 그러다 낮잠을 한 숨 자고 나서 아이들을 트레일러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 돌기도 했죠. 밤이면 반딧불이 보이기도 하는 제주도, 에메랄드 색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제주바다까지. 지쳐있던 제가 제주에 왔다고 이런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는 걸 보니, 사람이 속한 환경을 무시 못 한다는 말이 정말로 맞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됐던 것 같아요. 







한 달 살기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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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장기여행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꼭 제주도를 가야 할 필요도 없고 긴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한 달 살기라고 마음속에 기간을 정하고 얽매이는 순간, 떠나려던 목적과 맞지 않는 여행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다만 어느 곳이든 여행은 떠나세요.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가 더 많아지기 전에 여유로운 여행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세요. 물론 여행을 막상 떠나려고 해도 이번 달 카드 값이 걱정이고 쉬는 기간 동안 줄어들 지갑 사정이 걱정될 수밖에 없죠.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다녀온 후에 회사에서 내 자리, 내 입지가 어떻게 될까 봐 드는 걱정도 현실적인 고민인 것 같아요. 여행 앞에선 누구에게나 떠나지 못하는 각자의 상황이 존재하니까요.








 저 또한 수많은 생각들이 한 달 살기 계획을 막았었어요. ‘작은아이 어린이집과 큰아이 유치원은 어쩌지?’, ‘보육료 자기 부담감은 어떡하지?’, ‘남편 월급이 반 토막인데 제주도 가서 먹고 쓰는 돈은 어떡하지?’ 이런 고민들이 막상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니, 또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여행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고민들이 싹 사라지게 된 거 보면 너무 얽매여서 살았던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사실 제주도 여행을 생각 중인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여러분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괜찮아요. 달라지는 것은 없었어요. 아, 아니죠. 달라진 건 분명 있어요. 제주도에 머물면서 나를 알아갔던 시간만큼, 물론 대단히 큰 깨달음을 얻진 못했더라도 분명 긍정적인 변화가 나를 깨운다는 것을 알게 될 거랍니다. 사실, 또 시간이 지나면 현실은 다시 실전이 되겠죠. 또다시 일상에 물들어가고 삶이 녹녹지 않고 힘들어질 거예요. 싫지만 그러한 순간은 분명 다시 또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여행을 가야 한다는 거예요.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에는 분명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올 거고, 또 이겨내기 위해서 내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열심히 살아왔던 내 나이에 비하면 고작 한 달 쉬어간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으니깐. 확신이 서지 않아 고민하고 주저했다면 제가 말씀드립니다. 떠나세요,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2019.09.01 ~2019.10.05

'박진희'님의 쉼 이야기

Youtube : 여자사람, 진희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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