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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pr 23. 2021

배가 아파 쓰는 글

에세이 |

- 나 다음 주 화요일에 약속 생겼어.

- 무슨 약속?

- 회사 동기. 왜 그 유튜브 한다던.

- 아아. 무슨 일 있대? 결혼? 퇴사?

- 아니. 이번에 책이 나왔대. 책도 줄 겸 겸사겸사 한번 보자네.

- 책? 회사 다니면서 유튜브 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그런 건 또 언제 했대?

- 그러게 말이야. 딱 1년 전만 해도 유튜브 시작했다고 좋아요랑 구독 눌러달라고 했는데. 그 채널이 잘 커서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었는데 마침 출판업계 관계자가 보고 책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먼저 연락이 왔다더라고. 무튼 책 받고 오면 배가 좀 아플 예정이야. 

- 배가 아프다고? 왜? 자기보다 먼저 책 나와서?

- 그것도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나는 아직 그냥 회사원인데 걔는 회사원이면서 유튜버이기도 하고 이제 작가이기도 한 셈이니까. 부럽네. 회사일 말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나도 마찬가진데 지금은 거리가 무척 벌어진 기분이야. 회사 동기니까 같은 선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달라진 걸까?

 그러고 보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야. 나 예전에 팀 옮겼을 때 같은 팀으로 왔던 다른 동기도 한 명 있는데 그 형은 새 팀에 온 이후로 블로그를 시작했거든? 뭔가를 한다는 게 있어 보여서 나도 해봐야겠다고 몇 개 끄적이고 그랬는데 3년쯤 지나서 그 형은 퇴사했어. 블로그가 엄청 커져서 회사 월급보다도 수입이 더 많다고 하더니 결국엔 전업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면서 나가더라고. 내 블로그엔 1년에 1~2개 정도 글 올린 게 다였는데. 다른 동기 또 한 명은 입사한 후에 1년에 1개씩 자격증을 따더니 얼마 전에는 석사까지 끝냈더라고. 퇴근하고 대학원을 다녔대 글쎄. 

- 자기도 자격증 딴것들 있지 않아?

- 난 되게 쉬운 건데 뭐. 다들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걸까?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방향의 차이였던 걸까? 아니면 열정과 의지의 문제였던 걸까. 여러 이유가 떠올랐고 그 모두가 답인 것 같아 스스로가 초라해졌다. 그간 내가 해온 것도 뭔가 있기는 할 테지만 그들이 이뤄낸 것에 비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무엇보다 배가 많이 아팠다. 마냥 웃는 낯으로 축하하며 박수를 쳐주기엔 내 속이 너무 좁은 모양이었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티브이를 켰다.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한바탕 웃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소파에 삐딱하게 기대앉아 자세를 잡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 회사 다니면서 유튜브도 하고 글도 쓰고, 블로그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대단하네 그 사람들. 에이, 너무 배 아파하지 마. 자기는 배 아프다면서 시간 나면 글 안 쓰고 게임하잖아. 티브이 보거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기대했던 나는 그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뼈를 때린다는 것이 이런 거겠지. 아내의 한마디는 내가 티브이를 끄고 책상 앞에 앉도록 만들었다. 동기에게 책을 받아 오면 배가 아파 쓰는 글이 또 하나 늘어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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