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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May 14. 2021

짜증내서 미안해요

직장생활 에세이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아닌 척, 괜찮은 척, 친절한 척 말을 했지만 그 가면 뒤에 숨은 짜증스러움과 가시 돋친 말을 듣는 이가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아마 그 짜증을 직접 받아내야 했던 이뿐 아니라 옆에서 내 통화 내용을 들은 다른 이들 또한 틀림없이 느꼈을 것이다.


 짜증이 난 이유는 작년에 내가 담당했던 업무의 인수인계 때문이었다. 작년 우리 팀이 없어지게 되면서 내가 담당하던 업무는 옆 팀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연초에 정해진 담당자는 인수인계를 해 주겠다고 했더니 다른 일 때문에 많이 바빠서, 우선 자료를 주면 살펴보겠다고 했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고, 작년에 내가 했던 업무가 재작년엔 그의 팀에서 했던 업무이기 때문에 필요하면 재작년 담당자에게 문의하겠다고도 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는 말과 함께 자료를 주었고, 질문은 없었고, 그렇게 5월이 되었다. 그리고 약 2주 전, 작년에 나와 같은 팀이었다가 팀이 없어지면서 옆 팀으로 가게 된 다른 분에게 연락이 왔다. 작년에 하시던 업무를 자신이 맡게 되었다고, 설명과 인수인계를 해달라고.


 코로나다 재택근무다 때문에 대면 미팅은 어려웠지만 메일과 메신저, 전화통화를 통해 몇 차례나 질문을 받았고 답변해 주었다. 흐릿해진 기억을 되살려야 했고 코드를 다 까 봐야 답변할 수 있는 수준의 질문도 있었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오늘, 그에게 연락이 왔다.

"저희 책임님이 공식적으로 인수인계 자리를 가지라고 하시네요. 그런데 전 사실 그간 많이 여쭤봐서 당장은 더 궁금한 게 없는데... A to Z로 리뷰를 한번 해주시겠어요?"

 궁금한 것이 없다는 이에게 어떤 리뷰를, 어떤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걸까. 공식적인 자리를 가지라고 했다던 책임님은 연초에 인수인계는 됐다고 하시던 분이었다. 나는 "대체 그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설명해 주어야 하느냐."며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40여 분간 이어진 통화를 끊고 나니 속이 타서 냉수를 들이켰다. 그렇게 잠시 동안 씩씩거리고 나니 격했던 감정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대체 왜 짜증을 냈을까,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왜 짜증이, 화가 났을까.


 궁금한 것이 없다면서도 팀 책임님이 공식적인 자리를 가지라고 하니까 장단 좀 맞춰달라며 의미 없는 리뷰를 부탁한 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작 인수인계를 해주겠다고 할 때는 됐다더니 이제 와서 공식적인 자리를 가지라고 했다는 이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작년의 내가 업무 인수인계를 부탁했을 때 자료만 주고 무척 까칠하게 굴던 나의 전임자가 떠올라서였을까. 연초도 아니고 이 시점이라서?

 찾아보면 이유는 많았다. 내심 이것들이 내 짜증의 이유이길 바랐다. 나는 정당하고, 상대가 나빴던 것이라고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이것들은 답이 아니었다. 질문에 대답을 하고 통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 '본인이 한 것을 본인이 모르면 어떻게 해요.'라는 두려움 같은 것들이었다.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서 묻겠다고? 거기서 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짜증의 원인이 내 좁은 속내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자 그 짜증을 받아야 했던 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후임자가 전임자에게 업무에 대해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죄송하지만, 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이유도 없고 전임자의 짜증을 들어야 할 필요도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작년의 내가, 재작년의 담당자에게 업무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오늘의 후임자에게 똑같이 느끼게 하고 만 것이었다. "자료 드렸잖아요. 소스 까 보세요." 하고 끊어버린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인 걸까? 전혀 납득되지 않는 자기 위안이었다.

 

 다 회사 일 하는 건데 뭐 이리 마음 상해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내려놓았던 전화를 들어 후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공식적인 거, 하시죠. 시간 잡아서 알려주세요. 질문하실 것 미리 알려주시면 답변 준비해서 갈게요."


 그는 내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게 과연 감사를 받을 일인 걸까 싶어 괜히 민망했다. 짜증에 대한 사과와 감사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답변들을 열심히 준비해 가야겠다 싶었다. 일단 오늘은 이 정도여도 되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프로 직장인은, 내겐 아직도 먼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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