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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Sep 10. 2021

일 하기 싫던 날

직장생활 에세이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아질 구석이라곤 보이질 않는 기능 정의서와 한참을 씨름하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초점 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회사 앞에 있던 주유소 하나가 완전히 철거되어 공터처럼 변해버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 있던 주유소를 언제 헐어내고 땅은 언제 또 저렇게 다졌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처음 이곳으로 출근하게 되었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높은 건물이 생겼고, 낡은 건물은 새 건물이 되었고 좁고 지저분하던 길도 공원으로 정비되었다. 내가 매일같이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와중에도 세상은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달라진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옛 사옥이 있던 자리가 떠올랐다.


 내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우리 회사는 지금과 다른 곳에 있었다. 

 서울 한복판이었지만 건물이 높아서 옥상에 올라가면 저 멀리로 한강이나 남산타워가 보이는가 하면 회사 주위에 있는 낮은 건물들의 지붕이 모두 내려다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스트레스받을 일이 있을 때면 옥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마음의 위안이 되어 주었고,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별빛 가득한 은하수 같던 서울의 야경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옥상과 달리 로비와 카페가 함께 있던 건물의 1층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출근 시간이면 엘리베이터 줄이 한참을 늘어섰고, 가끔 다른 회사에서 높으신 분들이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단체로 미팅이라도 올 때면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5~6년 전쯤 우리 회사는 지금의 위치로 사옥을 이전하게 되었는데 사옥의 위치가 바뀌게 되면서 매일 가던 옛 사옥 근처는 놀라울 정도로 갈 일이 없게 되었다. 그렇게 2~3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고, 코로나가 시작되기 얼마 전에야 우연히 그곳 주위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세상에. 그곳은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우리 회사가 입주해 있던 빌딩은 새 입주자를 구하지 못했는지 임대라고 크게 적힌 플래카드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고, 사람이 가득하던 1층 로비는 마치 버려진 도시처럼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휑하니 비어있었다. 회사 주위에 가득했던,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던 식당들도 폐업을 했는지 곳곳이 비어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랬으니 지금은 어떨까. 아마 더 휑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도 우리 회사가 입주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차장이나 모델하우스로 쓰이던 회사 옆 공터에는 이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신사옥이 높이높이 지어졌고 주유소가 있던 자리는 평탄히 다져진 땅과 울타리만 남아 그 자리에 새로 지어질 건물을 기다리고 있다. 낡고 오래된 식당들은 모두 SNS에서나 볼법한 감성 가득한 카페와 식당으로 변했고, 실제로 SNS에서 유명해져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회사 주위를 찾는다고도 한다.  지금 사옥 일대의 변화를 보면서 옛 사옥 일대의 변화를 떠올리게 된 것은 왜일까. 

 

 회사를 다니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해서인지 출근해서 사무실 안에만 있으면 시간이나 계절의 흐름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갔던 것처럼 회사를 다닌다는 일상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연말이고, 조직개편이고, 새해고, 다시 연말의 반복이다. 만약 세상의 시계가 갑자기 멈춰서 이 땅의 역사를 아는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우리 회사 앞의 저 평탄한 땅에 뭐가 있었는지 유추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시간이 오래오래 흘러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누가 알까. 내가 열심히 쓰고 있는 이 기획서가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할까. 


 어딘가에서 보았던,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 중에 회의론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시간의 흐름 앞에 나는 이리도 무력한데 나는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아마도 오늘의 나는, 어지간히 일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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