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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ug 16. 2021

내 배 위의 임금님

떠나는 것들, 떠나보낸 것들(3)

 나는 딱히 몸이 좋았던 적이 없다.


 첫 문장을 적고 보니 어감이 조금 이상한데 그렇다고 나빴던 적이 있던 것도 아니다. 신체 건강에 대한 것이 아니라 -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 되었지만 - 몸짱이었던 적이 없다는, 뭐 그런 의미다.


 어려서부터 나는 꽤나 마른 편이었다. 안쓰러워 보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덩치가 크다거나 건장하다는 말은 분명 나와 거리가 먼 표현이었다. 내 몸과 관련해서 들었던 말이라고는 "키가 크네!"가 전부였으니 나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는 키 크고 마른 친구였던 셈이다.


 게다가 나는 살도 잘 찌지 않았다. 적게 먹는 편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입대하기 전까지는 내가 양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몸에 근육이 생기지 않는 것 또한 체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체질상 근육맨은 될 수 없는 사람. 학교 헬스장에 등록해서 운동을 했는데도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 나는 내가 살도 잘 찌지 않고 근육도 잘 붙지 않는 체질임을 확신했다.


 그런 착각을 하던 중에 가게 된 군대. 군대에서 내가 맡게 된 보직은 통신병이었다. 그것도 매일같이 외부로 작업을 나가야 하는 작업병. 이 세상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자기의 군생활이 제일 힘들었다고 말한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내 군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책상 밑에 들어가는 것은 양반이었다. 비가 오는 날엔 리어카에 양수기를 싣고 온 부대의 맨홀을 찾아다니며 물을 퍼내야 했고 지붕에 오르거나 천장을 열기도 해야 했다. 게다가 작업에 필요한 무거운 짐들을 들고 다니다 보면 온몸이 쑤시기 일쑤였다.  그렇게 2년. 어느새 내 몸에는 작업으로 만들어진 근육들이 - 아주 조금이지만 - 생겨 있었다. 내 몸이 근육이 붇지 않는 몸은 아니었구나. 그냥 그동안은 내가 몸을 덜 움직였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서 '몸에 근육이 붇지 않는 체질'이라는 말을 지워버렸다.


 선임이 되고 일과 후 시간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체단실을 찾았고 운동을 잘 아는 전우가 있으면 방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근육맨이 될 생각까진 없었지만 그래도 복근이라는 것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일과 후에 운동에 전념하기를 한참. 마침내 전역할 무렵이 되었을 때 내 배에는 희미하게나마 임금님의 모습이 보이게 되었다. 전역 직후의 몸상태는 말 그대로 최고였다.


작품명 : 《저 정도까진 아니었던》 , 《이 정도까지 되어버린》


 그러나 아쉽게도 이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깥 세계의 유혹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만원이면 편의점에서 대용량의 세계맥주를 네 캔이나 살 수 있었고 집 근처 치킨집은 한 마리 반 가격에 두 마리를 주는 이벤트를 수시로 진행했다. 동아리 선후배들과 거의 매일을 연습하고 놀고 마시고서도 지치지도 않고 PC방까지 가서 밤새 또 노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규칙적으로 불규칙하게 생활했던, 전역은 했지만 아직 복학은 하지 않은 그 시기. 때 맞춰 자취까지 시작하게 되었으니 임금님이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3개월. 자취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내 배에 잠시 찾아왔던 임금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껏 살며 그렇게 몸이 가볍고 내 마음대로 움직인 적이 있었던가.

 배를 여섯 조각으로 가르기 위해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쯤 되자 나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한번 더 수정해야 했다. 양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축복받은 체질은 무슨. 불규칙한 생활과 주기적인 치맥 앞에 내 몸은 너무나 쉽게 그 모습을 바꾸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씨스타가 노래했다. 있다 없으니까 너무 슬프다고.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 가졌다가 사라지는 것들은 무척 아쉽고 그립다. 애초에 가져본 적이 없던 것보다 한 번은 내 것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가져봤던 것이 갖기 어려운 것일수록 아쉬움은 더 커진다. 누군가에겐 돈일 수도, 시간이나 열정, 과거의 추억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의 내겐 복근. 단단했던 그날의 그 근육이다.


 사라진 복근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기약없는 바람을 뒤로하고, 우선 저녁을 먹어야겠다. 오늘 저녁은 수육이다. 연휴 마지막이니까 고기한번 먹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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