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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Jan 06. 2022

대중가요로 읽는 한국사(1)

대중가요로 보는 해방 전후사

음악은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다. 필자가 사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필자의 1년간 사용 빈도 데이터를 보여줬는데, 무려 365일 중 357일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많이 썼네가 아니라 왜 나머지 8일은 듣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대중교통을 타고 어디로 이동할 때, 놀러 갈 때, 슬플 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음악을 듣는다. 기쁠 때 즐거운 음악은 멜로디가 흥을 돋워주고, 슬플 때 잔잔한 음악은 가사가 마음에 꽂힌다. 이 가사는 마치 나를 위해서 쓴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한숨을 내뱉어 보는... 독자들께서도 충분히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맞다.


생각해보면, 가슴에 와닿는 음악 역시 사람이 만든다. 음악에는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경험이 바탕이 되기도 하고, 그 사람들의 이상향이 투영되기도 하기 때문에, 음악에도 역시 인문학이 숨어있다. 그래서 한 시대의 음악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보려고 한다. 앞선 한국전쟁과 김원봉 이야기가 많이 무거워서 분위기를 전환해보려는 시도라고 봐주시면 되겠다. 나름 할 말이 많기 때문에 이를 시기 별로 나눠 시리즈물로 연재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주제로는 1945년 해방을 전후로 발표된 한국 음악들을 중심으로 해방 전후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해방 이전,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다

1930~40년대에 발표된 노래 중에는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유명한 노래가 많다. 대표곡 3개는 이난영 <목포의 눈물(1935)>, 고복수 <타향살이(1934)>, 김정구 <눈물 젖은 두만강(1938)>이 있다. KBS1의 <가요무대>라는 프로그램을 아시는 독자들이 계시는지 모르겠다(필자는 어떻게 아는 건지..). 이 프로그램은 시청 연령층이 높아 옛날 노래 신청 사연이 많고,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할 때도 국경일 기념이나 계절에 어울리는 옛날 노래를 소개한다. 밤 10시에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꾸준히 7%가 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아무튼 <가요무대>에서는 위 3개의 노래가 1년에도 몇 번씩 소개될 만큼 인기 있는 '국민가요'라고 할 수 있다.

왼쪽부터 <타향살이>, <눈물 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 앨범 표지 사진이다.

<목포의 눈물> 목포를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애절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눈물 젖은 두만강> 화자는 두만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떠나간 님이 "언제나 올까?" 하며 그리워한다. 반면, <타향살이> 고향을 떠난 사람이 화자 자신이다. 10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지내는 화자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다.   노래의 공통점은 화자나 상대방이 고향을 떠났다는 것이다. 특히,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는 떠나간 님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나 러시아 연해주로도 갔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두고 외지로 떠났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도시로 떠난 사람도 있었고, 만주나 아메리카 등 해외로 떠난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기회를 찾아 떠난 것이다. 떠나간 그 님들은 기약이 없었다. 언제 해방이 될지도 몰랐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까지의 긴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이별의 아픔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았다.


해방과 함께 찾아온 기쁨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드디어 해방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 중에는 밝은 분위기의 멜로디와 활기찬 가사가 포함된다. 1946년 발표된 이인권의 <귀국선>은 외국으로 떠났던 동포들이 돌아오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다.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 갈매기야 웃어라 …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은 크다." 귀환동포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기쁨이 가사에 드러난다.


1948년 발표된 현인의 <럭키서울> 역시 해방 이후 활기찬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멜로디를 듣지 않아도 그 느낌이 전해진다. 이 노래의 특별한 점은 동시대에 발표된 다른 노래들과는 다르게 영어 가사가 있다는 점이다. 후렴구에 "SEOUL SEOUL 럭키 서울"이 반복된다. 노래의 주인인 현인이 일본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배운 유학파 출신인 점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또한, 미군정 출범 이후 서울 도심에 미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 여행객이 있었던 시대상을 가사에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당시 미군정이 미국인 여행객을 상대로 발간한 한국 관련 자료가 궁금하신 독자들께서는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아래 링크 참고).


분단과 한국전쟁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들

한반도의 분단은 남과 북에서 각각 총선을 치르고 정부를 수립하면서 이루어졌다. 해방 직후부터 통일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이제는 38선을 기준으로 서로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1948년 발표된 남인수의 <가거라 38선>은 분단의 아픔을 표현했다. 화자는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인 38선 때문에 자유롭게 오고 가지 못하는 상황을 한탄하고 있다. 그만큼 분단은 원했던 결과가 아닌 비극이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서울을 출발하여 대전과 대구를 거쳐 부산을 임시수도로 정했다. 사람들도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고, 부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1950년 겨울, 흥남 철수 작전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이북 피난민들도 거제도를 거쳐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1953년 현인이 발표한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부산으로 온 이북 피난민 화자가 헤어진 금순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참고로,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황정민 분)의 가족들이 모여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화자는 당시 부산의 도심이었던 부평동, 남포동, 광복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했고, 영도다리에서 금순이를 그리워한다.


화자뿐만 아니라 많은 피난민들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부산 도심권에서 경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피난민 수용시설도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월세가 비싸고 집을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다리 밑이나 보이는 빈 공간마다 판잣집을 지어서 살기도 했다. 1955년 발표된 박재홍의 <경상도 아가씨>는 이러한 피난민의 삶을 잘 보여준다. 중앙동 40계단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하며 우는 이북 피난민이 있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한 여자는 "판잣집에 살아서 힘드시겠네요", "그래도 고향 가기 전에 국제시장에 나가 담배 장사라도 해보세요", "오래 살다 보면 부산도 고향처럼 느껴지실 거예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러한 경상도 아가씨의 위로는 모든 피난민을 위한 따뜻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피난민들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하나 둘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1954년 발표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정들었던 피난민이 부산역 플랫폼에서 떠나가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피난민은 "잘 있어요." 부산 원주민은 "잘 가세요."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떠나는 피난민은 기차에서 지난 부산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면서 매우 힘들었지만, 정들었던 사람들, 영도다리에서의 경험 등을 추억한다. 피난 생활의 아픔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가 있겠는가.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군대를 다녀오신 독자들이라면 느낌이 올 것이다. 제대한 후에 한 번씩 "그때가 그래도 재미는 있었지."라고 추억하지만, 그때로 절대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 심정. 기차를 타고 떠나는 피난민의 심정이 이와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왼쪽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고 있는 현인의 모습, 오른쪽은 <이별의 부산정거장> 앨범 표지



참고 자료

1. 경향신문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18): 미군정 발간 '당신과 한국'>, 2018/07/29.

https://www.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1807292034005

2. 모든 곡의 가사는 Melon에서 참고했습니다.

3. 사진 자료 출처

    - 이난영 <목포의 눈물> http://ksoundlab.com/xe/sound_music100/8196
     - 김정구 <눈물 젖은 두만강> http://www.silver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41

    -  고복수 <타향살이> http://m.r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562

    -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https://www.youtube.com/watch?v=0twTjqTaQNI

(이 영상에서 무려 1953년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다. 이거 귀하네요.)

    - 남인수 <이별의 부산정거장>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247110&tag=%EB%82%A8%EC%9D%B8%EC%88%98&gb=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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