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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Jan 16. 2022

우리가 오해한 역사 속 텍스트(2)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조는

정조의 어진 (출처 SBS)

조선 22대왕 정조. 우리에게는 참으로 친숙한 인물이다. 드라마 <이산> <옷소매 붉은 끝동>, 영화 <사도> <역린>  대중매체에서 자주   있다.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는 대중에게  매력적인 주제다. 정조가 가지고 있는 ‘개혁 군주 이미지 역시 그렇다. 또한, ‘정조 독살설이라는 주제는 이름 자체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그만큼 정조  정치 구조는 매우 역동적이었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토리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재밌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 집중력이 약한 편이라 영화 <사도>와 <역린> 두 편을 감상하며 대중매체 속 정조를 만나볼 수 있었다. 전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어린 시절 총명한 이미지와 즉위 후 부모를 챙기는 정조의 모습을 담아냈다.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배우들의 일품 연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후자는 정조 대 벌어진 권력 암투와 암살 등을 주제로 다룬다. 대결 구도가 명확하게 그려내어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영조 대부터 맹위를 떨친 노론 세력과 정조를 비롯한 소장파 세력의 갈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립 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 독자들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사례에서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이 아주 훌륭한 장치가 된다.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일까. 다음의 명제들을 살펴보자.


ⓐ 노론 때문에 사도세자가 죽었다.

ⓑ 사도세자는 나(정조)의 사랑하는 아버지다.

ⓐ+ⓑ = 노론은 아버지의 원쑤다!


테스형도 감탄할 완벽한 삼단논법과 엄청난 스토리 라인에 감정이입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여기에 정조의 말 한 마디가 종지부를 찍는다. 정조가 즉위식에서 했던 첫 마디,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짧은 한 마디로 관료들을 제압해버리고 한 순간 정조에게서 후광이 비친다. 필자가 만약 저 자리에 참여한 노론 관료였다면 벌벌 떨었을 것이다. 극적 효과로는 정말 최고다.


오해야 오해!

그런데 사실 이 발언은 원래 복수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정조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너희들 다 죽었어!”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원래의 취지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발언이 실린 정조실록의 기사를 끝까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정조는 1776년 3월 10일에 즉위한 후 여러 대신을 불러모아 명을 내렸다. 사도세자에 관한 명은 『정조실록』 즉위년 3월 10일 4번째 기사에 기록되어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선대왕(영조)께서 종통의 중요함을 위하여 나에게 효장세자(사도세자의 형)를 이어받도록 명하셨거니와, 아! 전일에 선대왕께 올린 글에서 ‘근본을 둘로 하지 않는 것’에 관한 나의 뜻을 크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조는 먼저 자신의 혈통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사도세자는 역모를 꾸몄으므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아들일 경우, 즉위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조는 정조의 즉위를 위해 정조를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킨 것이다. 다음 이어지는 발언을 계속 읽어보자.


“예는 비록 엄격하게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나, 인정도 또한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향사하는 절차는 마땅히 사대부로서 제사하는 예법에 따라야 하고, 태묘에서와 같이 할 수는 없다. 혜경궁(정조의 어머니)께도 또한 마땅히 경외에서 공물을 바치는 의절이 있어야 하나 대비와 동등하게 할 수는 없으니, 유사로 하여금 대신들과 의논해서 절목을 강정하여 아뢰도록 하라.”

여기서 예법과 동시에 자신의 부모에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려는 정조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은 공식적인 관계상으로는 정조의 부모가 아니므로 왕실의 예법에 따라서 모실 수가 없었다. 정조는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자신부터 그것을 잘 지키겠다고 말하면서도, 대신들에게 그래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생각해보라며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이어지는 발언에서 정조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이미 이런 분부를 내리고 나서 괴귀와 같은 불량한 무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사도세자를) 추숭하자는 의논을 한다면 선대왕께서 유언하신 분부가 있으니, 마땅히 형률로써 논죄하고 선왕의 영령께도 고하겠다.”

즉, 이 문제의 당사자인 정조는 자신부터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추숭 문제를 먼저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경고한다. 사후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고도의 정치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정리하고 덧붙이자면

실록에서의 텍스트와 대중매체 속 맥락은 정조의 경고성 메시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자신의 혈통을 밝히면서 사후에 생길 문제를 먼저 차단하고 싶었던 것이지 복수를 다짐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대중매체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전체에서 한 부분만을 떼어 내어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변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사를 구상한 작가는 분명 이 텍스트 전체를 다 읽어봤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문제가 의도적이라고 강하게 추측한다. 물론, 정조의 진의를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대중매체에서 해석한 발언의 취지를 옳지 않다고만 할 수는 없기도 하다. 아.. 너무 어려운데?


이러한 변용과 왜곡의 정당성 판별은 독자들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기고자한다. 역사를 학문으로서 다루는 것과 컨텐츠로 접근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오해 시리즈를 통해 필자는 역사 속 텍스트에 관한 타인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원문을 찾아 읽어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들을 그대로 믿고 살아가기에는 박탈되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틀을 깨고, 의심하는 연습을 통해서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괜찮은 능력을 갖출 수 있지는 않을까. 정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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