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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Sep 01. 2022

'공정'하게 엿장수 마음대로

공정은 정말 공정할까?

2017년부터 한국 사회는 '공정(公正)'이라는 유령과 공존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21세기 초유의 정치적 사태를 기점으로 공정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두고 둘러싼 갈등이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청년들이 이에 분노하면서 "과연 공정한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빌려 비꼰 말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누구는 몇 년을 준비해도 안 되는 판인데, 하루아침에 정규직이 된다고 하니 공정을 외칠 수밖에 없는 심정도 이해한다. 그만큼 정규직이 되기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한테는 공정하고 다른 사람한테는 불공정하다면, 공정은 실제로 성립하는 단어일까?


필자는 최근 새벽 택시 잡기 전쟁을 치르면서 이 문제의식을 다시 떠올렸다. 지난주, 주말을 맞이하여 3차까지 신나게 놀고 나니 새벽 2시가 되었다. 같이 놀았던 사람들은 다 같이 스마트폰을 꺼내 카카오 T 어플을 켰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호출하기 버튼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다. 10분을 기다리니 집이 먼 순서대로 하나 둘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던 필자와 친구 한 명은 결국 새벽 3시를 넘겨서도 택시 잡기 전쟁을 치러야 했다. 너무 짜증이 나다 못해 두 사람은 사유를 하기 시작했다. "이 서비스가 과연 공정한가? 아니 그보다도 공정이라는 말이 정말 공정한가?" 이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은 모두 글쓰기 주제로 딱이라며 미친 사람처럼 눈빛이 돌변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미친 게 맞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공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공정(公正).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는 단어다. '공평'과 '올바름'은 또 무슨 말일까? 전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고르다, 후자는 '이치''규범'에 벗어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따옴표 속 단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떤 기준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과 타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편, 이치, 규범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래서 공평과 올바름, 결국에는 공정까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목처럼 공정은 사실 엿장수 마음대로다. 매우 도덕적이고 절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책을 아직 읽어본 것은 아니나 마이클 센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2020)』도 제목만 보면 비슷한 맥락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필자는 샌델 교수처럼 권위 있는 사람은 아니라 고급스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기 쉬운 예시 하나를 들어 보려고 한다. 두 사람이 길을 걷고 있다가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웠다. 두 사람은 만 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두고 다툰다. 한 사람은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까 내가 6천 원 가지는 게 맞다." 다른 사람이 반박한다. "그게 공정한가? 어차피 당신 돈도 아닌데 반씩 나누는 게 맞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도 범죄다... 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기준이 맞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기준이 정말 공정하다고 설득을 거듭하다가 결국 말싸움 → 주먹다짐까지 넘어간다. 결국 두 사람의 공정은 다르고, 어떤 선택도 공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애초에 공정이라는 단어는 공정하지 못한 채로 태어났다. 공정을 제시하는 사람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자기 기준에는 옳다고 주장하는데 무슨 해답이 있을까 싶지만 나름대로  사회는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가 좋아하는 대화와 타협,  불안정한 상태로나마 존재하는 합의가 있었던 덕분에 공정은 간신히 살아남을  있다. 그러나 사상누각(沙上樓閣) 처해있는 공정이라면 이제는 무너뜨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예 새로 튼튼한 기반 위에 공정이라는 탑을 쌓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기존 공정의  안에서 뭔가 이루려고 생각하는 것보다  틀을 깨는 시도가 필요하다.  나아가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이 해야  일은 불평만 하지 말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들이 꼰대라고 말하는 소위 '86그룹' 학생운동 세대가 대학생  행동했듯이 말이다.


물론 나부터 행동으로 나서야...


표지 사진 출처 시사in(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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