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운폴: 더 보잉 케이스> 감상과 개인적 소회
https://www.youtube.com/watch?v=vt-IJkUbAxY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다운폴: 더 보잉 케이스>가 공개되었다.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에 큰 관심이 있는 필자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소재여서 공개와 동시에 시청했다. 영화는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언 항공 610편의 추락사고와 이로부터 5개월 후에 발생한 에디오피아 항공 302편의 추락사고의 상관 관계를 밝힌다. 두 기체는 보잉사에서 개발한 737 MAX 8 기종이었고, 사고의 원인 역시 같은 부품의 결함이었다.
역사적으로 보잉은 고장이 없는 기체를 만들기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항공업계의 경쟁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맥도널 더글라스와 합병한 이후, 회사의 분위기가 180도 전환되었다. 회사의 고위급 임원들은 원가 절감, 빠른 생산을 외치기 시작했다. 보잉의 꼼꼼함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회사 분위기에서 개발한 기체가 바로 737 MAX 기종이었다. 1967년에 처음 비행을 시작한 737기에서 길이를 늘리고, 효율이 높고 더 큰 엔진을 장착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무겁고 큰 엔진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날개에서 엔진을 조금 더 앞으로 뺐다. 보잉은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릴 수 있으니, 이륙 시 기체가 앞으로 쳐박히는 것을 막기 위해 자동으로 기수를 들어올리는 MCAS라는 시스템을 추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장치의 존재를 조종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교육이 번거롭고,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결국, 이 시스템이 문제가 되어 2018년과 2019년의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그리고 미국은 최초로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 737 MAX 기종의 운항을 즉시 중단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필자 역시 보잉에서 개발한 기체를 많이 이용했다. 제주로 가는 국내선에서 대한항공을 타면 열이면 아홉이 구형 737이었고, 해외로 갈 때도 787, 747 등을 이용했었다. 불현듯 787의 아찔한 추억이 떠올랐다. 때는 2018년 1월, 가족과 함께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을 갔을 때였다. 당시 인천-바르셀로나와 인천-마드리드 노선에 투입된 대한항공 편이 모두 보잉 787-8i 기종이었다. 당시 에어버스에서 A380이라는 2층짜리 대형 기종이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연료를 너무 많이 쓰고, 항공사에서 운영할 때마다 적자가 난다고 악평이 자자하였다. 그래서 항공업계에서는 중장거리에 적합하고, 연료 효율성이 아주 좋은 중형 기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787 기종이 딱 그랬다. 따끈따끈한 신상 비행기였고, 연료 효율성이 우수하고,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되었다고 광고한 것을 본 적 있어서 타기 전 공항 유리창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기체에 점검해야 할 부분이 생겼다며 승객들에게 지연 소식을 알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라운지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또 안내방송이 나왔다. 바르셀로나 행 기체 점검이 더 늦어질 것 같다면서 승객들에게 출국장에서 쓸 수 있는 식음료 쿠폰까지 제공했다. 더 길어질 것이니 기다라는 것 같았다. 결국 지연 5시간 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열흘 간 재밌게 놀고 마드리드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오늘도 지연되지는 않겠지?" 농담으로 던진 한 마디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문제의 787 기종이 다시 배정되었고, 점검으로 4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도착하자마자 광명역에서 KTX를 타야 했는데, 예약해둔 기차표와 시간이 30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결국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택시를 잡아 "기사님, 최대한 빠르게 밟아주세요! 돈은 되는 대로 드릴께요!" 다급하게 외쳤다. 택시 기사님은 화려한 주행 스킬을 보여주시며 무려 15분 만에 광명역에 내려주셨다. 덕분에 중앙차선을 밟고 가면 단속 카메라를 피할 수 있다는 꿀팁(?)까지 얻을 수 있었다(절대 따라하면 안 된다). 보잉, 매우 감사하다! 그 사건으로 보잉에 대한 믿음이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로 부터 9개월 후에 라이언 항공의 추락 사건이 발생했다. 우연은 아니었나보다.
89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러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온갖 생각을 다하게 만들었다. 교통수단의 원가 절감이 어떻게 사람의 생명에 위협을 주는 지, 인간의 욕심이 기업의 이윤 추구에 미치는 영향, 거짓을 은폐하려는 기업의 심리는 무엇일까, 내가 살아 있는 게 참 다행이다 등 비행기보다 사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하게 만드는 점은 최근 문제의 737 8 MAX 기종이 결함 점검을 거쳐 다시 운항이 재개되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도 2월 중순 다시 이 기체를 띄운다는 뉴스가 있었다.
항공사 측에서는 이전의 계약과 여러 검증을 거쳐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도입했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난 필자와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일반 승객들이 무슨 기체가 배정될 것인지도 알아야 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