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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Sep 06. 2022

법대로 다 해도 괜찮을까?

성인(聖人)도 되살려낼 정치의 본질

매일 아침 일어나 종이 신문을 읽는다. 가독성과 휴대성에서 탁월한 인터넷 신문도 좋지만, 종이 신문도 나름대로 감성이 있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신문은 습기를 먹어 겉면이 참 보들보들해진다. 21세기 대한민국 최고 효자 수출 품목답게 과연 제습 성능이 뛰어나다. 사실 이것보다는 볼펜으로 밑줄을 치고 돼지꼬리를 그려 내 생각을 바로 적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새벽에 먼 길 떠나가신 제정신을 붙잡기 좋은 행동이다.


필자는 신문이 반으로 나뉘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정치, 사회, 국제, 경제 기사가 펼쳐진 앞부분은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정치부를 만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사회부는 가슴 아픈 기사들이 많다. 특히 최근에는 수원 세 모녀의 참극과 같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 더 그렇다. 국제 면은 가장 관심이 많아 유심히 본다. 경제 면은 잘 모르는 용어가 많아 공부하면서 읽느라 느리게 넘어간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치야? 법으로 정치하나?


물론 법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왠지 법이 정치의 영역에서 월권을 행사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정치가 실종된 정치. 이는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KBS <심야토론>에서도 패널들이 정치와 법치의 우선을 놓고 다투는 것을 목격했다. 꽤 격렬하고 논리적으로 다투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아웅다웅하는 것을 보고 바로 채널을 돌렸다. 어차피 TV토론은 합의된 결론을 내리기보다 자기편 이익 옹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 문제의 요점은 무엇일까. TV토론 패널들이 먼저 지적했어야 마땅한 문제의식은 '왜 정치가 사법처리에 의존하게 되었는가'라고 생각한다.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따로 있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법이 하지 못하는 일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정치인 개인이든 정당이든 간에 모든 문제를 사법처리에 의존하려고 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법률가 출신의 정계 진출이 활발한 원인도 한몫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사태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17년 대통령 탄핵 사태였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 이후로 정치적인 문제를 사법처리로 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정치의 '수학 공식'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수사와 판결의 공정함을 따지기 이전에 표적으로 삼은 대상이 구속되어야 1차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이 사법 공식이 미시적인 영역에도 파고들어 최근에는 특정 정당 내부에서도 서로 법대로 하자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를 둘러싼 가처분 신청에서도 잘 엿보인다.


물론 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법의 심판에 맡기는 것은 결국 그 사회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화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게 되면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민주주의가 갈수록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특히 일반 시민의 정치 관심도가 올라가고, 자신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되었으면 한다. 고대 도시 국가 아테네만큼은 아니지만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정치 참여가 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은 부족하다. 먹고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빠르고 명확한 결과를 추구하다 보니 결국 정치가 사법처리에 의존하는 방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대로 해야만이 이 사회의 정치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정직하고 바르게 하는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처벌받을 짓을 일절 하지 않아 '형법'이 없어도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예수니 부처니 하는 더한 수식어도 붙는다. 21세기 사회에서는 성인(聖人)이 되기가 이렇게도 쉽다는 말인가. 오호통재라!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로마의 법 때문에 십자가형에 처해졌고, 석가모니도 카스트 제도를 어기고 만민평등을 위해 출가하여 고행길에 올랐다. 법대로 모든 것을 하다가는 망한다. 정치는 이러한 순간에 필요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설득으로 통치자의 결단을 바꿨다면 예수와 석가모니는 1분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법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것.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그래서 이런 정치를 보고 예술이라고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정치가 실종된 정치"

집 나간 대한민국 정치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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