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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Jan 07. 2023

나라를 지키러 떠난 사촌동생에게

꼰대 사촌 형의 위문편지

제목 :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To. 성원


멋모르는 초등학생 때 너를 본 게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렇게 클 줄 몰랐지. 몸 안 아프고 잘 커준 게 보기 좋다. 성원아. 


내가 형으로서 너한테 해준 게 뭐가 있을까? 나는 내 앞길만 갔어. 그러니까 공부만 해서 여기와 있지. 사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야.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는데, 여기 와서 공부하면 할수록 벽도 많이 느끼고, 아직도 한참 부족한 게 와닿아진다.


벌써 수료일까지 18일 정도 남았네, 네가 또 전화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드렸다는 소식을 들었어. 성원아, 고모부, 고모. 다른 친척들은 대하기가 어렵지는 않아? 너도 알다시피, 내 아버지 어머니, 다른 친척들이 너에게 놀리듯 말하거나 너의 말은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게 너를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들이 드라마에 열광하지, 거기 속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을 보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소년, 소녀가 어르신들과 서글서글하니 정겨운 모습 많이 보여주더라. 나이 먹을수록 감정 표현은 강박해지고, 솔직해지지 못하게 된다. 사람 몸이라는 게 그렇게 짜였다. 그런 어른들의 속마음은 애교 부리며 정겹게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거야.


그렇게 표현 안 하는 그들도 만약 너의 선택이 정말 아니다 싶은 길은 표현이 격해져. 그거는 본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게 우기는 게 아니라 너를 오롯이 생각해주니까 그런 쑥스러운 감정 표현이 나오는 거지. 

정말 무서운 가족관계라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망하든, 잘되든 관심도 없고 않고 대화도 안 하는 거야. 피로 연결된 가족들은 너의 적이 아니야.


비록 너의 고모, 고모부들이 배움이 짧으셨어도 적어도 범죄는 저지르지 않고 살아오셨지. 누구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아무 뼈대도 없는 상태에서 옳게 살아오려고 발버둥 쳐온 결과라고 보면 되는데, 그런데 너는 그게 아니잖아. 마 씨 가족들, 참 단순하면서도 드세. 그렇지?


그런데 서글서글하니 다가가면 한없이 잘 대해 주다가도, 마음에서 멀어지면 칼처럼 내쳐버려. 가끔가다 보면 내가 친구 없이 사는 게 마 씨 종특을 물린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나는 그런 마씨네가 좋아서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야. 내가 여기서 공부를 하는 것도 가족들 함께 잘 되는 게 목표이고. 네가 다른 형들과도 갈등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가만 보니 가족들은 네가 적어도 그릇된 길을 걷도록 만들거나 내버려두지는 않고 싶어 하시는 거지. 만약 대화를 안 하고 사는 가족이 된다고 하더라도, 내 핏줄이 잘못되어간다고 하면 가만 내버려두지는 않아, 가족이니까.


내가 너의 입장이 되어 글을 읽으면서도 내가 그들의 자식인데, 너한테는 잘 안 와닿겠다. 솔직히 나도 친구 없어. 가족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게 33년째여~ 그런데 나는 너의 아버지가 참 좋았다. 나한테는 형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인 좋은 삼촌이었어. 이번에 북극에 간 게 나도 왜 가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마음이 향해서 가게 되더라. 가서 오로라, 유성우를 바라보니 삼촌 생각에 좀 울컥였는데, 때마침 신기하게도 네가 군대에 입대한다더라.


내가 그 빌어먹게 추운 곳까지 가서도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기도 많이 했어. 물론, 나는 종교는 없단다. 

그런데 가장 마음 아픈 건 내가 박사가 되어도 그렇게 사랑했던 너의 아버지에게 자랑할 수 없다는 거야. 나는 정말 자랑스러운 조카가 되고 싶었거든. 대신에 네가 대신 봐줘라. 군대도 사회도, 아프면 누가 나를 대신 챙겨주지 않아. 아프면 서럽다고들 하더라.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 성원아.


9 생활관 사진 들고 있는 사진 보니까 대견하면서도 보기 좋은 청춘인 것 같다. 너희들 덕에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거야. 괜찮으면 다음 사진에는 한번 웃어줘 봐. 웃을 때 잘생겼는데 잘생긴 모습 어쩌고 표정이 굳었어.

다음에 또 편지하마 성원아, 언제나 응원한다.

-강민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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