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여사님이 종종 수틀리면 하는 말이다. 당신의 아들이 자신 없어하거나 정신머리 못 차릴 때, 멀리 떨어진 자식도 보고 싶은 겸 물음을 던지신다. 아니 언제는 사람 죽일 듯이 눈을 부릅뜨고 공부하라 만화책을 절단 놓더니 마음이 약해지신건가 싶지만, 그런 이유도 전화기 너머로 내가 믿음직하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겠다.
사실 다 내가 원인이다. 가족들의 걱정도, 나의 의기소침함도. 그 정신적인 문제가 커진 건지, 잠을 4시간만 자게 되었다. 많이 자면 5시간, 이곳에 와서 내가 이룬 게 뭐지? 왜 더 잘하지 못했지?라는 생각이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눈 꼭 감고 자려고 들 때면 지난 영상 통화에서 본 아버지 엄마의 얼굴 주름이 상기된다. 내가 나이 먹을수록 그들도 같이 먹는다. 이럴 때 보면 시간은 상대적이지 않은 것 같다. 감성이 완전 90년대 뮤비를 회상하는 그런 느낌이 되어 간달까. 이렇게 틀딱이 되어가는 건가 싶다.
남은 6개월의 계약기간 동안 학위를 끝내야 된다. 박사 이후에는 뭘 할 거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 시기 때부터 포닥이나 취업 준비를 위해 원서를 넣었거나 지원처로부터 대답을 들었어야 한다. 아니 그런데 분명 저번달에는 1 달에 논문이랑 실적을 가져오라며, 지원은 언제 알아보고 해 또? 라며 말은 징징대지만 내 주변인들은 어떻게든 다 하는 사례들만 보게 되었다. 이런 순간이 있을 때마다 참 스스로가 화가 난다. 그들과 달리 언제나 뒤처지고 효율성 없는 결과만 들고 가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미워하는 건, 재능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열등감이 아니라 그만큼 발버둥 쳐도 그 정도밖에 해놓지 못한 내 자존심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연구자가 아니라 실험에 훈련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재능이 없다는 건 참 마음 안타까운 거다. 물론, 어떤 직업이든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말이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다음이 겁이 나는 거다. 그런 모습을 가족들한테 보였으니, 집 나간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겠다.
가족들이 없었으면 하지 않았을 진로였다. 물론 그들 덕분에 하게 되는 거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잘해야지 계속 모질이 같은 모습만 보여주니 스스로 용납이 안 간다. 사실은,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 못한 그 순간에도 이곳에 와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17살부터 박사라는 길만 보고 온 건데,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당신의 아들이 마음의 한을 대신 산산조각 내준다는 것이 내 인생에 크게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정신 차려보니 본질적인 걱정인 점은 이다음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내비칠 때면, "너는 잘하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박사만 따면 탄탄대로 일 것이다"라는 말들이 너무 듣기 싫어진다.
대단한 사람들은 어디든 널리고 널렸다.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라면 당연히 빌런제조기마냥 자랑하고 다녔겠지만, 당신의 퉁퉁이 같은 아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 형. 형이 그렇게 말하면 저희 같은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라고 대답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일부러 선택을 안 해서 그런 거지, 이 진로를 걸었으면 아주 잘근 씹어먹었을 거다.
매번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을 때마다 비바람에 뽑힐 듯 버티고 있는 나무 같지만, 그런 비바람이 지나가기라도 해야지 뽑힌 나무를 깎아 만들든, 뿌리내리고 계속 커가는 강한 나무가 되든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