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두 마리 그렇게 팔아오던 치킨은 나의 따뜻한 옷으로, 유행하는 책가방으로, 대학의 등록금으로 되었다. 설날, 추석이 되어서야 하루를 쉴까 고민하는 이들은 단지 아들이 공부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의 쉬는 날은 더욱 좁아지고 20, 30, 40, 50 그리고 지금의 60대를 바라보는 세월까지 그들의 0순위는 언제나 나에 의한 소망이었다.
그런 점을 모르쇠 하기 싫다. 이름이 갑작스럽게 바뀌어진 상황에서도, 매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손 발이 닳도록 싹싹 비는 것을 바라볼 때도, 나는 그들의 소망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 바람과는 달리 막연히 이 악물고 달려든다고 해서 바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공부에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모질이가 인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그들의 걱정은 더 해졌다. 당장에 이 먼 독일까지 찾아올 수도 없고, 불안한 마음에 안식을 찾고자 그들이 방문한 곳에는 신을 본다는 그들의 말 한 두 마디로 안심을 가지게 된다. 물론 나는 종교는 없지만,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내가 가족들에게 의지하듯, 그들은 그 방법이 의지되는 거다. 내가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어도, 그렇게라도 자식을 위해 도움 주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종일 화가 나 있다. 내가 무능하다는 사실과, 나 때문에 그들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런 간절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화가 이유이다.
평생을 나 같은 모질이 병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이 안쓰럽고 미안하다. 내가 애초에 능력 있고 잘했으면 거기 가서 가족도 아닌 인간들에게 쓴소리 들어가며 돈을 써갈 일은 없었을 거다.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주둥이를 손으로 찢어버리고 싶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상처받는 건 결국 내 부모님임을 알고 있다.
내 0 순위는 이들의 행복이다. 그들의 목표가 나의 목표고, 이유이다. 이것 한 가지를 반드시 이루기 위해 1,2,3 순위를 없앴다. 그래서 내가 외치는 사랑과 열정에는 이성에 대한 성분이 없다. 나의 행복한 미래를 바라는 이들의 소망이 부담감을 주려는 것이 아닌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런 것도 하나 못 이루어 주는 내가 싫을 뿐이다.
모래성과 같은 능력으로 여기까지 죽지도 않고 용케 왔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