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aum im Wi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폐관수련인 Mar 06. 2023

너를 찾을 때까지

꿈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주제

너는 도대체 왜 안 만나?

https://www.youtube.com/watch?v=ccYkDM3lxOY

주제 상응

매번 듣게 된 질문에 EBS 식 대답의 레퍼토리가 생겼다.


16년의 일기장 속에 딱 하나 없는 주제가 있다. 이성관계, 그건 내 능력이 전혀 닿지 않는 성질의 분야이며, 스스로에게 확신이 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노력하면 운동이든 자기 계발이든 손 뻗어 닿을 수 있는 분야들이 있겠지만, 만능 맥가이버마냥 모든 분야에서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영역은 타고난 게 없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애초에 항상 자기 암시처럼 외쳐대는 사랑과 열정의 의미는 이성관계와는 전혀 거리가 먼 성분이다. 그런 분야의 거리가 가까워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우선순위에 해당 안 되는 분야이다. 사실은 다 변명이고 자신감이 적다.


왜 뜬금없이 폐관수련은 어디 가고 이런 주제가 나오게 되었는가 하면, 요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내 모험의 끝에는 가족들과 행복으로 다가가는 건데, 염원과는 달리 전혀 준비가 안 되어있다.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의 압박이 점점 강해진다. 전쟁 통에도 로맨스는 다 있다고? 그건 그 상황에 처한 상황이 되어봐야 알 일이지 멋모르는 연구원이 뇌내 시뮬레이션만으로 감흥이 오겠나. 대체 어떻게 학위 취득하기도 전에 사랑을 찾는 건가 싶다. 내 부족한 능력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 : 아니 멍청아 누가 바로 결혼하래? 일단 만나만 보라니까?


사람과 사람 관계에 계산적으로만 다가간다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다. 모두가 훈훈하게 끝날 수 있는 목적과 끝이 보이는 행복한 결말, 그런데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게 되면 이도 저도 아니고 방향성 없이 흐지부지하게 된다. 나부터가 학위를 빼놓고 보았을 때, 이성으로서 매력적일 수 있는 사람인가? 는 인기 없는 사람의 자문이다. 유일하게 아이돌로서 인기 있을 수 있는 곳은 한적한 시골 속 인절미 클럽 파티를 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의 경로당뿐이다. 일 잘하는 한우로서나, 돌쇠로서 그분들에게 척척박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진로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물론 동일한 진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들은 고맙게도 도움 받았다는 순간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절실했던 순간들이 있었던 만큼, 나에게 인연 닿은 또 다른 절실함에 대해 불순함이 섞인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이 먼 곳까지 와서 공부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주는 가족들에게 "나는 내가 누구를 도와줄 때 이성이라면 그런 불순함이 섞여있어요"라고 보이는 것만큼 그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당신들의 아들은 그렇게 교육받지도, 보고 자라지도 않았다.


그때 도와준 사람들이 잘 된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 좋고 에너지 받아가는 것 같다. 마치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솔직히 굳이 도움 주지 않아도, 빛이 나는 사람들이라 본인 앞길은 본인이 스스로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을 보며 동기부여 얻는 내가 있을 뿐이다. 이렇듯 내가 그들에 대해 기쁜 듯이 이야기했을 때, 심란한 표정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그들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인지 알고 있다. 그들도 나를 생각해 주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그러기는 개뿔 그런 놈들치고 커플이 아닌 놈들이 없다.


이성관계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선호하는 사람과 성격이 있다. 가끔 진지하게 동성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이들을 반으로 접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때마다 내 이상형과 믿지도 않는 MBTI에 대해서 애써 상대방을 설득하는 상황이 난처한 거다. 이따금씩 생년월일과 시까지 물어보며 알프스에서 산삼 찾듯 구해주겠다는 이 동료의 눈빛은 나를 위한 측은함인 걸까 아니면 아니면 동물원에 있는 수컷에게 짝을 구해주려는 조련사의 심정일까. 독거노인 예방을 위해 복지를 시행하는 이들의 실행력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책 한 권을 수백 수천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듯 이 분야에 수백, 수천 번의 경험을 쌓는다면 내가 이런 고민도 안 할 것 같지만. 사람은 책과 같지 않은, 보다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찾는다는 Heidi, Aurora, Valkyrja, señorita 등의 캐릭터들은 내 인생에서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찾게 된 그 순간까지 힘껏 달려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대단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나도 거기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본인의 성격이 참 복잡하고 까다로워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가 않지만, 나부터가 나를 좋아할 줄 모르니, 타인에게 이성으로서 강점을 느끼기가 쉬울 수 있을까...

그럼에도 세상 어딘가에 있을 너를 찾으려 노력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0 순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