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자란 사람
나이는 먹어가는데 내 몸뚱아리는 전혀 어른이 되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란 존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능꾼으로 보였다. 내가 모르는 건 이미 다 알고 있고, 항상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줬으며,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저런 어른이 되어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짐하며 또 다짐하고 착실하게 해나간다고 생각했음에도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모질이 같고 어린애 같은 구석이 넘쳐난다. 내가 참 애 같다는 면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까칠한 사람이 된 뒤였다.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자존심이 센 내면은 사람들이 다가오길 어려워하게 만들었다. 내가 먼저 밀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는 고치지 않는다. 이미 답을 정해 놓은 것이다. 나는 그래야만 하는 사람, 그것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 고집불통이 따로 없다.
20대, 30대를 지나며 이런 내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의 충고는 행동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살지", "스스로를 너무 낮춘다", "본인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같은 주제의 말들이 반복되다 보니 이 정도면 내가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된 적도 있었다. 인지능력이 낮은건가 혹은 변화가 싫은 건가 싶지만, 결국 자존심이었다.
지난 32년 동안 가장 나를 잘 아는 사람, 본인이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딴대로 파는 순간 인생이 나락을 걷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옳아매야 성과를 이루었다. 그렇다,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선 경험의 지식 전달은 진실로 숭고로운 것이지만, 내가 달려들지 않으면 결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나의 시간을 대신하여 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니 저러니 말해도, 내 행동들의 결말은 언제나 가족이다. 그래서 고작 공부 하나로 오두방정 떠는 이런 모질이를 믿어주는 가족들한테 결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다짐으로 걸어두었다. 그러니 별 탈 없이 몸 건강히 오래 오래 봤으면 좋겠다. 하나라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게.
매일 같이 모질이의 끼니 유무를 걱정하는 그들에게 나는 다 자란 사람으로는 보여지지 못하는 것 같다. 차라리 모자란 사람이 뭐든지 노력해서 이루는 당신의 또 다른 인생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