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가족들은 하나 같이 자존심이 강하다. 불도저 4대를 좁은 도로에 놓은 듯, 하다 못해 반려견도 가족들을 닮아있다. 듣든지 말든지 서로 본인 할 말만 하는 이 가족들에게도 뜻을 모으는 순간이 있다. 일요일 아침, 동생이 외식하러 가자는 말 한마디로 대동단결이 시작된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 밥 이야기에 벌떡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불도저들이다.
외식 메뉴는 또 뼈해장국이다. 1달에 3번은 먹는 것 같다. 메뉴의 종류가 크게 한정되어 있는데, 멀리 나가도 설렁탕, 순대국밥, 그나마 비싼 걸 먹으면 월남쌈이다. 그렇다 우리 집의 외식은 배 터지게 먹는 고기반찬이어야 한다.
기름 넣고 차에서 대기하는 아버지, 강아지랑 놀다 두 번째로 조수석에 탑승한 나,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생얼로 뒷 자석에 타는 동생, 가장 늦게 나와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는 여사님의 탑승으로 시작부터 시끄러워진 외식 길을 나선다.
"간다고 간다고! 그만 좀 보채 강ㅇㅇ아" 여사님한테 때로는 돌쇠, 아랫사람, 칠칠맞은 사람으로 표현되는 아버지다. 자주 운전기사로 표현된다.
이 티격태격은 신호등 3개를 건너도 멈추지 않는다. 험난해진 뼈해장국 외식길에 동생의 중재가 있어서야 잠잠해지는데, 이 불도저는 우리 집에서 애교가 가장 많다.
이 집 불도저들은 본인 감정을 쉽게 드러낸다. 특히 여사님의 속마음은 가족들 누구라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가만 관찰해 보니 가끔은 필터 없는 정수기 같다고 표현하는 아들을 힘껏 욕설로 답변해주신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관심 가는 주제가 튀어나오면 거기에 맞춰 다시 또 외식 길이 험난해진다. 뼈해장국 먹으면서, 먹고 나서도 이어진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반복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맨날 본인 이야기만 하냐면서도 결국 함께했었다. 이제는 멀리 떠나온 모질이 아들 때문에 매주 함께 했던 외식 길이 아쉬운 여사님과 돌쇠 아버지다. 이 불도저 가족들 중에 가장 표현력이 부족한 모질이는 당신의 아쉬움의 토로를 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마음속의 본심들이 참 입 밖으로 안 나와진다. 안과 밖이 다른 놈은 나를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오늘은 여사님이 화가 단단히 나셨다. 친구 분에게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고 무시를 받아 기분 나쁘셨다고 하신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나한테 하려는 말씀을 돌려 말하시는 거였다. 며칠 전 전화에서 대화에 집중 못한다고 내가 지적했기 때문이다. "너 왜 네 엄마 무시하냐?" 전화통화 너머로 목소리만 들어도 여사님 표정이 보인다.
솔직한 감정을 토로하는 여사님 덕에 그제야 내 감정도 드러낸다. 건강 관리를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사실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당신이 점점 나이 들어간다는 걸. 영상 속 당신의 머리 색은 1달에 한번씩 염색하지 않으면 백발이 되고 만다. 그러면서 왜 당신의 모질이 새치를 걱정하는 건가. 아들의 소망에도 매일 같이 물려줄 재산 생각만 하고 있다. 쉬지도 않고 힘든 몸을 이끌고 장사를 하고 있는 당신의 고집은 내가 세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들 오래 볼 거 아니냐는 말에 당신의 화는 또 누그러진다. 아마도 이 여사님은 당신의 모질이가 박사가, 교수가 되어서도 당신의 모질이만을 걱정하며 살아갈 것 같다. 내 보물이 되는 건 물려받을 수 있는 당신의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이 아니라, 함께할 시간이다.
흘러가야 나타나는 세상이 있는데,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딜레마로 섞인다. 시간이 참 애석하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증명하고, 성취하기 위해 보여줄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당신의 아들은 여기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덕분에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