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여름 때 일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여름방학 기간이었다. 초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인 '홍'이 집이 비었다고 놀러 오라고 하였다. 4명 정도가 모여 밤새 플레이스테이션 축구 게임 위닝을 했다.
새벽 5시쯤 게임을 접고 자볼까 하고 누웠는데, 친구 두 명은 그냥 집으로 가겠다 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와 '홍' 둘이 남았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자다가 한 마디를 건넸다
"돈 벌어볼래?"
밤새워서 게임하다가 이제 좀 자보려고 눈을 붙이고 있는 와중에 돈을 벌자니? 하지만, 그 제안이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20살이면 당연히 부모님께 용돈 받아서 생활해야 하는 처지였고 돈은 늘 쪼들렸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용돈 30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물가를 생각해 보면 당시 30만 원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지만, 그땐 그 돈도 항상 모자랐다.
경제관념이 개판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살이어서 가능했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집에서 나와 구로구 소재 인력사무소를 갔다. 오전 7시쯤 도착했는데, 처음으로 인력사무소란 곳을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인력사무소는 2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아침부터 일감을 찾기 위해 인부들이 계단서부터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약간 충격을 먹었었다. 20살이 되기 전까진 난 아르바이트도 해보지 않았었고, 사회란 곳이 어떤 세계인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새로운 세상을 본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게 친구와 나는 줄을 서고 차례가 온 후 접수대에 신분증을 맡겼다. 지금도 그 얼굴이 기억난다. 약간 무섭게 생겼던 접수원 아저씨... 10분 정도 기다리자 나와 친구를 부르더니 어떤 종이를 주셨다.
그리고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나와 홍을 부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건물 밖에 주차되어 있던 검은색 봉고차에 타라고 했다. 타자마자 갑자기 아저씨 4~5명이 우르르 뒤따라 탔다.
그렇게 봉고차는 출발했다.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을 품고 우리 둘은 그렇게 밤을 새우고 막노동을 뛰러 차에 몸을 맡겼다. 사실, 지금 기억으로는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냥 친구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며 어디든 뭐 일하러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봉고차 안의 공기는 정말 무거웠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퀴퀴한 아저씨들, 그중 가장 어리고 젊은 스무 살 두 명의 소년. 그분들 입장에선 얼마나 우리가 순수해 보였을까
50분 정도 차로 이동한 끝에 우린 '인천터미널역'에 도착했다. 참 멀리도 왔다.
그렇게 20살 무더운 여름,
난생처음으로 막노동을 했다.
나와 친구가 일해야 할 곳은 '인천터미널역 CGV'였다. 빛도 창문도 없는 지하에 위치한 공사장이었다. 처음으로 육체적 노동을 해본 나로선 나름 자신이 있었다. 이유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정말 많이 했기 때문이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축구를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에
꽤 자신감 있게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작업 업무는 단순했다. 말 그대로 가벼운 것에서부터 무거운 자재를 계속 나르면 되는 것이었다. 자제 옮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날 힘들게 했던 것이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분명 체감상 3시간 정도 일한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 아닌가.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드래곤볼 만화를 혹시 아는가? 거기서 '시간의 방'이란 곳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시간의 방에 들어가서 1시간을 보내면 시간의 방 밖에서의 시간은 8시간 정도 지나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시간의 방에 들어온 경험을 그때 처음 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더럽게 안 갔다.
단순한 업무를 하는 건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갈까?
시간이 잘 가지 않으니, 모든 상황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공기를 가득 매운 석면 가루
빛도 없는 어둠 컴컴한 장소
무더운 여름 날 선풍기조차 없는 공사장
모두가 말없이 일만 하는 상황
지옥이 여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노동을 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그랬을까? 참기가 힘들었고, 견디기 힘들었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오후 5시까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체감상 3시간 흐른 느낌이지만 실제론 1시간이 흐른 상황,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무언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없었거니와 '의지력'을 발휘해야 했던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하기 싫은 것은 너무나 쉽게 포기했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던 청소년기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학교생활에서 '학업'에 대한 몰입은 인간의 '의지력'을 가장 처음으로 훈련할 수 있는 영역이었을 텐데, 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것만 했던 나날들이었던 것이다.의지를 사용하는 법도, 의지력을 사용해야 할 영역도 알지 못했던 20살 '나'는 막노동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난 오전 10시쯤 정도에 친구 '홍'에게 한심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
"홍아, 집에 가자"
"......"
"집에 가자고... 아 진짜 못하겠다"
"신분증 맡겨 놓은 건 어쩌게... 직접 가서 받아야 해 "
"다시 발급받으면 되잖아"
"야... 그래도 시작한 거 끝까지 해야지"
"......"
찬란하게 빛났던 20살. 친구가 전부였던 나. 친구의 그 말 한마디에 결국 이 악물고 끝까지 5시까지 일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막노동을 끝내고 정말 인생에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데,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서른 살이 되었을 무렵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업무와 사람에 치여 힘들어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득 20살 여름 홍의 모습이 생각났다. 어째서 그는 나와 같은 20살이었음에도 그렇게 어른스럽고 든든한 모습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참을성과 인내심은 왜 차이가 났을까.
만약 내가 홍과 같이 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일을 했다면 중간에 공사장 현장을 뛰쳐나왔을 거라고 확신한다.
홍과 나의 차이의 근원은 알 수 없지만 10년이 흐르고 난 뒤 난 스무 살 홍에게 '의지력'이란 것을 배우게 됐다. 당시엔 몰랐지만, 10년이 흐르고 난 뒤 생각한 스무 살 '나'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정신적으로 홍이 나보다 10년을 앞서 있었던 걸까 싶기도 하고..
포기하려 했던 자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자
둘의 삶의 형태는 달랐지만
그 친구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부러워할,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에서
자신의 삶을 잘 이어가고 있다.
현재 나의 '의지'는 스무 살 의지와 다르게 많이 성숙했고 인내심이 더해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올바른 의지 사용법을 다른 사람들에 차근차근 전해주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어려운 상황일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온전히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올바른 '의지' 사용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올바른 '의지'의 사용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의지를 가르쳐 준 그 친구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가끔씩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나에게 '의지'란 것을 가르쳐 준 인생 선생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 그 친구는 모를 것이다. 내가 본인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