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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OI Apr 04. 2024

광명시 철산동 : 철산주공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위한

사진 에세이


사라진 '노스탤지어' 



초등학교 6학년이 시작할 때쯤 철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와본 동네, 낯선 곳, 5층짜리 저층식 아파트밖에 보이지 않았던 곳. 


하지만 아파트 한 동 사이사이 숲처럼 조성된 나무와 풀밭이 참으로 멋졌던 곳. 


철산 주공 8단지는 참으로 한적하고 여유 있던 동네였다. 단지 자체가 제법 크기도 했지만, 동네 곳곳에 벤치와 놀이터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들과 노인분들에 대한 배려가 사려 깊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난 철산동에서 오래 살진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에 이사 와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으니 오래 살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내가 철산동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순수했던 나와 친구들 시절의 과거가 그곳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철산 주공 아파트 8단지


간혹 나는 행복했던 과거를 기억함으로 살아갈 힘을 받곤 한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림으로써 어려운 현실을 이겨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그 시절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행복한 추억이 있는 장소로 찾아가기도 한다. 


이게 가능한 건가 싶지만, 나는 예전부터 그랬다. 그래서 나에겐 장소와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반대일 때도 있었다. 힘들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이 힘든 경험을 했던 장소, 좋지 않은 기억이 있던 장소도 찾아간다. 그것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현재에 감사하기 위한 마음이다. 


그렇게 나는 주기적으로 나만의 '노스탤지어'에 빠져 힐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보물과 같은 '기억의 장소'가 하나둘씩 사라지곤 하는데,  그것을 경험할 때마다 마음이 굉장히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그 상황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인류는 진보와 개발을 통해 나아가기 때문에 과거의 장소는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린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30대를 넘어 40대로 향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되찾고 싶은 것은 '순수함'이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눈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어른에게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은 필요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보'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받아야 하는 세상.

순수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무시당할 상황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순수함은 버려야 해" 


치열하고 경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누군가가 우리 귓속에  속삭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어린아이 시절 '순수함'을 다시 찾기 위한 노력을 하면 좋겠다. 








아무 걱정도 없었던 시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에 바빴던 시기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이터에서 얼음땡 했던 기억.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어머니가 밥 해 주시던 기억. 등굣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같은 반 친구를 만나 웃으면서 학교로 향했던 기억.


매미가 우는 무더운 여름날, 학교 운동장에서 땀범벅이 된 채 축구했던 기억. 친구들과 학교에서 깔깔 웃기도 했지만,  때론 울면서 싸우기도 했던 기억.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아파트 베란다에서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어머니들의 기억. 집 가는 길에 열쇠가 없다고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친구를 만난 기억.


아파트 단지 내를 걸어가다가 어느 집에서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던 기억. 친구가 엄마한테 혼나 울면서 놀이터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기억.


이 모든 기억은 나뿐만 아니라 철산동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곳을 자주 지나쳤던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기억도 좋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추억과 기억을 들추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지금은 철산동 주공아파트 단지는 재개발 구역으로 모든 아파트가 철거가 된 상태이고,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지는 중에 있다. 기존 주공아파트에 입주하여 사셨던 분들 중 부푼 마음을 품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실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내가 살았던 철산 주공 아파트 단지는 사라지고 없지만, 이 글이 언제든지 예전의 기억과 추억이 필요하면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글이 되길 원한다.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듯이 지나간 과거를 가끔씩 추억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현재 철산동 주공 8단지는 많은 이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씨앗이 자리한 곳에 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 입주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가정에 행복이란 열매의 나무로 자라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함께 웃고 울고 떠들었던 그리고 세상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친구들의 삶에도 항상 과거의 좋은 기억들처럼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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