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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OI Apr 09. 2024

피자 : 사랑하고 싶은 자들을 위한 음식

사진 에세이


10평 남짓 피자 가게 안 테이블 간격은 딱 사람 한 명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간격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옆 테이블에서 피자를 먹는 일행이 조금 신경 쓰일 수 있을만한 어색한 간격, 하지만 다행히도 피자를 다 먹을 때까지 우리 옆 테이블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단 둘이 먹기에 가장 무난한 음식은 피자라고 생각했다. 너무 입을 크게 벌리지 않게 하기 위해 크기를 조절하여 조각낼 수 있다는 점과 번잡하게 수저와 젓가락을 이리저리 옮기지 않아도 됨으로써 산만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간단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쓸 수 있단 점에서 손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그녀 앞에서 당연히 긴장했을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함으로써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단 점에서 탁월하다 생각했다.


피자는 적절한 배려와 매너를 가장 쉬운 동작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음식이란 점에서 또한 탁월했다. 피자를 조각내고 접시에 담아주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집중하면 최대한 여유로운 자세로 그녀의 접시에 피자를 담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만의 매너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모든 오감을 통제하여 그녀에게 가장 질서 정연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왼손에 들고 있는 포크를 피자에 고정시키고 오른손 나이프로 피자를 써는 행위 자체가 과한 움직임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 순간, 약간의 만족감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탁월한 놈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최대한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음식, 하지만, 그녀 앞에서 피자를 코로 먹었는지 눈으로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짝사랑은 사실 짝사랑으로 끝나기 마련 아닌가.

짝사랑과 단 둘이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아닌가.


하지만 우린 그해 여름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래, 맞다. 피자가 도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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