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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OI Apr 11. 2024

북촌 : 미래를 예견한 사진

사진 에세이

그날의 하늘


7월 3일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청명한 하늘과 뭉게구름은 유독 감성적이었다. 


안국역에서 나와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불규칙한 심장의 맥박으로 인하여 설렘과 힘겨움이 공존하는 걸음이 되었다. 그녀를 너무 좋아해서 일상에 약간의 차질까지 빚어졌던 그해 여름날, 사실 그 만남은 이루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이성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오로지 감정으로만 움직였던 그 여름날을 후회한다. 시간을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역시나 자신이 없다. 아마 똑같은 선택을 내리지 않았을까?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기에 충분히 예상이 된다.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을 사랑한 죄의 결과는 너무 끔찍했다. 무언가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멈출 수 없던 여름이었다. 뭉게구름 님께서 나의 감정과 감성을 하늘 위로 끌어올리셨던 것일까? 청명한 하늘의 아름다움 님께서 나의 이성적 기능 버튼을 잠시 꺼 놓으신 것일까?

그날의 사진


그날 저녁엔 그녀와 북촌 한옥마을을 갔다. 그녀는 나를 위해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함께 서 있었던 자리에서 찍은 사진의 초점은 날아간 상태였다. 하지만 그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왔다고 그녀가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만족스러웠다. 


명확하게 나와야 했던 사진이었지만, 초점이 흐리게 나온 것으로 보아 역시나 건강한 상태의 이성적 만남이 아니었던 것이다. 초점이 흐린 사진은 그대로 감성적이고 예쁘게 보였지만, 우리 둘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흐린 관계로 종국을 맞이할 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던 거 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치명적 단점은 이성적 사고를 결여시킨다는 것에 있다. 흐린 눈을 아무리 비벼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한 연약함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일까? 문득문득 연약했던 시기, 그 모습이 드문드문 나온다. 나이를 먹으나 시간이 흐르나 근본적인 문제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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