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CHOI Apr 08. 2024

한라산 : 인생을 보여줄게

사진 에세이


10월 31일   


아직 해뜨기 전까지 몇 시간 남아 있는 새벽의 길 위에 혼자 차를 몰고 한라산 관음사로 향했다. 외로움과 고독을 온몸으로 마주하기로 작정한 날이기에 가는 길은 오히려 설렜다.     


명확한 목표의식/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발전/ 어제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오늘/ 철저한 계획/ 경제적 자유를 위한 불굴의 의지/ 의지를 통한 명확한 성취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화두였던 키워드임과 동시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소진했다고 생각할 만큼 달렸다.  


하지만 결과는 번아웃, 고꾸라졌다. 그리고 모든 것을 중단했다.


인간의 자유 의지 사용 범위와 보이지 않는 신의 섭리 가운데 인간의 의지와 계획은 어쨌든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 후의 삶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넘어졌고, 다시 회복이 필요했다.                               


                        

새벽 5:00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산은 가본 적 없었다. 빛이 없으면 한 치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나에게 빛의 존재가 된 것은 휴대폰 라이트였다. 이 작은 불빛을 의존하며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에게 안도감을 준 것은 불빛이 아닌 멀리서 빛을 의존하며 산길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존재였다.      


궁극적으로 어둠 속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 거 아닌가 싶었다. 빛을 꺼 보았더니 어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인기척, 이따금씩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소리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큰 안도감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명'이 반드시 올 거라는 믿음이었다.

      



등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좀만 쉬면 바로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산 중에 부상을 입은 사람들,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거나,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등산은 참으로 인간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만 여유를 부린다거나 심지어 좋은 경치를 보기 위해 멈춰 있는 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등산은 경쟁적이지 않고 공평하다. 1위로 먼저 올라가도 상금이나 무언가 특별한 것을 얻을 수 없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다 각자의 이유와 사정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낙오자가 생기는 것과 사고를 당하는 사람, 그리고 상대적으로 누군가보다 빠르게 올라가서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먼저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갔지만, 하산하는 길에 어떤 난관을 부딪혀 늦게 최종 하산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순탄하게, 누군가는 어렵고 힘들게 내려오는 것도 인생과 비슷하다.  







산을 오르는 것은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나만 힘들지 않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공평하다. 힘들지만 이따금씩 산은 충분히 오를 가치가 있다고 말하듯이 좋은 경치를 제공한다. 아름다운 경관에 압도되어 다시 올라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겐 가혹한 곳이 될 수 있는 게 산이긴 하다. 하지만 낙오가 되더라도 걱정할 건 없다. 정상을 보고 내려오는 하산객들이 낙오자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산은 마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임과 동시에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우리도 멈춰 있는 자들을 도와야 할지도 모른다. 그가 아프든, 힘들든, 실패로 좌절하고 있든, 이유를 불문하고 앞으로 가지 못하는 자들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것이 올바른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산으로 치면 나는 현재 어느 곳에 위치해 있으며 어떤 상태인 걸까.


명확한 목표의식/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발전/ 어제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오늘/ 철저한 계획/ 경제적 자유를 위한 불굴의 의지/ 의지를 통한 명확한 성취     


이것을 이루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삶, 이러한 명확한 목적을 위한 걸음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었던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 같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16:9-


반드시 어느 시점에서 힘들고 지쳐서 고꾸라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산도 마찬가지다. 포기하고 싶지만, 힘들어도 꿋꿋하고 묵묵하게 정상을 향하여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쉽사리 들지 않는다. 올라가는 저 사람도 분명 힘들기 때문이다. 난관이 있어도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하며, 좀 쉬었다 가도 좋으니 함께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산이란 게 참으로 신기한 것이 서로 알지 못하지만, 함께 정상을 향하여 등산을 하고 있단 이유로 연대감이 생긴다는 것인데, 어두운 산을 오를 때 그것을 느꼈고, 미리 정상을 찍고 내려오시는 분들이 힘겹게 오르는 등산객에게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모습에서 또 한 번 느꼈다.


오랜 시간 동안 회복하기 어려운 일상에서 나는 한라산등산에서 다시 회복의 실마리를 발견했고, 몇몇 친구들과 지인을 통해 다시 한번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예측할 수 없는 난관을 자기 의지로 힘껏 해결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인간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때론 보이지 않는 그 손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빛이 가득한 곳으로 함께 오르자.





작가의 이전글 울산 : 남은 자들을 위한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