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와 분꽃

by 양경인

친정어머니는 나를 가졌을 때 꽃을 받는 꿈을 꿨다고 했다.그래서인가, 여고생 때 교탁 앞 하얀 수반에 꽂은 백합이나 튤립을 보느라 선생님 말을 놓치기 일쑤였다.

만삭의 몸을 바바리코트로 감싸고 한 손에는 시장바구니를 다른 손에는 노란 프리지어 한 단을 들고 걸어가는 나를 본 선배 언니가 차를 세우며 한마디 했다.

"세상에, 그 몸에 꽃까지..."

지인을 방문할 때 갖고 가는 것도 1순위가 꽃이었다. 여름방학 때 놀러온 친구가 들고 온 보라색 과꽃 한 다발을 막내 여동생은 항아리를 씻어 꽂아 놓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여름, 친구, 보라빛 과꽃이 한 묶음 되어 그날의 정황이 가끔씩 떠오른다.


9월 중순, 팔십 고령의 선생님과 북한산을 올랐다. 코로나 이후 처음 오르는 북한산이다. 구기역 터널을 지나 오르는 길로 산 중턱쯤 갔을 때 빨간 열매 나무를 만났다. 얼핏 찔레처럼 보였다. “ 내가 아는 척 좀 할까?” 하시며 만물박사 선생님이 산사나무라고 알려주신다. 몇 년 전 봄 북한산 진입로에서 배꽃 닮은 것이, 어쩌면 산 매화꽃 같은 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오늘 산사나무 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산사나무 열메, 아가위


오늘 본 열매는 작은 석류처럼 붉고 앙증맞았는데 이 열매는 ‘아가위’라고 부른다고 했다. 영어로 "주홍글씨"의 작가 서 내니 얼 호손의 Hawthorne에서 e를 빼면 산서 나무의 영어명이 된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오랜만에 선생님이 한 때 낭만적인 영문학도였음을 떠올렸다.

1890년 근대 노동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노동절 행사가 5월 1일로 정해지자 산사나무 꽃은 신성한 노동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그래서 영어 이름은 ‘메이플라워(May flower)’, 곧 오월의 여왕 꽃이다. 프런티어 영국인들이 탔던 그 배 이름도 메이플라워 호, 새로운 계급이란 뜻인지 산사나무로 만든 배여서 그런 이름을 붙였지 그건 모르겠다. 서양에서는 신부의 부케로 사용하는 꽃이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과자를 만들어먹을 만큼 대중적인 식품이고 한약재이다.

산사나무


선생님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산사꽃 향기에 대한 기억의 묘사를 말씀하시며 뭐 그리 대단한 문장은 아니지만, 토를 다신다. 그 책의 주인공(작가)은 5월 성모성월에 성당을 가서 산사나무 꽃을 처음 만나는데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그 나무는 그렇게도 성스럽지만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성당 안에 있었고, 더 나아가 제단 위까지 놓여 있어 분리될 수 없는 채로 미사 의식에 참여했으며, 촛대와 성스러운 집기들 사이로 가지를 뻗으며 수평으로 엮여 축일 장식물이 되었고, 또 가지는 잎의 꽃 줄 장식으로 더욱 아름답게 꾸며져 잎 위에는 눈부시게 하얗고 작은 꽃봉오리 다발들이 마치 신부의 늘어진 옷자락처럼 수없이 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가지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남몰래 바라보았는데 그 화려한 장식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입이 들쑥날쑥한 모양으로 패었으면서도 하얀 꽃봉오리는 최상의 장식이 덧붙여, 그 장식을 민중의 기쁨과 신비주의적인 엄숙함에 동시에 합당하게 만드는 자연 그 자체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더 위쪽에는 산사 꽃부리가 무심하고도 우아한 자태로 여기저기 열려 있었는데, 마지막 손질로 꽃부리 전체를 안개처럼 뽀얗게 만드는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꽃 수술 다발을 나른하게 붙잡고 있었다. 나는 꽃부리들을 따라가며, 또 마음속으로 꽃이 피는 몸짓을 흉내 내면서, 하얀 옷을 입은 한 방심하고도 발랄한 아가씨가 가느다란 눈으로 교태 어린 눈빛을 보내며, 무엇엔가 정신이 팔려 재빨리 머리를 흔들고 있다고 상상했다. (중략)


매화나 배꽃처럼 보였던 산사나무 꽃


성당에 나가려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나는 갑자기 산사나무 꽃에서 아몬드의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산사 꽃에서도 아주 작은 금빛 부분에 눈길이 쏠렸는데, 마치 프랑 지판(*아몬드 크림으로 만든 과자) 과자의 맛이 갈색으로 굽은 껍질 아래, 또는 뱅퇴유 양 빰의 맛이 주근깨 아래 숨어 있듯, 산사나무 향기가 그 아래 숨겨진 것 같았다. 산사 꽃의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은 자태에도 불구하고, 간헐적으로 풍기는 향기는 그 강렬한 생명력의 속삭임인 듯했고, 제단은 살아 있는 곤충의 더듬이들이 방문하는 어느 시골 울타리인 듯 진동했다. 거의 붉은빛이 도는 꽃 수술들을 보면서, 그것이 지금은 꽃으로 변신했으나, 곤충이 지닌 봄의 독기와 자극적인 기운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중에서, 민음사)


산사나무 꽃

기억의 편린을 이처럼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 프루스트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신 분이 있다. 90대 노령이신 불문학자 정명환 씨는 최근 <프루스트 읽기>를 출간했다. 우리 세대의 지성으로 존경받았고 학생들에게 "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강독했던 분이 제대로 통독 못한 아쉬움으로 유작이 될 글을 썼다는 고백은 내게 적잖은 위안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세계를 자기 속으로 흡수하죠. 소설을 쓰며 그는 과거의 유리한 때만 찾고 불리한 때는 숨겼어요. 20여 년간 들락거린 요양소 생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어요. 그러니 제목도 " 잃어버린 때를 찾아서"라고 하는 게 맞아요. 프루스트가 소설을 통해 시간을 찾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아주 병약하고 고질적인 찬식이 있어서 의식의 미래를 창조로 향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삶의 의미를 과거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죠. 여러분들은 프루스트처럼 찾지는 말고, 괴로웠던 기억도 한꺼번에 찾으면서 현재에서 소화해 나갔으면 합니다."


제주 동백꽃(인터넷 사진)


여덟 살 되던 성탄절에 작은아버지가 결혼을 했다. 결혼식 전날 할머니 집 정낭(대문)이 치워지고 동백 잎으로 장식한 커다란 아치가 세워졌다. 보통은 동백 잎으로만 꾸미는데 빨간 꽃잎과 계란 노른자처럼 선명한 수술을 가진 동백꽃이 윤나는 검 녹색 사이사이로 보였던 것은 겨울에 피는 꽃이어서 가능했으리라. 하얀 창호지에 먹으로 멋들어지게 쓴 한자, (아마 ‘祝 結婚’‘이리라) 휘장도 걸렸다. 이틀간 치러지는 작은아버지 결혼식에 조카인 내가 얼마나 설치며 다녔는지 두고두고 어른들 입방아에 올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처음 맞는 서양 명절처럼 생각되던 성탄절 분위기와 할머니 집 왁자한 잔치 풍경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나를 설레게 했다. 술에 취한 어른들은 동백 아치 입구에서 쓰러져 빈축을 샀다. 그때는 동백꽃이 잔치 꽃이라고 알았지 예쁘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 꽃은 결혼하고 나이가 삼십을 넘어서야 보였다. 단단한 꽃봉오리가 터지며 활짝 피었을 때까지, 그리고 통꽃으로 툭, 툭 낙화하는 서늘함까지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 유년의 정서를 아우르는 꽃은 진분홍 분꽃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부모님이 산 집터에 가 보면 조그만 화단에는 집을 판 주인의 복잡한 심경만큼이나 여러 종류의 꽃이 어지러이 피어 있었다. 바퀴 꽃, 붓꽃은 짱짱한 여름 볕에 시들어가는데 분꽃의 강렬한 색감은 선연하였다. 그런 유년의 분꽃을 성당에 미사 갔다 오다 아파트 화단에서 조우하였다. 한 참을 들여다보았다. 분꽃 씨는 까맣다. 까만 씨를 품은 흙의 양분 어디서 저런 색채를 올려 보냈을까. 젊어서는 촌스럽다고 멀리했던 빛깔이 내 나른한 세포를 파르르 일어서게 했다. 바람과 공기와 적절한 수분이 합작해서 피워냈지만 그 순간만큼은 흙의 무궁무진한 능력으로 생각되었고 화단의 검은흙은 주님과 동의어가 되었다.

아파트 분꽃


멀리서 찾던 꽃분홍

한여름 핫한 핫핑크가

분꽃 속에 있었다.



유년의 뜨락,

흰 수건 쓴 어머니

처네에 둘째 업고

쪼그려 앉아

우영팟 자잘한 돌멩이

골갱이로 솎아낼 때

무심히 피던 꽃,


살짝 꽃잎 따면

암술 늘어져 귀걸이 되고

까만 씨 빻으면

귀한 코티분 되어

심심을 달래주던 꽃,

동무 없어도 놀게 해 준

모퉁이 화단


화단 주인 꽃씨 뿌려놓고 봄에 떠나

우리는 여름화단 주인이 되고

그때 본 채송화 , 바퀴 꽃, 칸나, 붓꽃 그리고 분꽃

지금도 이런 꽃을 보면 저절로 발이 묶이고 마음도 묶여


그때 나는

다섯 살,

오십 년 전 이야기


나의 과거 돌아보기도 현실을 밀고 나가는 힘이 없어서 일까. 유년의 기억은 언제나 따뜻하다. 영혼의 음식을 먹은 것처럼.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쓰면서 프루스트가 좀더 친근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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